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공간에서 한계란 없지…낯설고 기발한 판타지 실사판
‘정체성 강조’ 브랜드·뉴진스 등 3D 영상으로 홍보…젊은층 호응
지금껏 보지 못한 귀엽고 엉뚱한 공상이 제약 없는 가상세계로
“디지털 환경에서 풍성한 새로움 전달”…접근성 높아져 다양한 시도
이건 왜 하는 거야? 에스엔에스(SNS)에서 3디(D) 영상을 처음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워낙 독특했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데 가상으로 만든 무릉도원 배경에 커다란 케이크가 마치 산처럼 놓여 있었고, 작은 비행기가 케이크 주변을 날아다녔다. 황당했지만 낯설어서 재미있었다. 케이크가 왜 그렇게 큰지, 왜 가상 풍경 속에 놓여 있는지 맥락을 알 수 없었다. 종종 그 영상을 떠올린다. 매료되었던 것 같다.
이 세상 존재가 아닌 귀여움까지
투머치인포메이션, 티엠아이(TMI), 즉 굳이 몰라도 되는 정보지만 나는 콘텐츠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트렌드에 관해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이런 내 관점에서 볼 때 본격적으로 어이없는 세상이 열렸고, 어이없는 세상 자체가 트렌드가 되었다는 것을 3디 영상을 볼 때마다 느낀다. 부연하자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제트(Z)세대가 자신들에게 걸맞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언급에 부정적 의미를 담지 않았다. 그건 그냥 그 세대의 특징이다. 혹은 내가 그들과 달라 이해 못 하거나. 한달 전, 제트세대에게 인기 있다는 패션 편집매장에 갔다. 나는 그 세대의 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쉽지 않았지만. 뭐, 아무튼 다시 3디 영상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는 그 케이크 영상을 보며 여러 ‘왜’가 떠올랐고 그것에 대해 답을 찾지 못했지만, 재미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맥락이 있을 거야!
3디는 낯선 시각 형태다. 물론 완벽하게 새로운 건 아니다. 영화에서 너무나 많이 사용되고, 제품 디자인이나 공간 설계를 할 때도 사용된다. 하지만 에스엔에스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브랜드 콘텐츠를 3디 영상으로 제작하는 건 비교적 최근 현상이다. 불과 2~3년. 대중적으로 회자되는 건 요즘. 본질적으로 3디는 가상이다. 현실을 재현하거나 새로운 현실을 만드는데, 거기에 전형은 없다. 이미 언급한 산 케이크와 작은 비행기처럼.
저 어마어마한 케이크는 올 초 누데이크의 공식 에스엔에스에서 봤다. 당시만 해도 누데이크가 디저트 브랜드인지 몰랐다. 그냥 특이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케이크 영상을 3디로 만들지 않으니까. 하물며 케이크를 거대하게 표현하지도 않는다. 누데이크 에스엔에스 프로필엔 이렇게 적혀 있다. ‘메이크 뉴 판타지’(Make new fantasy).
적합한 문구다. 디저트 브랜드인 것도 맞지만, 새로운 판타지를 만드는 브랜드라는 설명이 더 정확하다. 누데이크는 자사의 제품·분위기·메시지를 3디 영상으로 보여준다. 젊은 세대에게 이 브랜드가 열광적인(가끔은 ‘이걸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이유가 뭐지?’ 하고 생각한다) 지지를 받는 데는 새로운 비주얼 감각이 한몫했다. 아니 두 몫. 어쩌면 세 몫.
그런데 누데이크 에스엔에스를 아무리 찾아도 저 위에 묘사한 3디 영상은 없다. 산처럼 커다란 디저트가 나오는 영상은 많은데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여러 영상을 섞어서 기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이없고 맥락도 없어서 판타지만 기억에 남은 걸까. 어쩌면 이런 추상적인 이미지가 이 브랜드의 정체성일 수도 있다.
3디 영상을 더 이해하려면 전문가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영상 기획자인 후배에게 물었다. 이름은 문혜원, 제트세대다. 혜원아, 왜 3디일까. “최근의 3디 트렌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들이 있는데, 그 브랜드가 담고자 하는 무드를 2디로 구현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그 ‘무드’, 즉 분위기가 뭘까? 낯설고 엉뚱한 것? 이 세상 존재가 아닌 귀여움?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 이 중 무엇이든 기존의 방식, 즉 2디로 구현하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2디의 세상에선 이미 존재하는 것을 창의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3디는 판타지를 구체적으로 실현해준다. 어떠한 제약 없이 모든 것을 구현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그런 이미지가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어떤 세대는 낯선 것 자체를 즐겁게 받아들인다. 제트세대라고 콕 집어 적지 않은 건, 3디가 그 세대의 주된 유행인 것은 맞지만 온전히 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뉴진스는 4세대 아이돌의 대표로 소개된다. 여기에서 ‘세대’는 아이돌을 세대 구분한 것이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아이돌로 읽힌다. 이들에겐 자신들을 새롭게 선보일 도구가 필요하다. 당연히 3디 영상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멤버 한명의 생일 때는 공식 에스엔에스 계정에 3디 생일 축하 케이크 영상을 선보였다(여기도 케이크? 3디 영상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세대는 케이크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앨범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선공개 영상도 3디로 만들었다. 사실 나는 뉴진스가 이랬는지 몰랐고, 저 위에서 소개한 문혜원이 알려주었다. “그룹의 분위기,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인 듯해요.” 혜원이 말했다. 뉴진스는 이런 작업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아이돌 이미지를 확고히 했을 뿐 아니라, 역설적으로 이 시점 최첨단 트렌드가 무엇인지 확인해 주었다. 지금 4세대 아이돌을 좋아하는 세대는 3디 영상을 익숙해하고 즐겁게 받아들인다. 그들끼리는 소통이 된다. 뉴진스 유튜브에서 여러 3디 영상들을 찾아보고 나는 순식간에 옛날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앞서가는 미래 이미지’ 도구
보수적인 업계로 손꼽히는 금융계에서도 3디 작업을 선보이는 브랜드가 있다. 굉장히 용감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토스는 작년 9월 로고를 3디로 바꿨다. 토스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사람이라면 스마트폰에서 토스를 찾아보자. 입체적인 로고를 발견할 것이다. 웹사이트에 공개한 토스 디자이너의 인터뷰에는 “디지털 환경에서 가장 풍성하게 새로움을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3디 로고를 선택했다고 밝히고 있다. ‘새로운 차원의 금융’은 토스가 강조하는 가치다. 그들의 로고는 분명히 새로운 차원이다. 로고를 소재로 제작한 3디 영상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걸 반복해서 보면 이들이 기존 은행이 하지 못한 것들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논외의 이야기지만 토스의 여러 디자인 작업은, 누군가 동시대 문화사를 기록한다면, 반드시 거론해야 할 만큼 가치 있다. 그들은 디자인이 보여주기 방식의 하나가 아니라, 의사를 주고받는 대화의 언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대한민국에서만 3디가 인기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발렌시아가·자크뮈스 같은 외국 유명 패션 브랜드도 자신들의 제품을 보여주기 위해 3디 영상을 제작한다. 사실 이 문장에서 ‘자신들의 제품’을 ‘자신들의 브랜드 정체성’이라고 바꾸는 게 정확하다. 어떤 브랜드는 초월적인 세계관을 갖고 싶어 한다. 자크뮈스는 자동차만큼 커다란 가방을 만들어 바퀴를 달고 도로 위를 돌아다니는 3디 영상을 만들었다. 도로와 자동차의 실사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정말로 자동차만 한 가방을 도로 위에 올려둔 것 같다. 이 영상은 시각적으로 독특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브랜드가 추구하는 분위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 브랜드를 사랑한다. 오직 저 영상 덕분에.
3디를 직접 제작하는 작업자는 이 현상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에스엔에스를 통해 작업물을 즐겨 보던 3디 아티스트에게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냈다.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이예슬 아티스트는 사람들이 3디 영상을 좋아한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아, 그녀 역시 제트 세대. 다양한 패션 브랜드의 신제품, 프로젝트 관련 3디를 제작하고 있다. “일단 제 에스엔에스에 작업한 3디 영상을 올리면 엄청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세요. 2년 전부터 3디 제작 수업도 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꾸준히 많이 찾아와요.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학생들이 이렇게 몰릴지 몰랐어요. 대학생이나 20대 직장인인데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도 있어요.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학생들이 이렇게 몰릴지 몰랐어요. 저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그걸 나눈다는 생각으로 한 거였거든요.”
예슬 아티스트는 이러한 흐름이 3디 제작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져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은 누구나 프로그램을 구입할 수 있고, 다루는 방법도 쉬워졌어요. 덕분에 작업자들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된 거죠.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것들을 가상 세계에 만든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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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티스트-외국 브랜드 협업 ‘봇물’
예슬 아티스트가 편집숍 브랜드 인세인개러지와 함께한 작업은 새로 탄생한 브랜드가 이전 세대와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어떤 방식을 선택하는지 보여준다. 사실 뭐 복잡하게 설명할 것도 없다.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한 도로에 오토바이가 등장한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사람은 인세인개러지 옷과 주얼리를 착용하고 있다. 그가 다시 질주하며 사라지는 것으로 영상은 끝난다. 이 브랜드는 완벽하게 미래적이다. 누가 그렇게 설명해주거나 적어준 것이 아니다. 영상을 보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나는 예슬 아티스트에게 말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이름은 아직 못 정했지만, 저는 팀이 있어요. 아이디어가 많이 필요한 작업은 함께 만들어요. 기획을 주로 하는 디렉터가 내용과 보여주는 방식을 구성하고, 3디 작업자들이 구현해요. 작업자마다 각자가 잘하는 영역이 있으니까, 거기에 맞춰서 작업하는 거죠.”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와서 이 답변을 곱씹었다. 아티스트가 의식했건 못 했건, 그들은 단순히 움직이는 가상 영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의 메타버스, 다양한 가상현실(VR) 프로그램, 챗지피티 같은 인공지능 등이 빠르게 미래를 불러오는 시대, 그들 역시 어떤 세계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말은 세계가 창조되고 있다는 말로 바꾸어야 한다. 나는 그 세부의 맥락을 이해해보려는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게 그것은 그저 태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어떤 것이다.
뜬금없는 애국심에 취한 채 이 기사를 마무리해보려고 한다. 나는 한국 3디 아티스트들의 수준이 세계적이라고 확신한다. 영상 몇개만 찾아봐도 알 수 있다. 너무 잘한다. 인터뷰 중에 예슬 아티스트는 말했다. “네, 외국 브랜드와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제 에스엔에스에 올라와 있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 ‘페드로’와의 작업, 런던 기반 아이웨어 브랜드 ‘어 베러 필링’과의 작업도 그런 경우죠. ‘032c 매거진’(독일의 패션 잡지) 작업도 비슷해요. 외국에서 직접 메일이 오거나, 한국의 협업 브랜드를 통해 연락이 와요. 정말 신기해요. 저 말고 다른 작업자들도 외국 브랜드에서 연락을 많이 받아요.”
가장 빠르고 가장 감각적이고 가장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있고, 그들이 3디를 즐겨 본다. 그들 중 일부는 그걸 만든다. 이 순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 나라의 멋진 판타지!
이우성 시인·슈퍼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크루 ‘미남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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