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원·정용기 감독 "모두 비평 눈치만보니 영화들의 엣지 사라져"[인터뷰]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가문의 영광: 리턴즈'의 공동연출을 맡은 정태원, 정용기 감독은 꽤 의기소침해 있는 눈치였다.
2002년작 '가문의 영광'은 505만 관객이 관람했고, 2005년작인 '가문의 위기'는 452만 흥행을 이룰 정도로 명절 대표 영화로 통해온 '가문의 영광' 시리즈로 11년 만에 다시 돌아왔지만 평단의 싸늘한 반응이나 흥행 측면에 있어서 과거 전작들과 확연히 비교되는 16만 관객 관람이라는 저조한 흥행 성적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
지난 9월 21일 개봉한 영화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잘나가는 스타 작가 '대서'(윤현민)와 가문의 막내딸 '진경'(유라)을 결혼시키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미는 장씨 가문의 사생결단 결혼성사 대작전을 그린 코미디다. 주연배우인 김수미의 강력한 시리즈 제작 요청과 1편이 제작된지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1편을 지금 시대에 맞게 리메이크해보자는 정태원 감독의 제안이 맞아 떨어져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제작에 이르게 됐다. '가문의 영광' 시리즈에 기본 바탕으로 깔려 있는 B급 코미디 정서나 우연히 하룻밤을 보낸 상대와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한다는 영화 속 기본 전제는 극장 주요 관람층인 MZ세대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이질적일 수 있다. 하지만 관객들이 '가문의 영광' 시리즈에 기대하는 폭소탄이 이전작에 비해 부족하다는 점을 제외하고 대서와 진경의 풋풋한 로맨스 라인이나 홍덕자 회장의 찰지는 욕 대사는 이 시리즈만의 장점들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다.
영화의 개봉 이후 매체 인터뷰에 나선 정태원 감독과 정용기 감독은 "예전에는 욕을 먹든 안먹든 감독마다 각자의 색이 있었고 영화에 엣지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제작 과정부터 이미 비평가들을 반영하다 보니 정말 몇몇 감독들을 빼고는 모든 작품이 둥그러졌다.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다양성을 추구하는 면에 있어서는 좀 아쉬운 풍토"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 두 감독이 함께 의기투합해 '가문의 영광: 리턴즈'를 연출하게 된 계기는.
▶ 1999년때 정태원 감독님을 처음 뵜다. 그때 '비천무' 제작자셨고 저는 조감독이었다. 20년 넘게 관계를 맺고 지내다보니 서로 너무 잘 아는 사이다. 어떤 것을 하고 싶어하는지도 알고 의견도 드린다. 정태원 감독님도 저에게 의견을 주시기도 한다.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다시 연출하기를 원하셨고 신현준과 3형제의 이야기로 끌고 가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다. 1편의 반응이 좋았으니 리부트로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저는 몇해전까지만 해도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1편이 만들어진지 20년 되는 해이기에 우리나라도 리부트 작품을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더라.(정용기)
김수미 선생님이 워낙 이 시리즈를 다시 하고 싶어 하셨다. 오랜 시간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다시 만들자고 제안하셨고 김수미 선생님 소원을 이뤄 드리고 싶었다.(정태원)
- 이번 영화에서는 1편과 다른 새로운 측면을 어떻게 다루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 조폭 이야기를 빼야 한다는 건 다들 같은 의견이었다. 그때와는 여성들의 지위 또한 많이 달라진 시대 아닌가. 1편에서는 김정은이 연기한 진경이 오빠들이 시키거나 아버지가 시키는 일에 꼼짝 못하고 다 곧이곧대로 했다면 이번 영화에서 유라가 연기한 진경은 자신의 의사도 적극적으로 표시하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액션신도 진경이 활약하는 내용으로 바꾸었다. 한 침대에서 대서(윤현민)과 진경이 일어나면서 시작하는 건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많이 패러디하지 않았나. 이번 작품에서는 진경이 대서의 현여친과 만나는 카페신이나 대서와 진경 모친(김수미)의 상견례 장면 등의 연출에 힘을 쏟았다. (정태원)
- 2002년작 '가문의 영광'은 505만 관객이 관람했고, 2005년작인 '가문의 위기'는 452만 관객이 보는 등 대히트를 친 작품들이었다. 이번 6편에서 흥행을 위해 시도한 측면이 있다면.
▶ 영화의 시사 모니터링을 다양하게 진행했다. 젊은 관객층들에게 각장면들에 대한 평가를 적나라하게 받았고 불편해하는 장면 등에 대해서는 편집에서 최대한 반영을 했다. 정말 신경을 많이 썼는데 혹독한 기사나 비평, 그리고 SNS 반응들에 사실 당혹스러웠다. 최대한 젊은 세대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탁재훈의 출연 부분이 많이 편집돼서 많이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장면별로 충분히 모니터링 관객들의 반응을 고려했고 검증 과정을 그렇게 많이 거쳤는데 몇몇 언론에게 너무 난도질 당하다보니 검증 과정을 그렇게 많이 거쳤기에 마음이 안좋다.(정태원)
- '가문의 영광'이 한창 흥행하던 당시와는 지금의 영화 개봉을 둘러싼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개봉 초반 영화를 향한 비판적 평론이나 관객 반응에 대해 많이 당혹스러워 하는 걸로 느껴진다.
▶ 예전에는 욕을 먹든 안먹든 감독마다 각자의 색이 있었고 영화에 엣지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제작 과정부터 이미 비평가들을 반영하다 보니 정말 몇몇 감독들을 빼고는 모든 작품이 둥그러졌다.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다양성을 추구하는 면에 있어서는 좀 아쉬운 풍토다. 지금은 어떤 감독이 데뷔해도 똑같다. 예전에는 한 사람의 감독에 맞는 장르와 특색이 있었지만 지금은 웰메이드 상업영화들이 줄을 지어 나오지만 둥글둥글해졌다. 작가주의 감독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렇다. 예전에는 포스터만 쫙 붙여 놓고도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하면 됐는데 지금은 너무 정보가 많다. 너무 다들 자세히 소개한다. 그러다보니 다들 너무 겁을 먹는다. 비판을 받을까봐 겁을 먹고 가지들을 쳐내다보니 엣지가 다 사라졌다. 개성이 없는 클론 같은 것들이 나오고 있다.(정태원)
- 윤현민과 유라의 로맨스 라인은 사실 기대 이상으로 유려하게 그려졌다. 윤현민과 유라의 캐스팅 과정은 어땠나.
▶ 유라는 사실 이전에 낙점한 배우가 있었는데 막상 미팅을 해보니 캐릭터와 붙질 않더라. 회사에 비상이 걸렸다. 고민하던 차에 예전 SNL에 유라가 나왔던 코너가 생각나더라. 전 제작진에게 해당 영상을 보여주니 다들 유라의 천진난만함에 만장일치를 보였다. 마침 유라의 소속사 양근환 대표와 오랜 형동생 사이여서 바로 연락을 했다. 진경은 허당기가 있으면서도 예쁘고 깍쟁이스러운 면도 있어야 했는데 유라가 정말 딱이었다. (정태원)
주연배우 캐스팅 전 미술 작업이 필요해서 부산에서 한창 헌팅을 하고 있었다. 윤현민 배우는 시나리오를 주고 딱 3시간 만에 책을 다 읽은 후 바로 출연하겠다고 연락을 주더라. 윤현민은 정말 인간성도 좋고 예의도 바르고 이번 작품으로 형제처럼 지내게 됐다. 그런데 요즘 미안해서 잘 못보고 있다. (정용기, 정태원)
- 제작보고회 당시 지금 주연배우들이 1순위가 아니었다고 말해서 논란 아닌 논란을 일으켰다.
▶ 그런 말로 문제가 될 사이라면 애초에 그런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을 거다. 배우들이 그 발언으로 삐치거나 하지 않았다. 서로 깔깔 거리며 웃어넘겼다. 하루도 촬영하고 뒷풀이를 하지 않고 헤어진 적이 없을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정태원)
- 신현준, 임형준 등 '가문의 영광' 시리즈에서 형제들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포복절도할 웃음 같은 것들이 많이 생략된 느낌인데.
▶ 애초 두 형제가 해외에 골프장을 개척하러 나갔다는 설정이 있었다. 엔딩에서 일본 골프장 계약을 하고 돌아와서 가족과 만나는 장면도 계획을 했었는데 시간이 많이 모자라 없앴다. 임형준이 꽤 아쉬워 했다. (정태원)
- 이번 영화의 비판적 반응이나 흥행과 관련해 어떤 고민을 했나.
▶ 저는 원래 액션물이나 스릴러 쪽에 더 관심 있던 사람이어서 코미디를 할 생각은 못했는데 정태원 대표님 권유로 연출 맡았던 '가문의 위기'가 흥행이 너무 잘 됐다. 그 이후 코미디 위주로 계속 제안이 들어오더라. 우리가 추구하는 웃음은 어떤 웃음일까 . 웃음에 여러 종류의 웃음이 있지 않나. 가벼운 위트부터 저급한 농담, 하이컨셉의 농담도 있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획일화된 웃음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친한 사람과는 너저분한 농담도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웃음에도 여러가지 다양성이 있는데 부류를 나눠서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 웃음을 주는 것에 대해 정상적이지 않게 바라 보는 것 아닌가. 그런 것들이 사회를 너무 획일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나도 야한 농담도 하고 싶고 또 듣고 싶을 때도 있는데 '영화 속에서 왜 야한 농담을 하면 왜 안되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 웃음이 싫으면 안보면 되는 건데 말이다. 저희 아내도 이번 6편을 보면서 건전하고 편하게 봤다고 하더라. 칭찬이면서도 동시에 개성이 없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가문 시리즈의 원초적 웃음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사라지니 평범한 웃음이 되어버렸다. 어떤 영화들을 찍을 수 있고 찍어야 하는가 의문도 든다. 가문 시리즈는 저에게 큰 기쁨도 주고 슬픔도 줬고 저에게 뗄레야 뗼 수 없는 필모그래피다. (정용기)
이 시리즈의 1, 2편을 찍으며 당시에도 욕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10년, 15년이 지나고나니 욕하는 사람들이 없더라. 그래서 드는 생각이 '영화라는 매체가 바라보는 시점과 시기에 따라 해석과 생각이 달라지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6편도 5~10년 뒤에 다른 감성과 시대상에서 보면 또 다르게 바라봐 줄수 있지 않을까. 지금 시대는 모든 문화 작품들을 너무 심각하게 보는 상황인 것 같다. 이번 영화가 흥행이 안 된 것에는 전편과 달리 SNS의 발달과 빠른 보급에도 영향이 있다고 본다. 기자나 평론가의 공격을 받을 만한 영화는 이제 하지 말아야겠다는 자괴감도 든다.(정태원)
- '가문의 영광6' 연출 측면에서 요즘 시대에 맞는 정서적 변화를 위한 노력이 있었다면.
▶ 진경 캐릭터를 주체적 여성으로 그리려고 노력했다. 편집 과정에서 여러 차례 영화학과 학생들에게 블라인드 시사를 진행하며 젊은 세대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시도들을 했었다. 우리 시리즈를 조폭 코미디라고 하지만 사실 조폭 캐릭터는 추성훈이 연기한 얏빠리밖에 없다. 김수미 배우가 연기하신 홍덕자 회장도 옛날에 은퇴한지 오래다. 어떤 특정한 직업군을 코미디 영화에서 희화화했다가는 비판당하기 쉽상이다.(정태원)
- 윤현민, 유라에게 여러 차례 칭찬과 감사의 뜻을 표해왔는데.
▶ 윤현민은 시나리오를 준지 3~4시간 만에 캐스팅 수락 의사를 전해왔다. 그 이후로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잘해줬다. 유라는 1편의 김정은을 뛰어넘기 위해 포크를 뜯고 컵을 깨는 등 다양한 표정을 만들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유라는 현장에 올때마다 많은 걸 준비해오고 시도를 했다. 여러 차례 NG가 나도 굴하지 않더라. 정말 잘 될 것 같은 배우다. (정용기)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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