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택환 “노벨상 받는 연구, 정부 지원에서 비롯”
지난 10월 4일 2023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자 한국 과학계에선 아쉬움의 탄식이 나왔다. 올해 화학상은 양자점의 발견과 합성에 대한 공로로 모운지 바웬디 미국 MIT 교수, 루이스 브루스 미국 콜롬비아대 명예교수, 알렉세이 아키모프 전 나노크리스탈테크놀로지(NCT) 선임연구원에게 돌아갔다.
양자점 합성은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 연구단장)가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되리라고 점쳐지던 분야기도 하다.
2020년 글로벌 학술정보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가 현 교수와 바웬디 교수를 노벨상 수상자로 점친 이후로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더 커졌었다. “아쉽지만 바웬디 교수와 함께 노벨상 수상자 후보에 지목된 것만으로 영광”이라고 말하는 현 교수를 10월 9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Q.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 과학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데는 2001년 발표한 ‘승온법’ 연구가 큰 영향을 미쳤다. 양자점 합성에 큰 전환점을 만들어준 연구로도 꼽히는데, 이 연구는 어떻게 이뤄졌나.
"바웬디 교수가 개발한 고온 주입법은 양자점을 합성한 뒤 이를 분리하는 과정이 까다롭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당시 내 연구실의 학생이었던 박종남 UNIST 교수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과 함께 발표한 방법은 균일한 크기의 양자점 입자를 바로 합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박 교수가 처음 이와 관련한 실험 결과를 들고 온 당시엔 이 방식이 왜 먹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기존 고온 주입법은 300℃ 이상의 고온으로 가열된 계면활성제 용액에 전구체를 주입하는 방식이다. 한편 우리가 개발한 승온법은 계면활성제 용액과 전구체를 실온에서 섞은 뒤 300℃ 이상의 고온으로 서서히 가열하는 방식이라 기존 방식과 상반된다.
실험 결과를 보고 박 교수를 껴안기 전에 “이거 정말 맞니? 이 방식 재현가능한 거 맞니?”라며 재차 물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 실온에서 천천히 가열하니 실험 조건을 조절해주기도 편했고, 더 균일한 양자점 입자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doi: 10.1021/ja016812s)
2004년에는 값싸고 안전한 물질인 염화철을 전구체로 이용해 독성이 강했던 기존 전구체의 한계를 극복한 논문을 냈다. 이 논문의 인용 횟수가 현재 4574회에 달한다(doi:10.1038/nmat1251). 이 논문들 덕에 양자점 연구계의 ‘이너 서클’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Q. 이번 노벨 화학상 수상자 발표 이후 한 인터뷰에서 “수상자들이 삼성에 감사해야 할 것”이라 말한 것이 인상깊다. 양자점의 상용화에 있어 삼성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양자점을 비롯한 나노기술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1999년 일이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시점, 국제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서 과학자들에게 “나노기술이 실생활에 적용된 가장 가까운 사례가 무엇인가”라 물었을 때 삼성전자의 QLED 디스플레이가 첫번째로 꼽혔다. 현재의 성과가 나오도록 연구개발을 이끌어 나간 지점이 대단하다.
특히나 최근 노벨상 수상 트렌드는 노벨이 이야기했던 유언, 즉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실천한 이에게 상을 수여하는 것이다. 상업화까지 이뤄지지 않으면 노벨상을 잘 수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세 사람은 삼성전자에 감사해야 한다고 본다."
Q. 미래에 한국에서 노벨상을 받을 연구가 나오려면 어떤 제도적 개선이나 지원이 이뤄져야 할까.
"노벨상을 받는 연구는 대부분 학교에서 나온다. 점점 그런 추세가 더 또렷해진다. 기초연구는 대학에서 진행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신임 교수들에게 정착연구비를 주는 등 그들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각 대학에서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잘하는 연구자가 첫 발을 뗀 뒤 더 큰 연구, 더 큰 과제를 하도록 만드는 길. 그 길이 내가 걸었던 길이고, 그래서 내 현재가 있다.
조교수들에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If you want to be somebody, try something different)”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내가 조교수들의 종신교수직 심사를 할 때에도 그렇다. 주요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지도교수의 그늘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연구를 하려 했는가 새로운 분야에 발을 첨벙 들여봤는가가 중요한 잣대다. 같은 잣대를 나에게도 적용했었다.
1997년 서울대에 임용되면서 박사학위를 하며 연구했던 건 모두 태평양에 빠뜨리고 당시 떠오르는 분야인 나노과학에 뛰어들었으니까. 용기도 넘치고 머리도 반짝거리는 젊은 이에게 같은 길을 걸으라 말하려면 그럴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썩 밝게 전망하기 어렵다.
최근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그 연구를 처음 시작한 시기부터 노벨상을 받기까지 대부분 3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이 시기면 벌써 정년이 지나 더 이상 연구를 할 수 없게 된다.
이미 최상위권에 오른 연구자들이 계속 연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숫자놀음은 이제 정말 그만둬야 한다. 고만고만한 논문은 100편을 쓰더라도 세계는 알아주지 않는다. 나의 경우에도 2000년대 초 이후로 네이처, 사이언스 등 주요 학술지에 논문을 수 편 실었지만, 사람들이 알아주는 논문은 앞서 말한 두 편이지 않나."
Q. 앞으로의 목표에 무엇인지.
"어차피 이번 노벨 화학상은 내 차례가 아니었다. 내게 주어진 소명은 계속해서 남들이 해보지 못한 것들을 해보는 것이다. 현재 내 목표는 나노 과학을 이용해 세상에 없던 치료제를 만드는 일이다. 결국 인류에 큰 도움을 주는 방법은 의학 분야로 응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공명영상(MRI) 조영제 개발이나 나노 입자 세포치료제, 줄기세포를 이용한 관절염 치료제 등 다양한 연구가 곧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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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기자 leci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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