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전투기 숨기는 다중대역 스텔스 소재, 미사일 회피 AI…미래전의 게임체인저 K-국방과학기술

이종현 기자 2023. 11. 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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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정통부·KIST, 미래국방 기술교류회 개최
민간 기술, 국방에 활용하는 ‘스핀 온’ 중요성 커져
기존 스텔스 기술은 도료를 바르는 방식인데, 전투기 한 대에 발라야 하는 도료 무게만 2t에 달합니다. 첨단 장비에 적용하려면 경량화·유연화가 필수입니다. 우리는 웨이퍼를 이용한 다중대역 스텔스 소재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아직 연구실에서 사이즈를 키우는 단계지만, 모형 탱크에 스텔스를 입혀서 적외선에서 사라지는 것까지 구현했습니다.
한재원 연세대 기계공학부 교수

전쟁의 시대가 돌아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전 세계에 적색경보가켜졌다. 국방 과학 기술의 중요성도 덩달아 커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과 KAI의 FA-50 같은 ‘K-방산’의 대표 상품이 한국의 수출 효자 품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방위산업은 수출 성사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일단 성사만 되면 계약 단위가 ‘조’ 단위이기 때문에 그만큼 파급효과도 크다.

지난 10월 1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개막한 '2023 서울 항공우주방위산업전시회(ADEX)' 야외전시장에 미 공군의 F-22 랩터가 전시돼 있다./뉴스1

지난 2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는 ‘K-방산’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행사가 열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KIST가 함께 ‘미래국방 기술교류회’를 열고 국방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민간 첨단 기술에 대한 소개와 기술 성과 발표가 이어졌다.

이날 소개된 기술은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나 대학에서 개발한 것들이다. 이런 기술을 국방 분야에 접목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해 열린 행사다.

민간과 군이 함께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스핀 업(Spin-up)이라고 하고, 민간기술을 국방 분야에 적용하는 걸 스핀 오프(Spin-on)이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국방 기술이 민간에 활용되는 스핀 오프가 많았다면 민간의 기술 개발 역량이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스핀 업이나 스핀 온이 중요해졌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도 스핀 온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군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다양한 기술이 소개됐지만 그 중에서도 몇몇 기술에는 군 관계자들이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기술이 한재원 연세대 교수가 발표한 한국형 기동스텔스 기술이었다. 스텔스 기술은 적의 탐지장비를 속여서 생존성을 높이는 기술이다. F-22랩터나 DDG-991 이지스구축함이 스텔스 기능을 갖춘 대표적인 무기체계다.

하지만 스텔스 기술이 발전할 수록 이를 탐지하는 기술 역시 발전하고 있다. 탐지 기술은 크게 적외선 유도와 밀리미터파 유도, 레이저 유도로 나뉜다. 적외선 유도는 표면이 방출하는 적외선을 감지해 추적하는 기술이고, 밀리미터파 유도는 미사일에 탑재된 시커가 목표물에 반사된 밀리미터파를 추적해 타격하는 기술이다. 레이저 유도는 직진성이 강한 레이저를 이용해 표면에 반사된 레이저를 추적하는 기술이다.

지난 2월 23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개최된 2023 드론쇼 코리아를 찾은 관람객들이 대한항공이 개발 중인 차세대 스텔스 무인 전투체계를 비롯한 다양한 용도의 드론을 살펴보고 있다./뉴스1

한 교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첨단 유도 미사일에 의해 탱크를 비롯한 지상장비 3000여대가 파괴됐다”며 “지상무기에 위협이 되는 적외선과 레이저 유도, 밀리미터파 유도에 대응하기 위한 다중대역 스텔스 기술 구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교수 연구팀은 웨이퍼 형태의 스텔스 소재를 개발했다. 적외선과 밀리미터파 탐지를 피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해 12인치 형태의 웨이퍼에 적용하는 것까지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실제 크기의 32분의 1로 축소한 모형 탱크에 적용해 스텔스 적외선 탐지에서 벗어나는 걸 확인했다.

다만 실전에 적용하기까지는 아직 연구해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군 관계자는 “탱크 같은 지상 무기는 표면이 매끈하지 않은 비정형 표면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여기에 이 기술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도 “실제 적용을 위해서는 전차 개발과 스텔스 기술 개발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미사일의 위협에서 항공기가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기술도 소개됐다. 황영하 건국대 미래국방기술융합과 교수는 전투기가 다수의 유도무기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는 경우 AI를 이용해 위협을 회피할 수 있는 경로를 자동으로 설정하고, 최상의 생존경로를 추천해주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3차원 공간정보 생성과 인간-기계 인터페이스(HMI), 유도무기의 탄착지점을 예측하는 기술이 한데 어우러져야 가능한 기술이다. 황 교수는 “기존 시스템은 유도무기가 전투기를 노리고 있다고 신호를 주는 정도였다면 우리가 개발하는 시스템은 어디로 이동하고 어떻게 회피해야 생존 확률이 높아지는지 알려주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이지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이 군집드론 탑재형 화생방 탐지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KIST

화생방전이나 방사능 위협을 빠르게 감지할 수 있는 기술들도 있었다. KIST 기후·환경연구소 지속가능환경연구단은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노트북 크기의 휴대용 가스크로마토그래피를 선보였다. 대기 중의 미세먼지 등 유해물질을 분석하기 위해 만든 장비인데, KIST 연구진은 이 장비를 더 작게 만들어서 군집 드론에 싣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이지원 KIST 선임연구원은 “기존의 화학물질 탐지 기술은 부피가 크고 단일 물질만 탐지가 가능한 경우가 많아 전장을 비롯한 실제 현장에서는 활용이 어려웠다”며 “군집 드론에 실을 수 있게 휴대용 가스크로마토그래피를 기존보다 85% 수준으로 줄였고, 5종의 신경 수포 작용제를 검출할 수 있는지 실험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실시간으로 방사선을 탐지할 수 있는 기술을 소개했다.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가 보유한 방사능 탐지 장비는 차량과 기동형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이들 장비는 방사능의 정확한 위치를 탐지하기가 어렵고 핵종 분석도 쉽지 않다. 오경민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는 “방사선 시각화를 위해 어떤 센서를 쓸 것이냐가 중요한데 섬광형은 저렴한 대신 에너지 분해능이 떨어지고, HPGe 방식은 에너지 분해능이 좋은 대신 극저온의 상태에서만 쓸 수 있어 현장에서 사용이 불가능하다”며 “원자력연구원은 감마선을 시각화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오 박사는 백팩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크기의 휴대용 정밀 방사선 탐지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다며 핵이나 대량살상무기(WMD) 현장대응이 가능해지고, 군이 개발하고 있는 워리어 플랫폼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생물방어연구소는 전투 현장에서 바이러스를 조기에 탐지할 수 있는 ‘회전환증폭(RCA) 기반 미세유동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기술을 소개했고, 한국기계연구원 스마트산업기계연구실은 오프로드에서 자율주행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였다. 오프로드 자율주행 기술이 구현되면 전차나 장갑차, 수송차량 등 지상 무인차량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래현 KIST 미래국방 국가기술전략센터 센터장은 “첨단과학기술은 민간이 주도하고 있다”며 “민간의 첨단 과학기술역량을 체계적으로 국방에 접목해 미래 전장과 국방 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유망 기술을 발굴하고 기획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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