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저 너머가 북녘땅”…평화의 길 걷기

KBS 2023. 11. 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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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요즘 전국 곳곳에 오색 단풍이 절정을 맞고 있죠.

주말이면 가을 정취를 만끽하려는 나들이객들로 붐비는데요.

DMZ, 비무장지대 접경지인 경기도 연천군에선 화창한 가을 날씨 속에 가족, 친구와 함께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고 합니다.

‘평화의 길’ 걷기 행사가 열린 건데요.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고, 통일의 의미를 함께 나누자는 취지로 마련된 행사였다고 하네요.

전쟁과 평화, 분단에 대해 남다른 사연을 갖고 계신 분들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최효은 리포터가 만나고 왔습니다.

함께 보시죠.

[리포트]

수도권 DMZ 접경지이기도 한 경기도 연천이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에 열린 정전 70주년 기념 ‘평화의 길 걷기’ 행사가 열린 것입니다.

["오늘 136번 받았어요. 오늘 열심히 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사 : "표정이 너무 밝으세요. 위로 늘려."]

몸풀기 체조로 준비운동을 마치고 이제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출발선 앞에 선 시민들에게선 가벼운 설렘과 기대감마저 느껴집니다.

["출발!"]

저는 지금 DMZ 평화의 길 걷기 행사가 진행되는 현장에 와 있습니다. 이제 이 길은 사람과 이야기로 가득 채워질 예정인데요. 오늘 저와 함께 이 길 걸어보실까요.

["(여러분 준비되셨어요?) 네. (파이팅!) 파이팅!"]

엄마 아빠를 따라나선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평화는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 우리가 걷는 이 행사가 무슨 길이죠?) 평화의 길."]

[박지우/초등학생 : "(평화가 뭐라고 생각해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거요."]

[박태규/초등학생 : "폭력 없는 거요."]

[김예현/초등학생 : "재밌게 놀 수 있는 거요."]

해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대답 속에 평화의 본질이 들어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300여 명의 참가자는 군남홍수조절지에서 시작하는 DMZ 평화의 길 13코스를 거쳐, 연천의 명소 댑싸리 공원까지 총 4.85km의 길을 걷게 됩니다.

특히, 매년 장마철이면 북한의 황강댐 방류 여부로 긴장감이 감도는 군남홍수조절지는 민족 분단의 아픈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송중섭/연천군 DMZ 해설사 : "이쪽 6km 전방에 휴전선이 있습니다. (이 강은) 함경도 마식령 산맥에서 발원해서 저쪽에서 내려오는 한탕강과 합쳐져서 파주 오두산 전망대 앞에 한강에 흡수되는 국경 하천입니다."]

임진강 물길은 DMZ를 관통해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가지만, 북녘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은 두고 온 가족에게 소식조차 전할 길이 없습니다.

벌써 여덟 번째 이 길을 걷는다는 황창진 씨는 늘 그랬듯 오늘도 아버지를 떠올려 봅니다.

[황창진/인천광역시 : "아버님이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실향민이셔서 아버님 통해서도 북쪽 소식도 되게 궁금하고 그래서 오히려 더 관심이 많이 가게 됐습니다."]

[황창진/인천광역시 : "(오늘 이렇게 걸어보는데 북도 한번 걸어보고 싶으시겠어요.) 네, 아버님 고향 청진에 선산이 있다고 하는데 그쪽 편으로 해서 한번 둘레길이 있으면 걸어보고 싶어요."]

무엇보다 평화의 길에서 통일을 향한 걸음이 이어지기를 바랐는데요.

[황창진/인천광역시 : "한때 중단됐었다가 이렇게 행사를 지금 자꾸 올해에 와서 다시 활기차게 하니까 이런식으로 가면 통일의 길도 앞당겨지지 않을까요?"]

비록 전쟁으로 분단의 상징인 DMZ 지역이 생겨났고 고착화했지만, 한편으론 통일을 꿈꾸는 공간이 되고있는 것입니다.

이른 아침 서울에서 왔다는 할머니와 손녀가 보폭을 맞춰 나란히 걷습니다.

[윤재일/서울특별시 : "제가 파킨슨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길 걷는 거예요."]

[오준희/초등학생 : "(왜 이렇게 손 꼭 잡고 걷는 거에요?) 저는 혼자 힘들게 걷는 것보다 가족들이랑 손잡고 가는 게 더 힘도 안들고 행복해서..."]

이렇게 서로의 손을 꼭 쥔 채, 분단과 세대를 뛰어넘는 여정은 계속됐습니다.

한 시간여를 걸어 옥류봉에 도착하니, 높이 10m에 달하는 거대한 조각상 ‘그리팅맨’이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북쪽을 향해 인사를 하는 ‘그리팅맨’.

남북이 대립을 멈추고, 화합의 길을 열자는 염원이 담긴 작품입니다.

[유영호/그리팅맨 조각가 : "여기는 남과 북이 사실 만나서 접점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치열한 현장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인사를 통해서 저희가 어떤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하나의 상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유영호 작가는 2012년 우루과이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세계 10여 곳에 ‘그리팅맨’을 세우며 화해와 소통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남북의 그리팅맨이 서로 반갑게 인사할 날을 그려봅니다.

[유영호/그리팅맨 조각가 : "사실 이 옥녀봉에 세워진 그리팅맨은 북한에 맞은편에 보이는 마량산이란 곳에 세워서 그리팅맨을 세워서 서로 마주보고 인사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기 때문이고요. 현실적으로 세워질 수 있다면 아마도 남북 관계도 그만큼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보면서 굉장히 노력 중에 있습니다."]

두 자녀와 함께한 아버지는 이 길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요.

[차용호/서울특별시 : "분단국가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을 해보고 앞으로 우리나라가 통일이 됐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런 내용들도 한번 다시 되새기면서 걷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큰딸 규빈 양은 멀게 느낀 분단과 통일을 조금은 가깝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차규빈/초등학생 : "여기 걸으면서 뭔가 통일이 되면 저기 위에도 올라가 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어요."]

시민들과 이런저런 사연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걷기 행사의 종착지에 다다랐습니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은 고사포가 떨어졌던 지역이라고 하는데요. 이처럼 연천은 분단의 아픔을 오롯이 가지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새로운 희망과 평화의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2014년 북한이 풍선에 매달린 대북 전단을 향해 쏜 고사포가 떨어진 곳도 있습니다.

또 바로 옆 공원에선 붉게 물든 댑싸리 사이로 ‘평화의 길 걷기’에 참여한 시민들이 추억 만들기에 한창입니다.

이처럼 갈등과 평온이 공존하는 연천에서 지역 주민 금가현 씨는 5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기억해 봅니다.

[금가현/경기도 연천군 : "저희 아버님은 (6.25 전쟁 당시) 지게부대 KSC라고 지게부대 출신이신데 17살 때 정식훈련 받고 지게부대원들을 인솔하는 그런 부대원으로 활동하셨어요."]

아버지가 지킨 땅에서 전쟁이 남긴 교훈을 되새기며 평화의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금가현/경기도 연천군 : "저쪽이 북한에서 내려오는 임진강이고요. 저쪽에서 쭉 내려와서 이렇게 흐르죠. 며칠 있으면 아마 두루미들이 많이 올 거예요. (두루미) 가족들이 그래서 이쪽에 장관을 이룰 텐데 두루미처럼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언젠가 오겠죠."]

저마다 사연도 생각도 다르지만 이곳에서 만난 시민들은 통일로 미래로 향하는 이 길이 언젠가 남쪽 끝에서 북쪽 끝으로 닿을 수 있기를 희망했는데요.

[한승우/서울특별시 : "아버님이 살아생전에 계셨던 함흥 동네나 여러 가지 동네, 그 다음에 북한의 핵심 평양이라든가 개성도 가서 사진을 찍어서 같이 좋은 작품 하나 남겨서 후세에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노혜영/인천광역시 : "남북관계가 원활히 잘 돼서 끝에는 해피엔딩처럼 통일이 돼서 모든 국민이 다 하나 돼서 모든 게 즐거움을 같이 누릴 수 있는 그런 바람입니다."]

이들의 바람이 모여, 미래의 통일 한반도로 향하는 걸음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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