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초등학생 때 대학생 이긴 영재가 수학에 빠진 이유

이채린 기자 2023. 11.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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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학고 3학년 오유찬
오유찬 학생 (서울과학고 3학년). 수학동아 제공

“제게 수학은 ‘북극성’이에요.”

서울과학고(서과고) 3학년인 오유찬 학생은 늘 같은 자리에서 길잡이 별이 되는 북극성처럼 자신의 인생 한켠에 늘 있는 수학은 자신에게 계속 영향을 줄 거라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수학과 사랑에 빠졌던 4세, 수학 영재로 주목받았던 9세, 주변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던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수학 실력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수학이 싫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 지고지순한 마음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걸까요.

○ 책으로 수학 맛보다

Q. 수학에 관한 첫 기억은 무엇인가요.

A "집에 숫자가 적힌 판이 곳곳에 붙어 있었어요. 혼자 구구단표를 보면서 구구단을 외우고 곱셈의 원리를 깨우쳤어요. 수학 관련 책도 많았어요. 책을 보면서 수학 지식을 쌓고, 그렇게 생긴 관심을 원동력으로 또 다른 책을 읽고 그 과정을 계속 반복하며 수학에 큰 흥미를 가졌어요. 특히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읽은 '수학 귀신. 덕분에 수학이 재밌어졌어요."

Q. SBS ‘영재발굴단’ 1회에 대학생을 이긴 수학 영재로 출연했어요. 

A "네. 초등학생 땐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실로 저를 놀리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속상하기도 했는데 이젠 오히려 좋아요. 제가 수학을 좋아하고 수학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함께 수학을 연구하고 수학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제게 먼저 다가와서 금방 친해지거든요."

오유찬 학생을 수학의 세계로 이끈 책. 오유찬, 수학동아 제공

○ 나만의 수학책 목차 만들기 

Q. 올해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대표 선발 최종후보에 들었어요. 어렸을 적 관심사가 꼭 실력으로 이어지는 건 아닐텐데, 언제 수학 실력을 본격적으로 쌓았나요.

A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 겨울학교에 참여했어요. 이곳에서 수학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수학 문제를 풀며 수학 실력이 확 늘었어요. 대학생 조교들이 40문제 정도 주면 그 문제를 다 풀어야 강의실을 탈출할 수 있었는데요. 그때 친구들과 몰입해서 수학 문제를 풀어 특히 실력이 늘었고 무엇보다 정말 즐거웠어요.

문제를 하나도 못 풀었을 때도 그랬어요. 문제를 돌이라고 생각하면 두들겨서 깨진 못하더라도 조금 파이게는 할 수 있으니 그것 자체로 정말 재밌었습니다. "

오유찬 학생. 수학동아 제공

Q.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어렸을 때는 제가 연산이 빠른 편이라 정답을 잘 맞히는 재미로 수학을 좋아했어요. 지금은 모든 논리가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되는 신기함 때문에 수학이 좋아요. 

작년에 IMO 국가대표를 뽑는 최종시험(FKMO) 기출 문제를 풀며 그 재미를 제대로 느꼈어요. FKMO 2021년 6번 문제는 정수론과 조합론 개념이 융합된 문제였는데 저는 이 문제를 좌표평면 위의 도형 문제로 바꿔서 풀었어요. 문제에서 다루는 수학 분야와 전혀 다른 개념으로 푼 거죠. 그 과정에서 개념 사이의 연결성을 깨달으면서 수학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

Q. 수학 실력을 높이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A. "‘수학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과 ‘문제를 많이 푸는 것’이 선결 조건이에요. 전 개념을 다 정리한 다음에 문제를 푸는 걸 좋아해요. 개념을 완벽히 이해하지 않고 문제를 풀면 개념과 문제를 연결해 이해하지 못하거든요.

배운 개념을 정리하는 방법이 있는데요. 나만의 수학책 목차를 만드는 거예요. 일단 학습한 교재의 목차를 그대로 따서 공책에 직접 쓰거나 컴퓨터나 태블릿의 메모장에 입력해요. 큰 제목부터 작은 제목까지 쓰면서 각 단원의 논리 흐름을 써요.

서점에 있는 책들의 위치를 외운다고 생각해보세요. A부터 H항목까지의 서가 위치를 먼저 외우고 B1부터 B31까지 다시 책들이 어떤 항목으로 분류되는지를 외운 뒤 B5 서가에 있는 각 책의 배치를 외우는 거죠. 서점 전체의 풍경이 자기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려질 때까지 반복해요. 그 목차를 들고 다니면서 계속 읽어요. 이렇게 배운 개념을 잘 다진 다음 문제를 많이 풀면 수학 실력을 쌓을 수 있어요."

Q. 문제를 잘 푸는 비결도 있나요.

A. "문제를 풀 때 문제의 상황과 조건을 완벽히 이해한 뒤 다양한 형태로 추상화하는 연습을 하면 사고력이 필요한 고난도 문제를 잘 풀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등차수열이 등장하는 기하학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볼까요. 문제를 보면 저는 등차수열을 사다리꼴로 바꿔요. 평소 등차수열을 사다리꼴로 추상화하는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이에요. 

등차수열의 일반항은 y = ax + b처럼 일차함수로 바꿀 수 있어 좌표평면에서 이를 직선 그래프로 그릴 수 있어요. 일정한 크기로 y값이 늘어나기 때문에 x축 위에서 두 점을 잡은 뒤, 그래프까지 위로 직선을 그리면 '그림 1'처럼 사다리꼴을 그릴 수 있어요. 그러면 사다리꼴 넓이, 모양 등 사다리꼴의 특성을 이용해 문제에 접근해볼 수 있어요. 나아가 2가지 등차수열이 문제에 나온다면 '그림 2'처럼 2가지 사다리꼴을 그려 문제 풀이를 생각해볼 수 있지요."

수학동아 제공

Q. 서과고 내신 수학 시험도 같은 방법으로 공부하나요.

A. "서과고에선 높은 수학적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들을 제한된 시간 안에 풀어야 해요. 수학을 잘하는 친구가 너무 많아서 변별력을 가지려면 시험이 어려울 수밖에 없죠. 쉼 없이 풀어도 시험 시간이 빠듯해요.

일단 시험 문제를 풀면서 막히는 일이 없도록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요. 그럼에도 어떤 문제에서 막힐 땐 다른 문제로 바로 넘어가요. 그러면서 그 전에 못 풀었던 문제를 해결할 단서를 생각하며 문제를 풉니다.

어차피 한 과목에서 나온 문제니까 문제별로 겹치는 성질이 있을 수 있거든요. 1번이 안 풀려서 2번을 푸는데 1번을 풀 아이디어를 떠올려보다가, 2번을 다 풀면 1번으로 돌아가 이 아이디어로 해결하는 거예요. "

오유찬 학생의 공부할때 필수 잇템. 오유찬, 수학동아 제공

"겨울학교에서 우러러보던 선배들 따라 서울과학고 지원했어요"

Q. 서과고에 지원한 까닭이 궁금해요.

A. "‘영재학교에 가면 빠르게 계산해서 답을 내야 하는 시험은 안 봐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지원했어요. 수학을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을 것 같았죠. 또 초등학교 때 KMO 겨울학교에서 문제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풀어내는 서과고 출신 선배들을 만났는데 그들처럼 수학을 즐기고 잘하는 친구들이 많을 것 같아 서과고에 지원하게 됐어요. 

Q. 입시는 어떻게 준비했어요? 전형 과정 중에 위기는 없었나요.

A. "학원을 다니며 기출 문제를 계속 풀었어요. 중학생 때 일주일에 반은 하루에 2, 3권의 책을 다 읽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을 줄여가며 준비했어요. 

전형 3단계에서 위기가 있었어요. 3단계는 서과고에 모여 여러 시험을 치르고 그룹 활동을 하는 거였는데 과학 시험에서 문제 하나를 제대로 못 풀고 크게 당황했어요. 처음엔 서과고 학생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편하게 임했는데 위기가 오고 나서는 ‘지금이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전력을 다했어요.

특히 4인 1조로 팀별 실험을 하는 과제수행평가에서 주도적으로 나서서 팀원들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등 그룹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끌며 눈에 띄려고 노력했어요. 그 모습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

오유찬 학생과의 인터뷰는 서울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서 진행했다. 별마당 도서관은 오유찬 학생이 공부를 하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자주 찾는 장소이다. 수학동아 제공

Q. 서과고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A. "크게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선형대수학, 추상대수학, 해석역학처럼 대학 수학을 배울 수 있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첨단강연 제도’예요. 한 학기에 8~10번 대학교 교수님이나 기업 임원 등이 오셔서 한 시간 반씩 강연하세요. 저희가 생각해보지 못한 길을 미리 걸어본 분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견문을 넓힐 수 있어요. 저도 진로로 수학자만 생각했는데 다양한 IT 기업이나 첨단 반도체 기업을 이끄는 선배들을 보며 여러 진로를 생각하게 됐어요."

Q. 앞으로 목표는 뭔가요.

A. "수학 연구를 도울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 꿈이에요. 2022년 2월호 <수학동아>에서 증명 보조 프로그램인 린(Lean)에 대한 기사를 읽었어요. 린은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팀이 2013년 개발한 증명을 검증하는 소프트웨어인데 앞으로 수학 논문을 검증하고 난제를 풀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 놀라웠어요. 

그래서 올해 6월에 학교 친구인 이현진과 같이 수학 문제를 푸는 알고리듬을 만드는 계획서를 써서 한 미국 코드페어에 참가를 신청했어요. 떨어졌지만 그래도 이에 관한 활동은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에요. 

현재 IMO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수준의 인공지능을 만드는 챌린지(IMO-Grand-Challenge)가 진행 중이에요. 여기에 참여해서 인공지능이 은메달은 딸 수 있는 수준이 되게 하는 데 큰 기여 하고 싶습니다."

Q. 고3이면 대학 입시 준비로 바쁠 텐데 어떻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나요. 

A. "앞서 언급한 친구 현진이 있어서 가능해요. 저랑 똑같은 목표와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인공지능과 수학에 관한 내용이면 무엇이든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눠요. 특히 현진이 여러 강의나 행사를 많이 찾아보거든요. 저는 행사 참여 후 전문가들에게 직접 연락해 궁금증을 해결하는 역할을 해요. 역할이 잘 분배돼 있죠." 

Q. 오유찬 학생에게 수학이란 뭔가요.

A. "북극성이요. 북두칠성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처럼 수학은 끊임없이 제게 영향을 줄 것이고 앞으로 뭘 연구하든 간에 그 근본에는 수학이 깔려있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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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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