이게 되네? 박진영의 발칙한 상상이 기막히게 실현됐을 때('골든걸스')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11. 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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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이은미, 쩔쩔매는 박진영 그래서 더 흥미로운 ‘골든걸스’

[엔터미디어=정덕현] 인순이가 뉴진스의 '하입보이'를 부르고, 이은미가 청하의 '벌써 12시'를 부른다. 첫 회에서는 신효범이 트와이스의 'Feel special'을 불렀고, 박미경이 아이브의 'I AM'을 불렀다. 그 미션을 시켰지만 실제로 그걸 소화해내는 디바들의 무대를 보며 박진영은 연실 믿지 못하겠다는 듯, "이게 된다고?"를 외친다.

이건 KBS <골든걸스>가 가져온 새로운 음악 프로그램의 풍경이다. 사실 박진영이 음악 프로그램을 한다는 데서 "또 오디션"인가 싶었고, 그래서 <K팝스타> 시절부터 보였던 "소리 반 공기 반" 같은 심사평 앞에 잔뜩 긴장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떠올렸던 분들이 적지 않았을 게다. 하지만 <골든걸스>는 어딘가 잔뜩 상기되어 있는 박진영이 제작진을 만나 꺼내놓은 첫 마디로 이런 상상과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라는 걸 드러냈다.

"무작위 오디션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는 멤버들을 데리고 걸 그룹을 하는 것"이라고 운을 띄운 박진영은 그 머릿속의 멤버가 누구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먼저 자신도 다소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 멤버는 다름 아닌 인순이(46년차), 박미경(39년차), 이은미(34년차), 신효범(36년차)이었다. 저마다 자기 세계로 일가를 이룬 디바들이 아닌가.

솔로 활동을 주로 해왔고, 혼자서도 무대를 꽉 채우는 가창력으로 불리는 자타공인 디바들. 그러니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걸 그룹을 한다는 건 여러모로 상상이 잘 안 된다. 최근 음악 트렌드와는 조금 결이 다른 장르적 차이, 솔로가 아닌 함께 그룹으로 뭉쳐야 한다는 걸 그룹이라는 콘셉트, 게다가 모두 신인 걸 그룹으로 나서기에는 너무 높아 보이는 나이의 장벽.... 등등 넘어야 할 산이 하나둘이 아니다.

하지만 박진영이라는 프로듀서로서의 신뢰감과 그간 이들 디바들과 이어온 사적으로도 친밀한 관계를 무기로, 이들 하나하나를 설득해 내자 새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박진영은 맨발의 디바로 춤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이은미에게 맞춰서 추는 춤을 요구하고, 엄청난 성량으로 무대를 압도하던 신효범이나 인순이에게 스트리밍 시대에 맞춰 '말하듯' 노래 해달라고 제안한다.

물론 그건 박진영에게도 진땀을 빼게 만드는 일이다. 노래에 있어서 저마다의 일가를 이룬 대선배에게 어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나. 하지만 디바로서의 그들이 아닌, 하나의 걸 그룹, 그것도 지금 현재의 대중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하는 걸 그룹을 목표로 하고 있어 박진영은 거기에 맞는 디렉팅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박진영은 진땀을 빼가며 때론 무릎까지 꿇고 하나하나 노래하는 방식들에 대한 구체적인 디렉팅을 내놓고, 때론 반발하지만 그 하나의 목표 아래 합숙까지 허락한 디바들은 지금까지 '안 하던 짓'들을 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첫 미션처럼 박진영이 내놓은 걸 그룹의 곡을 불러달라는 요구를 이 네 명의 디바는 놀라울 정도로 잘 소화해낸다. 장르가 다르고 색깔이 달라도 디바는 역시 디바라는 걸 확인하게 되는 순간들이 펼쳐진다.

가장 박진영의 요구와 각을 세우는 이은미는 그래서 <골든걸스>라는 기획의 만만찮음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걸 해내는 과정에서의 짜릿함을 선사한다. 섭외 과정에서도 못하겠다고 계속 유보하던 이은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절친들인 박미경, 신효범 앞에서 '벌써 12시'를 완벽하게 자기 스타일로 불러내 환호하게 만들었다. 또 걸 그룹 특유의 맞춰진 퍼포먼스를 해야 한다는 박진영의 요구에 방송 도중 스튜디오를 떠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합숙을 해야 한다는 요구에도 난색을 표명했다.

하지만 그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은미가 결국 박진영의 요구대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게 또 새로운 이은미의 매력적인 면면들을 끄집어낸다는 건 이 프로그램이 가진 특별한 재미요소가 된다. 예고편에서 이은미가 "핑크색은 절대 안 돼"라고 의상을 결정할 때 정색하는 모습은 결국 핑크색 의상을 입고 무대 앞에 서 있는 이은미와 교차 편집되어 웃음과 더불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든다.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어. 난생 처음 이런 거 해보고.." 이렇게 말하며 핑크색 의상을 입은 채 무대 서지만, 결코 못할 것만 같던 그 무대를 너무나 잘 소화해내는 이은미의 모습은 아마도 <골든걸스>가 앞으로 다른 디바들을 통해서도 그려내려는 그것일 게다. 나이든 취향이든 어떤 틀 안에 스스로 가둬뒀던 자신을 깨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 또 다른 나를 찾아내는 길. 박진영의 발칙한 상상이 연 <골든걸스>가 우리네 보통의 시청자들에게도 남다른 감흥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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