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고령화 이슈가 클래식 음악으로…신진 작곡가들의 도전

강애란 2023. 11. 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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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심포니 '작곡가 아틀리에'…플라스틱병 엮어 악기 직접 만들기도
타악기에 고무공 비비고 현악기 줄에 클립 끼워 연주하는 새로운 시도
국립심포니 '작곡가 아뜰리에' [국립심포니오케스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고래의 '히잉', '위이이잉' 하는 소리를 넣고 싶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소리가 안 나더라고요." ('고래' 작곡가 조윤제)

"사이렌 소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갑작스럽게 들리고, 고령화라는 주제를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아 빼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집에 가고 싶어' 작곡가 노재봉)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 모인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악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다소 힘겹게 연주를 이어갔다. 박자가 맞지 않자 지휘봉을 든 다비드 라일란트 예술감독은 같은 구간을 여러 번 반복했다. 연주 도중 음을 틀린 한 단원은 옆에 있는 동료에게 해당 부분 연주에 대해 상의하기도 했다.

이날 베테랑 연주자들이 진땀을 흘리는 현장에서는 국립심포니의 신진 작곡가 양성 사업인 '작곡가 아틀리에' 2기의 오케스트라 리딩이 진행 중이었다. 오케스트라 리딩은 작곡가가 오선지에 그려낸 음표에 소리를 입히는 작업이다. 단순히 악보를 연주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휘자와 단원들의 의견이 더해져 악보 수정과 보완이 이뤄지는 과정이다.

떨리는 실험대에 오른 신진 작곡가는 김은성(39), 김재덕(28), 노재봉(28), 이아름(34), 조윤제(33) 다섯 명. 1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이들은 10개월간 각각의 주제로 창작곡을 완성했다.

국립심포니 '작곡가 아뜰리에' [국립심포니오케스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은성은 음악적 환상을 다각도에서 포착한 '오케스트라를 위한 만화경', 김재덕은 애국적 메시지를 담은 '한국 환상곡', 노재봉은 고령화 시대를 담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집에 가고 싶어', 이아름은 시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음악으로 푼 '아플라'(aplat), 조윤제는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 의식을 담은 조윤제의 '고래'를 내놨다.

이들은 기존 클래식 음악의 문법을 벗어나 낯설고, 때로는 기이하기까지 한 시도를 감행했다. 물 높이를 다르게 채운 2개 와인잔 테두리를 손가락 끝으로 연주하는 '글라스 하프'나 현악기 줄에 클립을 끼워 쇳소리가 나게 연주하는 특수주법은 평범한 축에 속했다. 흙이나 시멘트를 바를 때 쓰는 면이 평평한 철로 된 도구인 흙손을 현악기 활로 긋거나, 타악기에 고무공을 비벼 소리를 기이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조윤제는 플라스틱의 공격으로 아파하는 고래를 표현하고자 플라스틱으로 된 요구르트병을 줄줄이 엮은 악기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다만, 음향적인 문제 때문에 이번 오케스트라 리딩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의 곡에는 붙어있는 두 음을 빠르게 치는 트릴, 높이가 다른 두 음 사이를 급속하게 미끄러지듯 연주하는 글리산도 주법이 가득하다. 이는 악기 하나하나가 고래를 상징하도록 한 것이다.

조윤제 작곡가가 만든 플라스틱병 악기 [국립심포니오케스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과거 환경 관련 전공을 고민하기도 했다는 조윤제는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서 음악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사치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며 "그래서 자연의 사운드에 관심을 갖다 보니 전자음악까지 공부하게 됐다. 기존과는 다른 느낌을 탐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낯설고 이질감이 드는 현대음악을 내놓은 이들은 오케스트라 리딩에서 한계를 마주하기도 했다. 작곡 당시에 머릿속으로 계산했던 곡의 복잡한 흐름이 연주 도중 꼬여버리거나, 익숙하지 않은 특수주법에 악기 소리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음향적인 면에서 악기 간의 균형이 깨진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이아름은 "집에 악기들이 몇 가지 있기는 하지만, 오케스트라가 연주했을 때 어떤 느낌이 날지는 실제 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며 "곡의 맨 마지막에 솔로로 나오는 콘트라바순은 아주 작은 소리를 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커서 깜짝 놀랐다"고 웃었다.

김재덕 역시 "악기마다의 음량이나 조합이 아무래도 리허설 시간이 짧다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다"며 "그렇다고 작곡가가 처음부터 '안 된다'고 생각해버리면 상상이 제한된다. (새로운 시도들도) 좀 더 실용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독특한 시도만큼이나 눈길 가는 것은 동시대 음악가들이 고민하는 주제다. 고령화를 주제로 삼은 노재봉의 작품에는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의 모습이 악기들의 왜곡된 소리로 나타난다.

노재봉은 주제 선정 이유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너무 큰 이슈다. TV를 틀면 나오고, 하루에도 기사가 몇 개씩 쏟아진다"며 "클래식 음악으로 이에 대한 질문, 혹은 목소리를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립심포니 '작곡가 아뜰리에' [국립심포니오케스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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