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 소노 이정현 "맹수는 거칠게 성장한다"

김종수 2023. 11. 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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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론적일지 모르겠지만 선수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성장하기 위해서는 팀이나 지도자와의 궁합, 당시 처한 상황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성장도 운이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아무리 운이 따라도 기본적으로 재능이나 실력이 받쳐줘야 거기에 맞게 성장이 가능하다.


자신의 능력에 더해 여러 가지 요소가 더해져 폭풍 성장을 거듭한 케이스가 있는 반면 반대의 경우로 정체되고만 사례도 있다. 물론 ‘될놈될(될놈은 된다)’이라는 말처럼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실력을 꽃피운 이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거기에도 초반 악재를 이겨내고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준 지도자나 팀의 영향은 분명 존재한다.


김승현(45‧175cm)은 동국대 시절부터 천재 포인트가드로 불렸다. 송영진(45‧198cm)이라는 국가대표급 빅맨에 전형수(45‧180cm) 변수가 걸려 2001년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지명받았지만 이후의 결과만 놓고 보면 1순위로 뽑혔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결과적으로 김승현과 동양의 만남은 서로에게 윈윈이었다.


동양은 김병철, 전희철이라는 이름값 높은 선수가 둘이나 있었으나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김병철은 대학 시절부터 끊임없이 1번 전향을 시도했지만 결국은 실패해 슈터로 남은 상태였고 전희철 또한 프로 무대서는 3~4번을 오가며 무색무취의 플레이로 일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팀이 자신들만의 확실한 색깔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김진 감독은 팀을 루키 김승현 중심으로 싹 뜯어고쳤다. 김승현이 아무리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신인에게 올인한다는 것은 위험성이 큰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선택은 최상의 결과로 돌아왔다. 김승현의 파트너 외국인선수로 고 마르커스 힉스를 뽑았다.


당시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현장에서는 해외 무대서도 제법 이름을 날린 안드레 페리가 있었지만 김감독은 좀 더 젊고 잘 달리는 힉스가 김승현과 잘 맞겠다고 판단했다. 거기에 더해 나머지 외국인선수 역시 언더사이즈지만 리바운드에 강점이 있는 라이언 페리맨을 선발해 공격의 역동성을 더했다. 확실한 빅3가 중심을 잡아주다 보니 김병철, 전희철도 지원군으로 쏠쏠한 활약을 해냈고 최종결과는 팀 사상 첫 우승이었다.


반면 김승현에 앞서 뽑힌 1순위 송영진과 2순위 전형수는 조금씩 아쉬움이 있었다. 중앙대 재학시절 김주성과 함께 역대급 '트윈타워'로 명성을 떨쳤던 송영진은 장신이면서도 빼어난 운동신경을 갖춘 대형 포워드였다. 빠르게 코트를 내달리고 높이 뛸 수 있었으며 슈팅 능력도 수준급이었다. 프로무대서 무조건 통한다는 평가가 쏟아져나왔다.


아쉽게도 송영진은 잘하기는 했지만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는 신인 시절 행해진 무리한 살찌우기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삼성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패한 김태환 감독은 포스트에 힘을 보태줄 토종자원을 갈구했는데 이를 송영진을 통해 해소하려 했다. 거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마른 체형의 송영진을 덩치 큰 4번으로 만들려 했다는 부분이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당시 김감독은 많이 먹어서 부풀리면 바로 힘 좋은 파워포워드로의 변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한듯 하다. 이는 오산이었다. 토하면서까지 입에 음식을 구겨 넣는 수준이었던지라 어느 정도 살이 찌기는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송영진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먹는 만큼 훈련량이 따라가지 못했고 그로 인해 날렵했던 움직임까지 잃었다. 이후 어느 정도 회복에 성공했지만 가장 중요한 데뷔후 몇 시즌을 허무하게 날려버린 부분은 송영진의 성장을 크게 해쳤다는 평가다. 만약 송영진을 아마 시절처럼 그대로 놓아둔 채 꾸준하게 출장만 시켰으면 어땠을까. 그의 화려했던 때를 기억하는 팬들이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전형수같은 경우 김승현을 제치고 2순위에 뽑혔다는 점에서 종종 회자되고는 한다. 그 정도 가치가 있었느냐는 혹평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신인 시절의 그는 충분히 그럴만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김승현이 너무 잘했을 뿐이지 전형수 또한 입단하기 무섭게 코리안텐더의 토종 에이스로 활약하며 진가를 보여준 바 있다. 김승현이 아니었다면 신인왕도 충분히 가능했다.


김승현만큼은 아니지만 전형수 또한 팀에서 주포로 밀어줬고 거기에 걸맞는 기량을 검증받았다. 처음에 김승현을 뽑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던 코리안텐더 팬들도 한 시즌을 마치고 나서는 전형수에게 미래를 거는 분위기였다. 만약 전형수가 그래도 자신이 데뷔한 팀에서 커리어를 이어갔다면 원클럽맨이나 프랜차이즈 스타도 충분히 가능했을 공산이 크다. 기량에 더해 전형수 본인의 성향 또한 어지간해서는 정이 든 곳을 바꾸지 않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야구의 쌍방울 레이더스를 연상케 할 정도로 구단 사정이 좋지 않은 코리안텐더였지만 전형수는 팀 생활에 충분히 만족했다. 선후배간의 돈독한 정이 가장 큰 이유였다. 때문에 어려운 구단 사정으로 인해 트레이드가 결정되자 바닥에 풀썩 주저앉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이후 팀은 경제력이 좋은 KTF로 인수됐는데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면 더더욱 아쉬움이 컸다고 한다.


막 인수되었을 무렵 KTF는 현주엽, 게이브 미나케, 애런 맥기의 ‘3포워드’를 앞세워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여기에 가장 잘 맞는 핏중 하나는 다름 아닌 전형수였다. 현주엽은 당시 포인트포워드로 불릴 만큼 패싱게임을 즐겼다. 정통 포인트가드와는 어울리지 않았고 전형수같은 듀얼가드가 파트너로 딱이었다. 전형수 또한 ‘내가 저 자리에 있었으면…’하는 상상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듯 선수의 성장 과정에 팀이나 지도자와의 궁합은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점에서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 듀얼가드 이정현(24‧187cm)은 흡사 맹수처럼 거칠게 성장하고있다는 평가다. 일단 기회라는 측면에서는 차고 넘친다. 김승기 감독은 자신이 찍은 선수는 과할 정도로 밀어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지난 시즌 전신 데이원 사령탑으로 부임하기 무섭게 이정현에 대한 넘치는 관심을 표현 중이다.


당시 헤비 온볼러인 이대성을 현금트레이드로 한국가스공사로 보냈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정현에게 많은 기회를 주며 제대로 키워보려는 이유가 컸다는 분석이다. 이를 입증하듯 슈팅가드가 익숙한 이정현에게 포인트가드까지 겸하게 하며 천천후 플레이어로의 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성현(32‧188.6cm)을 리그 최고의 슈터로 키운바 있는 김감독은 이정현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냥 잘하는 주전급 가드가 아닌 역대급 가드가 기준점이다. 때문에 어지간히 잘해도 칭찬보다는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다’며 동기부여를 유도하고 있다. 정말 미친 듯이 잘하는 활약 정도는 보여줘야 ‘거봐, 이 정도 할 수 있는 선수라니까’라고 살짝 띄워준다.


그만큼 이정현은 재능이 넘치는 슈퍼스타 재목으로 꼽힌다. 프로에 데뷔할 때부터 몸이 잘 만들어져 있었던 것은 물론 파워, 운동능력에 내외곽을 오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득점할 수 있는 기술까지…, 기본기가 좋다는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천재 가드’로 불렸던 김민구 이후 최고 재목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때문에 김감독은 양동근, 김선형 계보를 이을 대형선수로 이정현을 키우고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현재 상황은 쉽지 않다. 이정현은 5경기에서 평균 19.20득점(6위), 8.20어시스트(1위), 3.40리바운드, 1.40스틸로 외국인선수급 성적을 내고 있다. 전성현 또한 평균 17.20(10위)로 뒤를 잘 받쳐주고 있는 모습이다. 득점 10위안에 토종 선수가 둘이나 들어가 있고 그 중 한명은 어시스트 1위를 달리고 있지만 팀 성적은 9위(1승 4패)로 대구 한국가스공사와 함께 공동 꼴찌다.


여기에는 현재는 DB로 가있는 외국인선수 디드릭 로슨(26‧201cm)의 부재가 크다. 로슨은 지난 시즌 전성현, 이정현과 함께 데이원 4강 돌풍의 주역이다. 팀내에 원활한 플레이메이커가 없는 상태에서 득점은 물론 컨트롤타워 역할까지 해준 로슨이 있었기에 전성현, 이정현도 마음껏 코트를 누빌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앞서 언급한 김승현은 첫시즌부터 손발이 잘 맞는 힉스, 페리맨과 함께 할 수 있었고 전희철, 김병철이라는 수준급 조력자도 뒤를 받쳤다. 양동근 또한 부족한 리딩 능력을 고 크리스 윌리엄스가 채워주며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반면 올시즌 소노는 외국인선수까지 삐걱거리는 상황인지라 이정현의 고군분투가 예상된다. 황량한 벌판에서 거칠게 성장해야 하는 맹수처럼.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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