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슌지 감독 "'오겜' 보며 日 영화 환경 안타깝다 생각" [인터뷰]
아이즈 ize 김나라 기자
7년 만에 내한한 '일본 영화계 거장' 이와이 슌지 감독이 한국 팬들에게 '러브레터'를 전달하며 신작 '키리에의 노래'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아이즈(IZE)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 '라스트 레터'(2021) 이후 '키리에의 노래'로 컴백하며 홍보 활동차 한국을 찾은 것. 이와이 슌지 감독은 '러브레터'(1999), '4월 이야기'(2000), '하나와 앨리스'(2004) 등을 만든 스토리텔러이자 '감성 연출의 대가'로, 한국에도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키리에의 노래'는 큰 목소리로 말할 수 없지만 노래로 자신을 표현하는 길거리 뮤지션 키리에(아이나 디 엔드), 꿈을 잃고 부유하며 살아가는 친구 잇코(히로세 스즈), 사라진 연인을 찾는 남자 나츠히코(마츠무라 호쿠토) 세 사람의 비밀스러운 사연을 들려줄 감성 스토리. 지난 1일 국내 개봉한 뒤 단 3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만 명을 돌파, 잔잔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이번 작품은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자전적 영화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직격탄을 맞았던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 지역 출신.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이 대재난으로 큰 피해를 입은 충격을 '키리에의 노래'에 담아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키리에의 노래'는 10월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 공식 초청작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월드 프리미어 상영회를 통해 러닝타임 178분의 디렉터스 컷 버전이 공개, '전석 3분 매진' 기록을 세우며 관객들에게도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부산에서 상영된 3시간 버전은 2시간 이야기 전개에 1시간은 콘서트가 패키지라 할 수 있다. 정식 개봉 버전인 2시간 안에는 스토리가 1시간, 나머지 1시간이 콘서트다"라고 소개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기에 더욱 남다른 애정을 표하기도. 이와이 슌지 감독은 "'키리에의 노래'는 정말로 저에 관한 것들이 세세하게 군데군데 담겨 있는 영화다. '말 못 하는 여자'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였고 음악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보자 하다가 융합되어 '키리에의 노래'가 탄생됐다. 저 스스로도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 했다"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키리에의 노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배두나와 함께 찍은 단편영화 '장옥의 편지'(2017)에서부터다. '장옥의 편지'를 각색하여 전작인 '라스트 레터'를 만들었고, 이 영화 속에 등장한 소설의 이야기가 바로 '키리에의 노래'다"라는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배두나와는 작업한지 벌써 6년이 훌쩍 흘렀음에도 여전한 인연을 자랑하며 훈훈함을 안겼다. 배두나는 이와이 슌지 감독 지원사격을 위해 4일 '키리에의 노래' GV(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는 특급 의리를 과시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한국에서 기회가 있다면 꼭 한 번 협업을 해보고 싶다"라면서 "예전에 배두나와 단편영화를 작업한 적이 있는데, 긴 극영화를 작업해 본 적은 없기에 배두나와 장편을 찍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송강호를 만나 악수를 나눴다. 송강호와도 함께 일해보고 싶다"라고 한국 배우를 향한 호감을 드러냈다.
한국 팬들은 자신의 원동력이라며 감사의 '러브레터'를 보내기도. 이와이 슌지 감독은 "'4월 이야기'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처음 한국을 찾았었다. 그 이후 '러브레터'가 정식 상영되며 한국에 또 방문했었는데, 당시 제가 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열광팬이 많다고 느꼈다. 그때 느낀 한국 팬분들의 애정은 인생에서 절 지지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됐을 정도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화답했다.
이어 그는 "저는 나름대로 과거 작품을 돌아보지 않고 늘 지금 내가 보고 싶은 것에 열중하여 스스로 실망하지 않을 작품을 만들었다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 작품을 이해해 주는 한국 팬분들이 많다는 점에 매우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작품 만드는 것에 있어서 뒤처지지 않도록,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여 한국 팬 여러분이 실망하지 않을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이다. 계속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시종일관 진중한 목소리로 답변을 이어가던 중, 뜻밖에 '오징어 게임'을 향한 팬심 고백으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제가 영화 일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같이 나이 들어가며 한국 영화의 성장을 함께 지켜봐왔다. 그래서 더 친근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최근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 빠졌다. 1회를 시청하다 한 번에 끝까지 다 봤다. 한국 콘텐츠가 굉장히 성장했다고 느꼈고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잘 진화해 오고 있다고 본다"라고 높이 샀다.
그는 "사실 제가 아이나 디 엔드도 인기 밴드 비쉬(BiSH) 출신인 줄 몰랐을 정도로 영화 작업에만 몰두하다 보니 외부 정보가 들어오질 않는다. 근데 '오징어 게임'은 워낙 소문이 많아서 알게 되었고 얘기를 들었을 때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라. 마침 시간이 나서 한 번에 보게 되었다. 또 보고 싶은 한국 콘텐츠가 굉장히 많습니다만 영화관에 갈 시간이 잘 없다. 국내외 어떤 콘텐츠이건 간에 보지 못한 게 많아서 쉬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도 10년 20년 정도가 그냥 훌쩍 흘러가 버린다"라며 못 말리는 영화인의 열정을 엿보게 했다.
'오징어 게임'의 감상평은 자연스레 일본 영화계에 대한 문제점으로 이어졌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일본의 경우 영화와 만화 사이에 괴리감이 있는데 한국은 만화와 영화가 잘 버무려져 있다. 그래서 일본이 안타깝다는 생각이다"라고 날카롭게 직시하며 화두를 던졌다.
일본은 애니메이션 왕국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실사 영화는 현지에서도 외면당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 이에 이와이 슌지 감독은 "실사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또 애니메이션을 만든 적 있던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일본에서의 실사물과 만화는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이다. 정말로 각각 다른 나라에서 작업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환경이 너무 다르고 시스템 차이도 크다. 실사 영화가 잘 해나갔으면 하는 개인적인 마음이 들지만 실사 영화의 성과가 애니메이션보다 압도적으로 적기에 그만큼 예산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실사물은 현장 상황이 매우 어렵다"라고 짚었다.
다만 그는 "아직까지 애니메이션과 갭 차이가 있지만 이제 AI(인공지능) 등 새 기술이 많이 나오고 있는 시대이기에, 이것으로 인해 앞으로는 변화될 것이라 생각한다. 저도 새 기술을 공부하고 싶고 영화에 접목하여 잘 쓰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렇게 되면 애니와 실사의 예산적 괴리를 포함하여 많은 게 달라질 거라 본다. 할리우드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활용하는 기술들도 이제는 개인이 컴퓨터로 작업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생각이다. 모두가 좀 더 자유롭게, 마치 연필로 종이에 그리듯이 자신의 상상을 기술로 쉽게 구현해 내는 시대가 전 세계적으로 도래할 거라고 본다"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끝으로 이와이 슌지 감독은 "많은 분이 사랑해 주신 '러브레터' 같은 작품을 또 만드는 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제 속엔 어두운 이야기가 훨씬 많다. 최근에 '제로의 망각'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그 소설을 언젠가 영화화하고 싶다. 그건 '새까맣다'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둡다. '블랙 이와이'의 극치라 할 수 있다"라고 밝혀 궁금증을 자극했다.
이에 덧붙여 그는 "서울에는 거의 7년 만, 굉장히 오랜만에 왔다. 이번에는 신작 '키리에의 노래'를 갖고 서울에 오게 되었는데 다음에 한국에 오게 될 땐 영화 촬영을 위해 오기를 희망한다. 지금 생각으론 이것이 제 다음의 꿈이다"라는 바람을 남기며 기대감을 부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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