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공매도와의 전쟁'이라는데…공매도는 주가 급락의 원흉? 방파제?
✏️ 뉴스쉽 네 줄 요약
· 불법 공매도가 현실로 드러나면서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거세졌고, '한시적 공매도 금지'와 같은 전례없이 강도 높은 개선안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 공매도 제도를 무리하게 손질할 경우 고평가 된 주식을 적정 가격으로 수렴시켜 인위적인 주가 부양이나 주가 급락을 막는 공매도의 순기능이 작동을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 하지만, 우리 주식시장처럼 다양성과 깊이가 충분치 않을 때 공매도는 오히려 주가 하락을 더 부추기며 시세 조종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 결국,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원흉인지, 아니면 급락의 방파제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공매도와의 전쟁은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로 끝이 날 수 있습니다.
지난달 4일, 미국의 국채 금리가 치솟으면서 우리 주가 시장은 6개월 만에 2400대로 내려앉았습니다. 지난 3월 이후 6개월 만이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4.8%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미 국고채의 금리가 치솟으면,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던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가장 안전한 투자 자산으로 꼽히는 미 국채가 수익률까지 5%에 육박한다면,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투자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인 투자자들은 다른 지표를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그건 바로 공매도 거래대금입니다. 6개월 만에 코스피가 2400대로 내려앉은 날, 참으로 공교롭게도 공매도 거래대금이 직전 거래일보다 4,500억 넘게 치솟았습니다.
오비이락일까요? 아니면, 개인투자자들의 뿌리 깊은 의심처럼 외국인 및 기관 투자자들의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원흉인 걸까요? 이처럼 논란만 일으킨다면 공매도는 도대체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 이번 뉴스쉽에선 공매도를 둘러싼 논란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려 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공매도"
5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여전히 공매도는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공매도는 특정 종목의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 기법입니다. 가령, 잘 나가던 특정 종목에서 주가 하락의 신호들이 나타날 때 누군가로부터 해당 종목의 주식을 차입해 매도한 다음 실제 주가가 하락하면 다시 주식을 사서 갚고 차액만큼 수익을 챙기는 것입니다.
딱 봐도 복잡해 보이는데, 이걸 왜 하는 걸까? 통상, 공매도는 특정 종목이 자신의 실제 가치보다 시장에서 더 고평가 받고 있다고 여겨질 때 '조만간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에 기초해 이뤄지는 투자입니다. 실제로 주가가 하락한다면 하락한 만큼 수익을 챙길 수 있지만, 반대로 예상과 달리 주가가 계속 상승한다면 그만큼 손실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항상 이기는 투자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만약 막대한 자본을 가진 외국‧기관 투자자들이 특정 종목을 향해 대규모로 공매도 주문을 넣는다면 멀쩡한 종목조차도 주가가 하락하면서 이들 투자자들만 이득을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식을 판다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면,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주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투자의 승패가 이미 결정됐다는 의미로 공매도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 주식시장에서 공매도에 참여하는 개인투자자는 전체의 1~2%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외국 또는 기관 투자자에 의해서 이뤄집니다. 또한, 개인은 공매도 상환 기간이 90일로 제한돼 있는 데 반해, 기관과 외국인은 상환 기간에 제한이 없고, 담보비율 역시 개인은 120%인데 반해 기관과 외국인은 105%입니다. 이런 차이에서 비롯된 차별적 효과는 시장을 왜곡시켜 누군가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신을 부추기는 '무차입 공매도'
무차입 공매도는 존재하지도 않는 주식으로 매도 주문을 넣는 것입니다. 무차입 공매도가 만연할 경우 매도 주문량이 유통 가능 주식 수량을 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매도량을 부풀린다면, 주가 하락을 더욱 부추길 것입니다.
무차입 공매도는 은행 거래와 달리 주식 거래는 'T+2 결제제도'를 따른다는 점을 악용합니다. 주식 거래는 매도 주문을 넣더라도 결제는 거래일(Transaction Date)로부터 2거래일 뒤에 이뤄지기 때문에 매도 주문과 결제 사이에 잽싸게 공매도 주문량만큼 사후 차입하는 것입니다.
실제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20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만, 당시만 해도 '명동 백할머니'로 알려진 투자의 대모 백희엽 일가가 세운 '우풍상호신용금고(이하 우풍금고)'가 있었습니다. 잘 나가던 우풍금고는 2000년 3월 29일 대우증권을 통해 코스닥 종목인 성도이엔지의 주식 15만 주를 공매도했습니다.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증권사에 먼저 매도 주문을 넣고, 결제일 이전에 시장에서 15만 주를 구해 대우증권에 상환할 계획이었습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15만 주는 성도이엔지의 유통 가능 주식 수의 절반에 달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양이지만 한꺼번에 공매도 주문을 넣고 주가가 떨어지면 차익만큼 수익을 챙기려 했던 건데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공매도 주문량만큼 주식을 시장에서 구하지 못한 것입니다. 실제로, 결제일이 다가왔음에도 우풍금고는 13만 주나 결제하지 못했습니다. ('우풍금고 공매도 미결제 사태') 수익은 고사하고 미결제 사태가 알려지면서 고객들은 너도나도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했고 이내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같은 해 11월, 금융감독원은 이 사태를 대규모 무차입 공매도로 시세 차익을 노리다가 실패한 주가조작 사건으로 결론 내렸고, 무차입 공매도 금지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지난 2020년에는 무차입 공매도 등 불법 공매도에 대해선 1년 이상의 징역형(최대 30년)에 처하도록 법이 개정됐습니다. 지난해부터는 불법 공매도 조사 전담 조직까지 설치해 불법 공매도 적발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개인 투자자들은 지금까지도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의 의한 무차입 공매도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고, 이로 인해 공매도로 인한 주가 하락의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면서 개인 투자자의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의심이 현실로
우리 주식시장은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공매도를 전격 금지했고, 지난해 5월부터 부분적으로 재개했습니다. (2021년 5월 3일, 코스피200지수, 코스닥150지수 종목에 한해 공매도 재개)
BNP파리바는 공매도 재개 이후인 지난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카카오 등 101개 종목에 대해 400억 원 규모로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한 걸로 조사됐습니다. 부서 간 내부거래 과정에서 소유 주식을 중복 계산해 부풀린 다음에 과다 표시된 잔고를 기초로 공매도를 한 것입니다. 매매 거래 다음날마다 부풀린 주문량만큼 결제 수량이 부족하다는 걸 인지했음에도 개선하지 않고 사후 차입하며 무차입 공매도를 방치했다고 금감원은 판단했습니다.
HSBC도 지난 2021년 8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호텔 신라 등 9개 종목에 대해 160억 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해 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들도 공매도 주문을 먼저 넣어놓고 결제일 이전에 사후 차입해 온 걸로 금감원은 보고 있습니다.
시세 조종 행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 법으로 금지되면서 무차입 공매도는 그렇게 시장에서 사라진 걸로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조사로 여전히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이 드러났고 규제 당국도 이제는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꿨습니다.
이제 전선은 공매도 제도 자체로 확대됐습니다. 국회에선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공매도를 한시적으로 금지하고 대대적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급기야, 금감원은 이달부터 <공매도 특별조사단>을 만들어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공매도 거래를 전수 조사해 무차입 공매도는 물론, 시세 조종 등 제도 악용 여부까지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의심이 현실로 드러나자 공매도와의 전면전 시작된 것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상우 기자 as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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