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탬또롤'을 아시나요, 16세의 태민이 30살이 되기까지 [허지영의 케해석]

허지영 기자 2023. 11. 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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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주목할만한 케이팝 아티스트, 허지영 기자가 케-해석 해봤습니다!

올해 초, MBC 보이그룹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 '소년 판타지 - 방과후 설렘 시즌 2'에서는 독특한 현상이 발견됐다. 50여 명의 연습생이 본격적인 방송에 들어가기에 앞서 개인 오디션 무대로 첫선을 보이는 회차였다. 커버 무대들이 쏟아져 나오는 와중 유독 많이 들리는 이름이 있었다. '태민'이었다. 이 방송에서만 3명의 연습생이 첫 오디션 심사 곡으로 태민의 곡을 선택했다. 현재 판타지 보이즈로 데뷔한 홍성민과 소울이 각각 '크리미널(Criminal)'과 '굿 바이(Goodbye)'를, 시류가 '플레임 오브 러브(Flame of Love)'를 택했다. 연습생들은 '감히 이걸 어떻게'라는 표정으로 감탄사를 보냈다.

16세에 데뷔해 어느덧 서른이 됐다. 태민에게는 특별한 수식어가 붙었다. '역솔남(역대급 솔로 남자 가수)', '탬또롤(태민이 또 롤모델)'이다. 아이돌 가수에게 '-돌'이라는 수식어는 팬이나 소속사에 의해 자의적으로 붙기 마련이지만, '역솔남', '탬또롤'은 팬과 대중, 선후배 아이돌이 모두 인정하는 태민의 자랑스러운 수식어가 됐다. 그러나 태민도 데뷔할 때부터 완성형은 아니었다. 데뷔 초에는 '음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래에 취약했던 그다. 하지만 지금은 단독 콘서트까지 너끈히 해낸다. 그야말로 '잘 자란 막내'의 표본인 태민, 그가 만인의 롤모델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2008년 '누난 너무 예뻐' 활동 당시 태민과 2017년 정규 3집 'Never Gonna Dance Again : Act 1' 콘셉트 포토 / 사진=SM엔터테인먼트

◇샤이니 막내가 숨겨둔 퇴폐미, '태민 추종자'의 탄생 = 태민은 아티스트 그 자체로도 재미있는 점이 많다. 16세에 데뷔해 30살이 되면서도 거의 변하지 않은 외모는 소년과 청년의 경계를 넘나든다. 슬림한 체구에 도회적인 외모, 그에 대비되는 탄탄한 근육과 힘 있는 퍼포먼스는 중성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태민 역시 '중성적인 매력'을 자신의 강점으로 꼽기도 했다. 태민은 자신의 폭넓은 비주얼 스펙트럼과 타고난 표현력을 더해 태민만이 소화할 수 있는 콘셉트를 구사해 왔다. 나원영 대중음악평론가는 곡 '무브(MOVE)'를 두고 "태민이라는 퍼포머의 신체 안에 담긴 감각적인 표현력은 '무브' 안에서 온전히 맞아떨어진 후, '우아한 손짓'과 ‘은근한 눈빛’이라는 움직임으로 발현되어, 고정된 정의에서 벗어나 ‘묘한 그 느낌’이라 할 수밖에 없는 그 ‘아찔한 끌림’을 가져다준다"며 "'무브'가 솔로 활동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트랙이 될 수 있는 것은 태민이라는 본체가 발휘하는 힘 덕분일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태민 미니 1집 'ACE' 콘셉트 포토 / 사진=SM엔터테인먼트

태민의 솔로 활동은 지난 2014년 미니 1집 '에이스(ACE)'부터 시작됐다. 샤이니 멤버 중 처음으로 솔로 앨범을 냈다. 태민은 솔로로 파격적인 변신을 감행했다. 샤이니 활동에서는 특유의 귀여운 이목구비와 슬림한 체구로 종종 '여자인 줄 알았다'는 농담을 들었던 태민은, '에이스'와 타이틀곡 ‘괴도(Danger)’를 통해 숨겨둔 퇴폐미와 섹시미를 발산했다. 첫 앨범부터 반응이 터졌다. '에이스'는 당시 각종 음반 판매량 집계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2위에 올랐다.

태민 정규 3집 'Never Gonna Dance Again : Act 1' 콘셉트 포토 / 사진=SM엔터테인먼트

태민은 본격적으로 '역대급' 무대를 만들어 나갔다. 2016년 발매한 일본 미니 1집 '사요나라 히토리(Sayonara Hitorir·Good Bye)'로는 마치 현대 무용극 한 편을 보는 것 같다는 대중과 업계의 극찬을 받았다. 2017년 발매한 정규 2집 '무브'는 또래 아이돌 가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커버하며 '무브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2020년 정규 3집 '네버 고나 댄스 어게인 : 액트 1(Never Gonna Dance Again : Act 1)'의 타이틀곡 '크리미널'은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이 인질범들에게 동화되어 그들에게 동조하는 비이성적 현상을 가리키는 범죄심리)이라는 까다로운 소재를 소화했다.

태민 정규 3집 'Never Gonna Dance Again : Act 1' 콘셉트 포토 / 사진=SM엔터테인먼트

'무브병', '원트병'을 앓으며 태민의 무대를 종일 돌려본 덕일까. 그를 존경하던 후배 중 일부는 '태민 추종자'로 발현했다. 같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인 엑소 시우민, NCT 해찬, 제노, 지성부터 온앤오프 제이어스, 세븐틴 호시, 에스에프나인( 찬희 등 태민을 롤모델로 꼽은 아이돌은 셀 수없이 많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제노와 지성, 김동한, 찬희 등이 '탬또롤 선발대회'를 열고 태민을 향한 '덕력'을 겨루기도 했다. 온앤오프 제이어스는 태민의 콘서트에 초청된 후 자신을 '성덕'이라 지칭하며 온앤오프의 SNS에 감격을 표현하기도 했다.

◇15년 전엔 한 소절 부르던 소년, 지금은 '킬링 보이스' 등판 = 그룹으로도, 솔로로도 정점에 이른 아티스트지만 태민도 데뷔할 적에는 서투른 점이 많았다. 샤이니가 데뷔할 적인 2008년에는 보컬, 댄스, 랩 등 그룹 내 멤버의 포지션이 뚜렷할 때였다. 태민은 16살의 어린 나이로 퍼포먼스의 핵심 멤버 역할을 수행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소녀시대 윤아 이후 2년 만에 발굴한 인재였던 만큼 퍼포먼스 기량은 뛰어났다. '누난 너무 예뻐', '산소 같은 너(Love Like Oxygen)', '아미고(Amigo)', '줄리엣(Juliette)', '링딩동(Ring Ding Dong)' 등 줄곧 센터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변성기 및 경험 부족 등의 이유로 보컬 실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데뷔곡 ‘누난 너무 예뻐’에서도 태민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대로 퍼포먼스형 아이돌 노선을 굳혀도 괜찮았다. 샤이니는 그룹이고 태민은 퍼포머로서 이미 100%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태민은 어려운 성장의 길을 선택했다. 2009년 '줄리엣'에서 태민이 받은 파트는 고작 3소절. 그러나 3년이 지난 2012년, 태민이 20살이 되던 해 발매된 곡 '셜록(Sherlock)'에서 그는 메인 보컬인 종현과 동등하게 파트를 주고받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그 뒤 샤이니는 '파트 공산당'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공평하게 파트가 분배되었고, 사실상 포지션도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태민의 도약 덕에 그룹 운영 체제가 바뀐 것이다. 최근 태민은 신보 ‘길티(Guilty)' 발매를 맞아 라이브 콘텐츠인 '킬링 보이스'로 보컬 실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태민 '킬링 보이스' 갈무리 / 사진=딩고뮤직

춤을 잘 추는 만큼 노래도 쉬웠을까. 태민은 최근 보컬이 미친 듯이 성장했던 19~20세 시기를 언급했다. BTS 슈가의 유튜브 '슈취타'에 나온 태민은 "딱 20살을 목표로 삼았다. 16살에 데뷔하고, 나의 20대에 그려놓은 이미지는 '나는 최고가 되어 있어야지, 그렇게 될 거야'였다. 그래서 19살 연말부터 20살 새해까지 열심히 자기 계발에 힘을 썼다. 그런데 20살이 된 내 모습을 보는데 너무 부족한 거다. 연습실로 가서 소리 지르면서 엉엉 울었다"고 고백했다. 빛나는 무대 뒤 태민이 얼마나 좌절하고 괴로워했는지 알 수 있는 인터뷰다. 이를 보면 '탬또롤', '역솔남'은 태민의 타고난 퍼포먼스 기질 뿐만 아니라, 태민이 15년 간 걸어온 피나는 노력의 길에 대한 존경까지 담겨 있는 셈이다.

태민 미니 4집 'Guilty' 이미지 / 사진=SM엔터테인먼트

◇콘셉트 장인이 2년간 품어온 신곡, '길티' = 지난달 30일, 태민의 미니 4집 '길티(Guilty)'가 발매됐다. 전작 '어드바이스(Advice)' 이후 무려 2년 5개월 만이다. 태민은 이 곡을 '어드바이스' 때부터 품고 있었다. 지난 6월 발매된 샤이니 정규 5집 '하드(HARD)' 미팅 당시 이 곡을 샤이니의 곡으로 싣자고 건의했지만, 멤버들이 '이 곡은 네가 해야 한다'며 말렸다고 한다. 멤버들의 말이 맞았다. 태민은 '길티'를 통해 소년, 청년, 그리고 빌런까지. 태민만이 오갈 수 있는 광활한 스펙트럼을 넘나들었다.

동명의 타이틀곡 '길티'는 웅장한 30인조 스트링 사운드에 태민의 섬세한 보컬이 어우러진 곡이다. 관전 포인트는 뮤직비디오다. 미성숙한 소년의 모습을 한 태민이 어두운 골목길에서 기괴하게 춤을 추는 모습은 오싹함과 처연함, 외로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안긴다.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는 태민의 이러한 음악과 퍼포먼스를 두고 "태민의 음악을 듣는 것은, 그리고 그의 퍼포먼스를 바라보는 것은 마치 공들여 만든 현대미술 작품 한 편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태민 미니 4집 타이틀 곡 'Guilty' 두 번째 뮤직비디오 티저 갈무리 / 사진=SM엔터테인먼트

태민도 이번 앨범에 자신감을 가졌다. 앨범 발매 당일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태민은 "'태민' 하면 생각나는 아이덴티티가 있고 클리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앨범은 이런 부분을 다 아우른 앨범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마초', '섹시' 등 성적 매력을 지칭하는 이분법적인 단어에서 벗어난 중성적인 에로티시즘, 소년과 청년을 오가는 스펙트럼, 화려하면서도 심오한 미장센 등이 그러하다. 이에 티징 콘텐츠와 뮤직비디오로 이어지는 시네마틱 비디오를 통해 여태까지 보기 어려웠던 태민의 내추럴한 무드를 더했다.

태민 솔로 콘서트 'TAEMIN SOLO CONCERT METAMORPH' 포스터 / 사진=SM엔터테인먼트

'길티'는 현재 좋은 성적을 받고 있다. 발매 직후 벅스 등 국내 음원 차트에서 1위에 올랐으며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 전 세계 38개 지역에서도 1위에 올랐다. 태민은 기세를 이어 오는 12월 16일과 17일에는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단독 콘서트 ‘메타모프(METAMORPH)’를 연다. 2019년 3월 열린 'T1001101' 이후 약 4년 9개월 만이다. 타이틀곡 '길티' 무대를 포함해 태민을 '역솔남'으로 만들었던 다양한 무대가 '역대급'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태민도 "정말 획기적이고, 태어나서 본 적 없는 연출이 될 것 같다"고 자신했다. 지난 'T1001101'에서는 '홀리 워터-HOLY WATER ~ 섹슈얼리티(Sexuality)' 무대가 '레전드'로 회자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과연, 어떤 무대가 또 하나의 '레전드'로 기록될지 기대된다.

허지영 기자 he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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