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은의 탱크에는 기름이 남아 있었다… 나이 마흔의 이정표, 끝까지 따라 가봅니다

김태우 기자 2023. 11.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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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SSG 불펜에서 고군분투하며 헌신한 노경은 ⓒ곽혜미 기자
▲ 노경은은 KBO리그 불펜 역사에 남을 만한 베테랑 투혼을 선보였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한 경기, 한 경기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 매일 경기에 나갈 준비를 충실히 했다. 그리고 부르면 나갔다. 상황을 가리지 않았다. 싫은 내색 한 번 없었다. 공을 던지는 게, 그것도 팀이 필요한 상황에서 던질 수 있다는 게 마냥 좋았다. 그렇게 던졌더니 시즌이 끝난 뒤 어마어마한 기록이 쌓였다.

노경은(39‧SSG)은 KBO리그 역사를 통틀어서도 몇 안 되는 기록을 가진 선수다. 올해 순수 불펜으로 76경기에 나가 83이닝을 던졌다. 개인 최다인 30홀드를 기록하기도 했다. 만 39세 이상 투수가 순수 불펜 이닝으로 80이닝 이상을 던지면서 30홀드 이상을 기록한 건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등판 시점이 고정되어 있는 마무리도 아니었다. SSG 불펜의 궂은 일이 상당수 노경은의 몫이었다.

2021년 시즌이 끝난 뒤 방출의 시련을 겪은 노경은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몸에 자신이 있었다. 팔꿈치와 어깨는 생생했다. 또 젊은 시절 수많은 도전 끝에 자신에게 어울리는 루틴을 찾았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제야 찾았는데 그대로 끝내기 아쉬웠다. SSG의 테스트 제안에 응했고, 그 다음은 모두가 알다시피 눈부신 재기였다. 지난해는 시즌 중간에 부상이 있어 완주는 못했지만, 올해는 달랐다. 불펜으로만 완주에 성공했다.

“입단 당시 바람대로 원 없이 던졌다”는 말에 노경은은 “김원형 감독님 덕분에 원 없이 던져봤고, 나 또한 원했다”면서 지금은 팀을 떠나게 된 김원형 감독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올해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돌아봤다. 자랑스러운 30홀드가 아니었다. 노경은은 “중간 투수로서, 필승조로서 시즌 처음부터 끝까지 던져본 적이 없다”면서 “그러다보니까 어떻게 보면 나도 처음으로 경험을 한 것인데, 테스트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노경은은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마치 갓 데뷔한 신인의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노경은은 “한계치가 어디인지 알고 싶었고, 그다음에는 또 요령을 찾고도 싶었다. 어떻게 보면 공부하는 입장이었다”면서 “나도 나중에 지도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레슨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몸소 느껴봐야 받아들이는 스타일이다. 그래야 확신이 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 없이 던졌고, 또 원 없이 공부했다. 이렇게 시즌을 치르다보면 언제쯤 힘이 떨어지는지, 그럴 때는 팔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페이스가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느끼고 실행했다. 노경은은 “그 루틴을 찾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까 한 시즌이 갔다. 루틴이 조금 빨리 잡혀서 부담 없이 편하게 갔던 것 같다”고 성공적이었던 올 시즌의 비결을 뽑았다. 이렇게 던져도 체력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단지 지루한 장기 레이스에서 현실에 젖어드는 것을 경계하면 된다는 확신도 있었다.

어쩌면 누구는 20대 초‧중반에 얻었을 수도 있는 교훈. 노경은은 40대에 접어드는 시점에 그 교훈을 배웠다. 조금 돌아온 것 같지만, 그 교훈을 찾으며 현역 마지막을 향해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노경은이다. 그래서 욕심이 생긴다. 어렵게 세운 이정표인 만큼, 힘이 닿는대로 그 이정표를 따라 가보려고 한다. 고점이 높아졌지만 안주하거나 뒤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 불펜으로 시즌을 완주하며 교훈과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하는 노경은 ⓒ곽혜미 기자
▲ 건재한 몸 상태를 과시 중인 노경은은 내년에도 마당쇠 임무가 기대되고 있다 ⓒ곽혜미 기자

노경은은 “이렇게 느낀 것을 활용하고 싶은데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다”고 살짝 웃은 뒤 “그래도 힘이 닿는 데까지, 내 공에 힘이 있다고 생각할 때까지는 계속 현역 생활을 이어 가고 싶다. 내가 대투수는 아니지만 나도 많이 배우고 경험했기 때문에 내년에는 이것보다 몸관리를 더 잘할 수 있겠다는 그런 확신이 든다. 아프지 않았다는 점에서 확신을 가지는 시즌이 됐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앞을 향한 확실한 목표가 생겼고, 노경은은 언제나 그랬듯이 먼저 부지런히 움직인다. 다른 주축 불펜 투수들이 휴식 위주로 프로그램을 짤 때, 노경은은 3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 직접 나와 오전 내내 훈련에 열을 올렸다. 드라이브라인 프로그램을 수행하며 벌서 다음 시즌 대비에 들어갔다. 그간의 시행착오에서 무엇이 득이 되는 훈련인지, 무엇이 독이 되는 훈련인지는 모두 다 가려낼 수 있을 정도의 베테랑이다. 무엇을 해야하는지 이제는 너무나 잘 안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노경은은 아직 자신의 연료 탱크에 기름이 남아있다고 자신한다. 선발로 뛸 때는 간혹 기름이 다 떨어졌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불펜에서는 그런 적이 없다고 자신했다. 올해 힘껏 달려봤는데도 시즌이 끝났을 때 그래도 더 던질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내년에도 그 힘을 믿고 힘차게 악셀을 밟아볼 계획이다.

노경은은 “내년에 올해와 비슷하게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내년에도 필승조든 추격조든 보직을 가리지 않고 많은 경기에 나가고 싶다. 그냥 자주 나간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거르고 거른 노하우로 부피를 줄인 배낭 하나를 매고, 노경은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출발선을 떠났다.

▲ SSG 노경은 ⓒ곽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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