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갈비·불고기…한식 대표주자에 쏠린 세계적 관심 [ESC]
글로벌 한식 콘퍼런스와 발효학교
국내외 음식 전문가·셰프 모여
요리법과 관련 문화 강의 경청
담양선 기순도 명인 ‘메주’ 전수
한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식료품 체인점 트레이더 조는 지난 8월 초 냉동 김밥을 출시하자마자 2주 만에 560여개 전 매장에서 불티나게 팔렸다고 밝혔다. 한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뉴욕의 레스토랑 ‘아토믹스’는 권위 있는 미식 행사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8위로 이름을 올렸다. 한식의 영향력이 세계로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국에서 의미 있는 한식 행사와 장 문화를 배우는 ‘발효학교’가 문을 열었다.
“불고기 뜻이 뭐죠?” 뜨거운 학구열
“새우젓이 중요합니다. 배추절임용 소금물 농도도 중요하고요.” 지난달 24일 ‘박광희 김치’의 박광희 대표가 서울 종로구 한식문화공간 이음에서 김치 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22년째 김치 연구에 매달려온 장인이다. 이날 수강생들은 스페인·방콕·미국 등에서 온 12명의 외국인과 아토믹스의 박정현 요리사, 박정은 매니저였다. 이들은 이틀 뒤 열린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 주최 ‘2023 글로벌 한식 콘퍼런스’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콘퍼런스에 앞서 김치 강좌를 비롯해 ‘온지음’의 한식, 우관 스님의 사찰음식, ‘벽제갈비’의 한우 정형 등으로 짜인 워크숍에도 참여했다. 이날 민들레김치, 곰취김치 등 20여가지 김치를 맛본 홍콩의 ‘미쉐린 가이드’ 원스타 요리사 비키 쳉은 “김치는 훌륭한 채식 음식인데, 종류도 많다”고 반겼다.
다음날 ‘벽제갈비 더청담’에서는 신기한 풍경이 연출됐다. 1t짜리 소 한 마리가 해체되어 전시돼 있었다. ‘불고기, 한국 고기구이의 문화사’의 공동저자인 전 경남대 교수 이규진 박사가 “지역마다 불고기의 형태가 달랐는데, (울산의) 언양불고기는 소의 여러 부위를 결대로 찢어서 양념해 굽고, 봉계 지역은 설도를 저면서 석쇠에 굽는다”고 강의했다. 이어 “불고기는 긴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며 다양성을 지켜왔고 지금도 여러 음식으로 응용되는 한국인의 ‘솔(soul)푸드’”라고 말했다. 이어 질문이 쏟아졌다. “한국인은 언제부터 불고기를 먹었나요?” “불고기 뜻이 정확히 뭐죠?” 등 외국인들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 박사는 오징어불고기, 돼지불고기 등을 설명하며 한국인에게 불고기는 여러 변주가 가능한 ‘문화’란 점을 강조했다.
이어 ‘벽제갈비’ 박영근 상무가 나섰다. “갈비는 8가지로 분류하는데, 우리는 6~8번까지를 꽃갈비, 9~13번째 갈비를 참갈비라 합니다. 제비추리는 모양이 제비가 날아가는 모양이라 붙여진 이름이죠.” 강연장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박 상무는 “우리처럼 소 한마리를 다 쓰는 나라는 흔치 않고, 새끼를 2~3마리 낳은 암소가 제일 맛있다”고 말했다. ‘미쉐린 가이드’ 별 3개를 받은 요리사 카일 코너턴은 한우 수출에 대해 궁금해 했다. 자신의 나라 미국에서 한우로 요리 창작을 희망한 것이다.
현재 한우는 홍콩·말레이시아·몽골·캄보디아 4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집계를 보면, 지난달 19일 기준 올해 이들 나라에 팔린 한우의 양은 50.2t이다. 축산물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수입국과 검역협상을 해야 하는데, 구제역 발생국은 아예 협상조차 거절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 가장 깐깐하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구제역 발병 때문에 한우 수출은 벽에 부딪혔다. 그동안 정부와 민간의 노력으로 한국은 세계동물보건기구(WOAH)로부터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부여받을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한우 농가에 퍼진 럼피스킨병 등 때문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상황이다.
이날 시작된 콘퍼런스에는 박진선 샘표 사장, 김은조 ‘블루리본’ 편집장, 한식 대가 조희숙 선생, 홍신애 요리연구가, ‘코리아 그랜마’로 알려진 유튜버 박막례씨, 이종임 요리연구가 등 식음료계의 200여명이 참석했다.
첫번째 세션에선 스페인의 미식 행사 ‘마드리드 퓨전’ 설립자 호세 카를로스 카펠이 연사로 나서 설립 과정을 설명했다. ‘마드리드 퓨전’은 2003년부터 시작된 음식문화 박람회로, 전세계 식음료 관계자들이 모여 조리 기술과 음식문화를 공유하는 행사다. 그는 한식과 관련해서는 ‘김치버스’가 인상적이었다고 언급하며 “한식은 세계 요리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채소 발효 음식은 뛰어나다”고 말했다. ‘김치버스’는 2011년 요리사이자 여행작가인 류시형씨 등이 5년간 전세계 34개국을 여행하며 자신의 캠핑카에 단 이름으로, 이들은 도착지마다 한식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스와니예’의 이준 요리사는 타이 요리사 티티드 타사나카존과의 대담에서 “해외 한식당에는 우리 식재료가 영어나 일본어로 돼있다. 요리는 그 나라 언어로 소개돼야 한다”고 문제점을 짚었다. 한 음식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리학교에서 한식 수업이 줄고 있다. 제과제빵 수업에 학생들이 몰린다. 한식 전공했을 때 졸업 후 진로가 어두워서다. 국제한식조리학교(CCIK)도 어려움이 많다고 안다”며 “한식이 제대로 세계로 뻗어 나가려면 인재양성 등에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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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 들어올린 순간 가슴 벅차”
지난달 21일 전남 담양군 창평면에 있는 ‘기순도 장고지’에선 특별한 발효학교 수업이 진행됐다. 다음달 2일까지 총 16회로 구성된 ‘기순도 발효학교’ 수업 중 3·4회가 이날 펼쳐졌다. 수강생들은 서울·제주도 등 각지에서 모인 10여명의 식음료업계 종사자들이었다. 발효학교를 연 이는 기순도 한국전통장보존연구회 이사장이다. 그는 장흥 고씨 양진재 종가의 10대 종부로 2008년에 대한민국 전통식품명인 35호로 지정됐다. 370여년간 내려온 집안의 장 담그는 법을 한평생 지켜온 그는 “사라져가는 장 (담그기) 문화가 안타깝다”고 했다. “우리 장은 한식의 뿌리다. 장이 안 들어가고는 한식의 맛을 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발효학교를 연 이유다.
이날 기 명인은 제일 먼저 백태를 물에 씻으면서 이물질을 골라냈다. “이렇게 떠오르는 건 성치 않은 거지요.” 전날 미리 불려놓은 콩을 참나무로 불 지핀 무쇠가마솥에 넣어 삶았다. 다 삶은 콩을 돌절구에 넣어 빻았다. 수강생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덩어리들을 기 명인의 설명에 따라 네모난 모양으로 성형하고 지푸라기로 묶었다. 옛날 방식대로다. 김병오 조선호텔앤리조트 김치사업팀 파트장은 “메주를 들어 올리는 순간 가슴이 벅찼고, 한식의 자존심인 발효음식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말했다.
이날 특별한 시연도 진행됐다. 기 명인이 어린 시절부터 익힌 이 지역 ‘지푸라기콩나물’ 만드는 법은 독특했다. 그는 작은 구멍이 난 독 바닥에 깨진 그릇 조각을 깔았다. 그 위에 새까맣게 태운 지푸라기를 펼쳐놓고 그 위에 콩나물 콩을 얹었다. 몇 차례 반복하자 어느새 항아리 안이 가득 찼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죠. 시간이 완성할 차례예요.”
발효학교의 백미는 기 명인이 차리는 점심 밥상이다. 이날 그는 죽순무침·방아전·보리굴비구이 등 10가지를 상에 올렸다. 수강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슴슴하고 맛나다”고 했다. 육경희 희스토리푸드 대표는 “370여년 역사가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 감동했다”며 “순대 연구에 장 활용법을 고민 중이었는데, 해답을 찾았다”고 말했다. 해가 산등성이를 훔쳐보며 넘어갈 태세를 하자 솔바람을 타고 큼큼한 메주 향이 퍼졌다. 수강생들도 누런 메줏덩어리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겼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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