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으로 눈 돌린 미술사가 찾고 있는 것들 [영감 한 스푼]
스웨덴 영화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최신 영화 9편이 상영되는 가운데, 미술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흥미로울 영화가 두 편 있습니다. 바로 ‘사미 스티치’와 ‘힐마’ 인데요. 두 영화는 특히 르네상스에서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단선적 미술사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면서, 세계적 미술 기관들이 ‘대안’을 찾는 와중에 발견된 흐름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미술사는 시대에 따라 항상 변하는 것”
영화를 살펴보기 전, 두 가지 인터뷰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관장인 글렌 로리 인터뷰(2019)이고, 나머지 하나는 마리아 발쇼 테이트 미술관장 인터뷰(2022) 입니다.
두 사람은 국제 미술사를 주도하는 기관의 수장인데, 공통적으로 해 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르네상스, 바로크, 인상주의, 피카소, 모더니즘 등 한 가지 선으로 이어지는 ‘단선적 미술사’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MoMA는 30, 40년 동안 (미국과 유럽 중심의) 특정한 역사와 연결지어 생각되어 왔다. 앞으로는 이러한 절대적 역사를 이해시키려 하기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할 것이다. (…) 미술관이 기존에 보여줬던 단선적 미술사는 아주 간단해서 강력했지만 그것이 예술을 대표하지는 못했다. 이해하기 쉽지만 진실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MoMA가 모든 미술사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한다.(글렌 로리)
미술사는 절대 고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에 맞춰 항상 변한다. 21세기 초반까지 우리가 알았던 미술사는 남성 미국인 유럽인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완벽하지도, 절대적이지도 않다.
지금 런던만 봐도 거주자 50%가 흑인과 소수 인종이다. 게다가 항상 열심히 활동해왔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성 예술가는 물론 한국 일본 이집트 케냐 인도 등 정말 다양한 곳에 예술가들이 있다. 우리 미술관이 피카소를 내다 버리진 않겠지만, 과거의 좁은 미술사에서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하려고 하는 것이다.(마리아 발쇼)
두 기관장의 발언은 개인의 의견이 아닌, 국제 미술사의 대다수가 수년 전부터 공통으로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미술사는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만 이뤄졌던 것이지, 그것이 세계 미술사는 아니니까요.
이런 흐름에서 미술사는 ‘백인 남성’이 아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주목받은 것이 ‘선주민 예술’과 ‘여성 예술가’입니다.
북유럽 사미족의 이야기를 실로 그리다
이 지역의 사미족들은 집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반대했지만, ‘까마귀’처럼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온 스웨덴 경찰들이 이들을 연행해 강제 이주시켰죠. 브리타는 이 집회에 직접 참여했던 기억을 자수로 남겼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스웨덴에서도 노르웨이에서도 정식 역사로 기록되지 않은 사미족의 이야기를 자수를 통해 기록해 나갔습니다. 어린 시절 스웨덴의 선주민 기숙 학교로 보내져서 스웨덴어를 ‘모국어’라고 강제로 교육하며 자신이 나고 자란 문화를 지우려는 정책을 보고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그녀는 회고합니다.
작품에서 유럽 사회가 주목한 것은, 자연을 자원을 가져오는 소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며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미족의 문화입니다. 댐 건설 반대 시위를 했을 때 사미족들은 함께 살아가는 강이 파괴되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자연에게 오만한 태도를 보이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서 말이죠.
영화 ‘사미 스티치’에서는 기후 변화로 순록의 개체수가 감소하고, 이로 인해 오래전부터 내려온 문화를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미족의 젊은 세대 이야기까지 보여줍니다. 즉 사미족 신화와 예술보다 기후 위기와 이에 대한 저항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선주민 문화가 왜 주목을 받는 것인지, 그들의 문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살펴보면서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였습니다.
칸딘스키보다 먼저 추상화를 그린 화가
그녀가 주목받은 이유. 힐마는 추상 미술의 개척자로 여겨지는 칸딘스키보다 먼저 추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런데도 미술계에 그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동안 미술사가 얼마나 남성을 중심으로 쓰여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죠.
독일의 미술사가 율리아 포스는 일간지 프랑크프루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미술사는 다시 쓰여야한다’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힐마 아프 클린트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칸딘스키가 처음 추상화를 그린 1911년보다 조금 앞선 1906년 첫 추상 작품인 ‘원시적 혼동’을 그립니다. 그러나 신지학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로부터 ‘이 그림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 향후 50년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충격을 받습니다. 1944년 세상을 떠날 때 자신의 추상 작품은 20년 동안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맙니다.
그녀의 그림을 물려받은 조카는 20년이 지나 작품을 세상에 보이기 위해 미술관을 찾아가지만 전시 이력도 없고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합니다. 처음 빛을 본 것은 198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그룹전에 포함되면서 부터 입니다.
그리고 약 30년이 지나고 미술사가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나서야 그녀의 작품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그의 예술 세계를 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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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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