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자연과 모더니즘이 도시가 됐다, 그의 손으로
오스카르 니에메예르
1960년 새 수도 브라질리아
‘시민을 위한’ 이상 담아 건축
아름답지만 살기 불편한 도시
‘평등한 민주주의’ 세종청사 연상
나는 경남 마산 출신이다. 이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을 나는 지나치게 많이 써온 것 같다. 어쩌겠는가. 서울 사는 지방 출신들은 자기가 나고 자란 곳 이야기를 즐겨 하기 마련이다. 로컬의 자부심이라고 해야 할까. 자격지심이라고 해야 할까. 이를테면 나는 서울 출신들과 ‘마산 아구찜’이라는 상호를 가진 식당에 가면 “이건 마산 아구찜이 아니야”라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마산 아구찜은 말린 아귀를 써서 전분 없이 쪄내 꼬들꼬들한 식감으로 먹는 것이다. 통통한 생아귀살로 쪄내는 건 오리지널 마산 아구찜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은 마산에서도 생아귀살로 아구찜을 한다고 한다. 마산은 변했는데 내 기억 속 마산만 옛날이다.
슬프게도 마산이라는 지명은 사라졌다. 2010년 마산·창원과 진해는 통합 창원시가 됐다. 내가 살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역 중심은 가장 역사가 오래된 마산이었다. 창원은 마산 옆 ‘갑자기 동네’였다.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캔버라를 모델로 1977년 마산 옆 허허벌판을 산업도시로 만든 것이 한국 최초의 계획도시 창원이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창원은 괴상했다. 계획 없이 마구 성장한 마산과는 달리 정확한 사각형 도로가 쭉쭉 뻗어 있었다. 거대한 호수 공원이 있었다. 다소 냉정하게 생긴 콘크리트 건물들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도시 같았다. 물론 창원은 이후 한국에 지어진 모든 계획도시들의 기본이 됐다. 과천·세종시는 물론 서울 주변의 신도시들은 모두 창원을 쏙 빼닮았다. 기본적으로 21세기 한국은 모두 창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모더니즘 이상의 구현
그래도 창원의 희한한 조형미는 이상하게 매력적인 데가 있었다. 일단, 인간미가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의 의도에 의해 가장 기능적인 방식으로 지어진 도시라는 건 뭔가 레고 블록을 쌓는 것 같은 재미를 주게 마련이다. 좀 더 자란 뒤 나는 백과사전에서 창원과 쏙 빼닮은 도시를 하나 발견했다.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였다. 브라질리아도 계획도시였다. 1956년 브라질 대통령 주셀리누 쿠비체크는 대서양 연안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하고 내륙을 개발하기 위해 새로운 수도 건설을 발표했다. 도로도 없는 허허벌판 위에 도시는 불과 4년 만에 완공됐다. 마스터플랜은 브라질 출신 건축가 루시우 코스타가 설계했다. 그 위에 국회의사당, 대성당을 비롯한 주요 건물들을 브라질 출신 건축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가 지어 올렸다. 당대 건축의 모더니즘 이상을 구현한 미래 도시가 갑자기 꿈처럼 탄생한 것이다.
2차대전 후 1950년대는 건축에서 모더니즘 운동이 본격적으로 불타오르던 시대였다. 모더니즘 건축가들은 19세기 이전의 전통적인 건축을 비판했다. 산업화 시대의 시민들을 위한 건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상을 내세웠다. 건물은 새로운 시대의 산업 제품들처럼 아름다운 동시에 기능적이어야 했다. 그래서 20세기 중반 이후 도시들은 장식적인 디테일을 제거한, 확 열리고 탁 트인 공간을 가진 콘크리트 건물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건축에 딱히 관심 없는 사람들도 이름은 잘 알고 있는 르코르뷔지에, 필립 존슨 같은 거장들이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들이다. 물론 21세기는 지나치게 기능을 우선하던 모더니즘을 탈피하자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시대가 됐다. 프랭크 게리의 유기물 덩어리 같은 건물은 아마도 모더니즘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존재일 것이다.
그럼에도 모더니즘 건축이 주는 희한한 매력 같은 것이 여전히 있다. 다소 비인간적이지만 단순한 조형미가 주는 기묘한 매력 말이다. 그리고 그 매력을 가장 강력하게 여전히 지니고 있는 아마도 유일한 도시가 브라질리아일 것이다. 나는 오스카르 니에메예르가 건설한 브라질리아 건축물들을 찍은 사진집을 갖고 있다. 흑백으로 찍은 그 사진집을 유치원에 들고 가 “화성인들이 화성 위에 건설한 도시의 사진이야”라고 한다면 분명히 속아 넘어가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아직 세부 건설이 한창이던 브라질리아 풍광은 장폴 벨몽도가 주연한 1964년 작 프랑스 영화 ‘리오의 사나이’ 클라이맥스 추격 장면에 담겨 있으니 꼭 디브이디(DVD)를 찾아보시길 권한다.
뉴욕 유엔본부 설계하며 명성
어린 시절부터 내가 가장 사랑하는 건축가가 된 오스카르 니에메예르는 1907년생이다. 리우데자네이루연방대학교 국립예술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1936년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가 컨설턴트로 참여한 브라질 교육보건부 건물 설계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가 세계적인 건축가의 지위에 오른 것은 1947년 뉴욕의 유엔본부 건물 설계에 참여하면서다. 지금도 허드슨강변에 우뚝 솟아 있는 이 아름다운 건물은 사실 선배 르코르뷔지에와 후배 니에메예르의 대결이었다. 니에메예르의 안이 최종작으로 당선됐으나 당대의 거장이던 르코르뷔지에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런 대형 건축 프로젝트는 명성과 정치적 알력의 결전장이기도 하다. 결국 부드러운 곡선 지붕을 가진 총회 건물은 르코르뷔지에가 만들고 사무국으로 쓰이는 빌딩을 니에메예르가 설계했다. 모더니즘 선후배의 대결이 역사적인 건축의 명작을 낳았다고 아름답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오스카르 니에메예르를 어쩌면 르코르뷔지에를 능가하는 새로운 거장으로 만들 프로젝트가 태동했다. 바로 브라질리아 건설이었다.
오스카르 니에메예르를 당대의 다른 모더니즘 건축가들과 구별 짓게 만드는 것은 브라질인으로서의 정체성이었다. 브라질은 압도적인 자연을 가진 거대한 하나의 대륙에 가까운 국가다. 니에메예르는 브라질의 자연이 지니고 있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기능적인 모더니즘 건축에 덧입혔다. 그의 유명한 신조 중 하나는 “형식은 아름다움을 따른다”(Form follows beauty)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이렇게 말했다. “내 작업은 ‘형식은 기능을 따른다’가 아닙니다. ‘형식은 아름다움을 따른다’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형식은 여성미를 따른다’입니다.” 그는 브라질의 태양과 하늘과 바다와 정글이 지닌 곡선을 기능주의적 모더니즘 건물에 선물했다. 그 아름다운 곡선은 강건한 직선의 도로 위에 건설된 브라질리아에 황홀한 형식으로 새겨졌다. 1987년 브라질리아는 20세기 새롭게 지어진 도시로서는 놀랍게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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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리아에서 일, 주말엔 리우로
사실 브라질리아는 실패한 도시다. 브라질리아는 모더니스트이자 공산당원이었던 니에메예르의 개념을 담은 아름다운 건축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살기에는 지나치게 불편했다. 이상은 아름다웠다. 아파트들은 모두 국유화한 뒤 공직자와 노동자가 함께 살도록 했다. 공공건물도 넓은 녹지와 도로를 바탕으로 넓게 배치했다. 대중교통이 부족하고 건물 사이 거리가 너무 떨어진 탓에 막상 사람이 거주하기에는 지나치게 불편했다. 고위공직자들은 주중에만 브라질리아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리우데자네이루로 가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들은 브라질리아 주변에 막개발로 건설된 위성도시에서 위안을 찾았다. 게다가 브라질리아를 건설하느라 막대한 외자를 도입하고 돈을 마구 찍어낸 탓에 막대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1964년에 쿠데타가 일어났다. 브라질리아 계획의 주도자 중 한명이던 니에메예르는 프랑스로 망명해야만 했다. 그가 브라질로 돌아간 것은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1985년이었다. 1988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니에메예르는 2012년 104살로 사망했다.
내가 브라질리아를 오랜만에 다시 떠올린 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건물의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였다. 설계 당시 정부는 ‘어느 한곳이 중심이 아닌, 모든 지역이 평등한 민주주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여러 채의 낮은 건물이 용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설계안을 선택했다. 브라질리아를 설계한 루시우 코스타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의 의도와도 같았다. 건축가의 의도가 항상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동선이 지나치게 긴 탓에 청사 내부를 이동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불평이 입주 초기부터 터져 나왔다. 거대한 규모에도 정작 사무 공간 비율과 주차장 공간이 적다는 불평도 여전하다. 아름답고 민주적이지만 효율성과 기능성은 떨어지는 건물인 셈이다. 그래도 정부세종청사 건물이 건축학적으로는 어딘가 좀 재미있는 건 사실이다. 나는 오로지 이 건물을 체험해보기 위해 세종시에 갈 계획을 요즘 세우고 있다. ‘민원인의 미로’라고 불리는 그 건물을 더 직관적으로 경험하기 위해 뭔가 민원이라도 하나 내야 하나 생각 중이다.(이건 비밀로 해주시라.)
가장 아름다운 건축이 가장 기능적인 건축은 아니다. 가장 기능적인 건축이 가장 살기 좋은 건축은 아니다. 가장 살기 좋은 건축이 가장 아름다운 건축은 아니다. 그래서 위대한 건축가들은 오늘도 아름다움과 기능과 삶의 사이에서 저글링을 하며 설계도에 새로운 선을 긋는 것이다. 어떤 것은 실패하고 어떤 것은 성공할 것이다. 계속해서 계획을 수정해나가야 하는 우리 인생처럼 말이다. 그리고 어떤 실패는 영원히 아름답게 남기도 한다. 오스카르 니에메예르의 위대한 실패작처럼.
문화 평론가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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