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지방교부세, 사실과 진실 차이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23. 11. 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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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검찰이 최근 경향신문을 압수수색했다. 경향신문은 2년 전 검찰 중수부가 대장동 대출 브로커였던 조우형 씨를 봐주기 수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검찰 중수부 과장은 윤석열 현 대통령이었다. 검찰은 수사 무마 의혹에는 증거가 없다며, 경향신문이 의도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향신문은 합리적 의심을 할만한 상황이라고 맞서고 있다.

언론의 보도는 형법과는 다르다. 형법에서 유죄가 성립하려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언론은 검찰과 달리 강제 수사권이 없다. 수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결정적 증거가 나올 때 까지 보도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언론은 '스모킹 건'이 발견되기 전이어도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상황이라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문제는 합리적 의심이라는 말은 대단히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합리적 의심에 따른 보도이고, 어디부터가 증거 없는 무책임한 보도일까? 이 둘을 명료하게 구분할 수는 없다. 이 둘이 구분되지 않는 애매한 상황에서 압수수색이 들어오면 기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기자가 위축이 되면, 명확한 증거가 있는 사실만을 보도하게 된다. 그런데 언론이 '사실'(fact)만을 보도할 때 오히려 '진실'(truth)과는 멀어지는 모순이 발생한다.

“올해 세수 부족으로 지방 교부세 등이 23조 원 준다는데, 지방정부는 어떤 문제가 생기나요?” 최근 기자들이 나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다.

“올해 지방 교부세가 23조 원 준다는 것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닙니다.”라고 나는 질문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기획재정부가 23조 원을 지방정부에 주지 않는다고 발표했는데 왜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하나요?”

여기에서 사실과 진실 차이가 발생한다.

기획재정부가 올해 지방정부 등에 줘야 할 교부세 23조 원을 안 주겠다고 발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획재정부가 지방정부에 교부세를 안 줄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다. 그래서 “올해 교부세 감액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가 진실이다.

▲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9월1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세수 재추계 결과 및 재정대응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일 예산실장, 정정훈 세제실장, 임기근 재정관리관. ⓒ 연합뉴스

올해 교부세 등 23조 원 삭감 주장의 근거는 내국세 감소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와 지방교육청에 주어야 할 교부세, 교부금 규모는 내국세 규모 40%가 자동으로 연동된다. 즉, 올해 내국세가 만약 100조 원이 걷히면 약 40%인 40조 원은 지방에 보내야 한다. 법이 그렇다. 그래서 작년 국회 예산심의 때, 여야 합의에 따라 올해 걷힐 내국세의 40% 규모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방정부에 주기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2023년 내국세 결산은 2024년에 이루어진다. 결산 결과 만약 내국세가 계획보다 덜 걷혔다면, 덜 걷힌 금액만큼 차감 정산을 해야 한다. 그리고 차감 정산하는 시기는 2025년도다. 지방정부와 합의를 통해 2024년에 차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측 가능한 행정을 위해 2023년 정산분을 2025년 교부세에서 차감하고 주는 것이 법과 원칙에 따른 일반적인 관행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추경을 한다면, 세수 결손을 결산전에 미리 인식할 수도 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국세수입이 약 59조 원 결손될 것으로 예측한다. 기획재정부가 작년 국회에 제출해서 확정된 본예산 세입규모에서 59조 원 오차가 생긴다는 의미다. 오차가 무려 59조 원 발생하면 본예산 세입예산을 수정하는 '세입 감액 추경'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측 실패는 용서해도 대응실패는 용서하면 안 된다는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의 격언이 있다. 즉 본예산 예측 실패보다 더 큰 문제는 대응 실패다. 즉, 본예산 예측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이를 수정하는 '세입 감액 추경'을 통해 대응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세입 감액 추경'이 곧바로 올해 교부세 감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회는 별도의 '세출 감액 추경'에서 교부세 감액시점을 정할 수 있다. 국회는 여야 합의에 따라 23년 세입 감액 분에 따른 교부세 23조 원 정산 시점을 23년도에 바로 반영할지, 24년도에 반영할지, 25년도에 반영할지 정할 수 있다. 요는 예산심의권을 가진 국민의 대표인 국회는 내국세 결손에 따른 교부세 감액 시점을 추경을 통해 정할 수 있다.

그러나 추경호 부총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올해는 추경은 없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추경을 통해 본예산을 경정(更正)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세입예산, 세출예산은 모두 본예산이 유지된다. 국회에서 확정한 본예산이 변경되지 않으면 행정부는 국회 심의 금액을 그대로 지출해야 한다.

국민의 대표가 심의한 예산금액을 행정부가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근대국가의 기본이다. 예산심의 때 여야는 국회에서 639조 원을 결정짓는 정치 투쟁을 한다. 여야는 서로 논쟁하고, 반박하고, 협상해서 예산심의를 확정한다. 예산지출액 확정은 정치의 근본이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어렵게 협상안을 도출했는데 행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임의대로 지출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그래서 추경을 하지 않은 이상 내국세 결손에 따른 교부세 감액 시점은 23년도가 아니라 25년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 법과 원칙과 관행이다.

올해 지방정부 교부세 등 23조 원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추경호 부총리가 언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추경호 부총리가 올해 23조 원의 교부세 등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그래서 행정안전부는 올해 교부세를 주지 않겠다는 공문조차 지방정부에 발송하지 못하고 있다. 무려 23조 원의 지출 조정 사실을 전화 등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통보만 할뿐이다. 그래서 진실은 올해 23조 원의 지방교부세가 줄어들지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진실이다.

▲ 10월19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그런데 진실은 복잡하다. 사실은 간단하다. 이럴 때 언론은 추경호 부총리가 교부세를 올해 주지 않겠다고 말한 사실만을 보도하게 된다. 이를 '따옴표 저널리즘'이라고 한다. 유력 정치인이 그러한 말을 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니 사실 보도만 하게 된다. 그러나 유력 정치인의 한 말이 진실인지는 보도하지 않는다. 이러한 언론의 특징을 가장 잘 활용했던 정치인은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진실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트럼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사실만 보도가 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국회의 심의 없이 올해 교부세를 덜 줄 것이라는 추경호 부총리의 말이 사실을 넘어 진실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예산 심의권을 지닌 여당과 야당은 물론 지방정부 단체장도 올해 교부세를 덜주겠다는 기획재정부의 방침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 국회, 행정부 3인은 없는 호랑이도 만들 수도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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