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성 노동자 차별 구제는 누가 해주나요

박송이 기자 2023. 11. 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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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평등상담실 예산 삭감
직장내 성희롱·성차별은 여전
지난 9월 25일 ‘전국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 회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24년간 여성 노동자를 지켜온 고용평등상담실 폐지, 퇴행하는 고용노동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고용평등상담실은 고용평등 의식 확산을 통한 성평등한 노동환경 조성과 함께 현장 노동자들이 겪는 고충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데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도 고용평등상담실이 피해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길 바라며, 성희롱·성차별 등 피해 고충이 있는 경우 주저하지 말고 고용평등상담실이나 고용노동부를 찾아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2022년 2월 고용노동부는 <고용평등상담실 우수사례집>을 발표하면서 고용평등상담실의 성과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고용평등상담실은 고용노동부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성차별, 직장내 성희롱 등에 대한 상담 및 권리구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9년부터는 심리정서 치유프로그램을 연계·지원해왔다.

2000년 5월 10개소에서 시작된 고용평등상담실은 2023년 현재 전국 19개소가 운영 중이다.

정부가 2024년부터 고용평등상담실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2024년 예산안에서 12억원 규모의 관련 예산을 5억5100만원으로 54.7% 삭감했다. 고용평등상담실에서 제공하던 서비스는 지역노동청 주관으로 8개소에서 각 1인의 상담사를 채용해 자체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하루 3~4건의 전화 업무?

고용노동부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성차별·성희롱 피해 노동자의 권익보호가 축소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2년까지 누적된 고용평등상담실의 총 상담 건수는 16만8000건이다. 2005년 5906건이었던 상담 건수는 2022년 1만1398건으로 증가했다. 24년간 전문적으로 상담을 제공해온 고용평등상담실 지원을 중단하고, 19개 상담실을 절반 이하로 줄인 8개소에서 이런 증가세의 상담 신청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까. 고용노동부는 상담의 91.5%가 전화·온라인 상담이라 충분히 수요 대응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루 3~4건의 전화 업무 수준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31일 국회에서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폐지를 막기 위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그동안 31명이 전국 각지에서 담당하던 상담을 8명이 어떻게 전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인지 절대적인 수치만을 놓고 비교해도 납득이 어렵다. 고용평등상담실 제도의 축소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절대적인 수치만이 아니라 상담의 질 또한 문제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고용평등상담실 24년 성과와 필요성’에 따르면, 이용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사안이 중첩된 복합문제다. 김 위원이 인용한 고용평등상담실 이용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내 성희롱’, ‘직장내 괴롭힘’, ‘임금 차별’, ‘임금 외 복리후생 차별’, ‘퇴사’, ‘승진 배치 차별’, ‘임금 체불’, ‘육아휴직 사용 관련’ 등 1명의 이용 노동자가 13개의 상담 영역에 대해 복수의 상담을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용 노동자의 상담도 1회에 그치지 않는다. 고용평등상담실 상담사례에 따르면 이용 노동자들은 전화·방문·온라인 상담을 여러 차례 이어가며 지속적으로 고용평등상담실과 대응을 논의했다.

파견 계약직 노동자 A씨는 성희롱 피해를 입었지만, 파견직이라는 이유로 회사에 신고해도 보호를 받지 못했다. 상사였던 가해자는 회사에 신고한 A씨를 오히려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A씨는 고용평등상담실과 전화 등 온라인 상담 18회, 방문 상담 4회 등 모두 22회의 상담을 진행했다. 고용평등상담실이 연결시켜준 노무사, 변호사의 무료상담을 받기도 했다. 피해 사실 진술서 작성, 법률전문가 동행 등 고용평등상담실의 밀착 지원 결과, 가해자는 성희롱 사실을 인정했고, 회사에서 징계를 받았다. 또 회사로부터는 성희롱 예방교육 실시 등 재발방지대책 수립을 이끌어냈다. 신상아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은 “고용평등상담실 상담은 정보 제공뿐만 아니라 사내 대응, 고용노동부 진정, 노동위원회 구제 신청, 민·형사 대응,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 사안에 따라 다양한 방식을 취하게 된다. 상담은 당해에 끝나기도 하지만 몇 년씩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상담사는 수시로 전화로 소통하게 되는데 30분 이상은 기본이고 1시간 이상 소요되기도 한다. 밀착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방문 상담을 통해 심층적으로 사건을 파악하고 보다 면밀하게 피해자의 상황을 살핀다. 방문 상담은 최소 1~2시간 이상 소요되며, 진술서 작성을 검토하거나 자료 작성이 필요한 경우는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상담과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상담은 1건으로 처리된다. ‘하루 3~4건의 전화 업무라 감당할 수 있다’는 고용노동부의 접근을 두고 성차별·성희롱 피해노동자의 권리구제를 기계적·도식적인 전화 안내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수고용노동자 등 사각지대 구제 의문

고용노동부는 “상담에서 권리구제까지 원스톱 지원을 위한 창구 단일화로 피해 권리구제 실효성을 제고하겠다”는 이유를 사업변경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창구단일화’는 민간이 행정기관을 견제·보완할 수 있는 순기능을 차단할 수 있다. 기존에 고용노동부가 불인정한 사건을 고용평등상담실이 결과를 바꿔낸 사례들이 있다.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인 B씨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성희롱 피해 사실과 회사의 조치 미흡에 대한 민원을 접수했다. 피해자는 해당지청에 직장내 성희롱 피해사실과 다른 피해자들의 진술서 및 연락처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왔으나 해당지청은 회사가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사건을 종결 처리하려고 했다. 이에 고용평등상담실은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의견서를 작성해 해당 사업장에 대한 조사와 관리·감독을 요구했다. 고용평등상담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면서 해당 사건의 재조사가 결정됐고, 회사는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내리게 됐다. 신상아 회장은 “재진정 사건에서 중요한 지점은 ‘지청’이란 공간에서 같이 근무하는 근로감독관에게 상담사가 근로감독관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형사사건의 경우도 이의신청 수용비율이 낮은 것은 검사의 판단을 다른 검사가 잘못했다고 이의제기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하물며 지청에서 상담사가 아닌 근로감독관이 다른 근로감독관에게 당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끝까지 나서 줄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고용평등상담실 폐지 규탄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찢겨진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의 견제·보완 기능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고용노동부의 성차별적 인식과 사각지대 때문이다. 고용평등상담실에는 노동부 사건처리 과정에서 2차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들의 상담이 지속되고 있다. 직장내 성희롱 피해를 입고 노동청을 찾아간 피해자에게 “이런 것만으로 성희롱이라고 주장하면 본인이 행정소송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하거나 조사과정에서 진정인을 “아줌마”라고 호명하며 제출한 자료를 “볼 필요 없다”고 무시한 사례 등도 있다. 한 고용평등상담실 상담원은 “상담 오신 분 중에는 근로감독관한테 상처를 받고 오는 이중 피해 케이스가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홍수경 공인노무사는 “직장내 성희롱, 고용상 성차별 등에 대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의 업무전문성이 강화됐거나 성인지감수성에 대한 교육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근로감독관들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어 전문상담업무에 배치되더라도 다른 신고사건을 같이 수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여러 여건에 비추어 고용노동부가 법률에 정해진 본연의 직무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민간단체의 헌신과 열정으로 운영돼온 고용평등상담실을 내부화해 잘 운영할 수 있을지 부정적이다”라고 말했다.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 노동법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리 구제가 더 어려워지리라는 우려도 나왔다. 고용평등상담실 사례를 보면 다수의 노동자가 “고용노동부에 문의했더니 5인 미만 직장은 해결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특수고용직이었기 때문에 고용노동청에서 직장내 성희롱으로 진정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하소연하며 고용평등상담실을 찾았다. 특수고용노동자인 C씨는 직장에서 성추행 피해를 당했지만,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직업고아가 된 것 같다”던 C씨는 고용평등상담실을 알게 됐고, 위로와 격려 및 도움을 받으며 비로소 고소 절차를 시작할 수 있었다. C씨는 “고용평등상담실은 나 같은 약자를 국가가 이렇게 도와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연결통로였다. 이곳이 폐지되면 이순간에도 이런 일을 경험하는 피해자들은 어디서 구제를 받아야 하나”라고 말했다.

사업 유지한다더니…

2022년 9월 정부가 발표한 국고보조사업 연장평가보고서는 고용평등상담실 사업에 대해 “직장내 성희롱·고용상 성차별 등 피해 근로자의 대처방안 등 관련 정보의 신속한 제공으로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 상담 과정을 통해 해결이 용이하지 않은 사안은 행정기관(지방관서·노동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 등) 활용 안내 및 근로감독관과의 연계·협업 활성화로 신속한 권리구제 등 실효성을 높이는 데 일정부분 기여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 “일련의 법 개정 및 제도 개선으로 정책 목적은 일부 달성했으나, 이것이 실제로 작동하는 경과를 지켜보는 동안 이 사업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 이는 각 제도의 개선에 대한 경과를 확인하고 사업(전달체계)별 사각지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라며 사업 유지 입장을 밝혔다.

유지를 결정한 지 불과 1년 만에 정부가 갑자기 이 사업을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전윤정 입법조사관은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은 그동안 여성 노동자들의 ‘보루’로 인식되면서 수많은 사건을 구제했고, 우리 사회에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를 끊임없이 던지면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해왔다”며 “정부 행정에서 ‘고용평등’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제도를 중단하는데 과연 정부가 국회와 어떤 논의를 거쳤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 예산안이 현재 각 소관 상임위에 제출된 상태로 심의가 이뤄지고 있다.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제도의 필요성과 그 의의를 충분히 숙고해 정부 행정의 중요한 사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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