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내 몸에 꼭 맞는 겨울 코트’ 테누타 알자투라 몬테팔코 사그란티노

유진우 기자 2023. 11. 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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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주 상냥한 포도주야.
새침을 떨고 수줍어하는 첫맛이야.
부끄럽게 등장하지.
하지만 두 번째 맛은 아주 우아하거든.
두 번째 맛에서는 약간의 교활함이 느껴져.
또 좀 짓궂지.
약간, 아주 약간의 타닌으로 혀를 놀려.

로버트 달 단편소설 '맛'

‘혀를 놀리는 아주 약간의 타닌’이란 과연 어떤 맛일까.

와인 애호가라면 와인 맛을 논하며 타닌이라는 단어를 곧잘 입에 올린다.

타닌은 맛이 아니다. 입안이 마르고 조여드는 느낌 그 자체, 다시 말해 질감에 가깝다. 학계에서는 떫은 맛을 매운 맛처럼 미각 영역보다 촉각 영역으로 분류한다. 흔히 떫은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면 ‘타닌감이 세다’는 식으로 말하는 편이 적합하다.

타닌은 포도 껍질과 씨, 꼭지와 줄기에 주로 들어 있다. 자연히 포도즙만 따로 발효해 만드는 화이트 와인보다 껍질째 담가 발효하는 레드 와인에 많이 들어간다.

현재 가장 영향력있는 와인 평론가이자 ‘와인의 여왕’이라 불리는 잰시스 로빈슨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상업적으로 재배하는 주요 레드 와인 품종은 약 350개 정도다.

이 가운데 사그란티노(Sagrantino)는 타닌 수치가 가장 높은 레드 와인 품종으로 꼽힌다. 타닌 양은 보통 1리터 당 그램 수(g/litre)로 표시하는데, 사그란티노는 리터 당 타닌 양이 3.5~4그램에 달한다.

일반 소비자에게 남성적이고 떫은 느낌이 센 와인으로 알려진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 타닌 수치가 리터당 1.5~1.8그램이다.

쓴 맛을 즐기는 사람이 얼마 없듯, 떫은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다. 떫은 느낌은 본능이 거부한다. 설익은 감을 한움큼 씹을 때처럼 떫은 느낌이 입안을 감싸면 이내 곧 뱉어 버리고 만다. 독성 물질이 몸에 들어오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생물학적 경보 시스템이 작동한 덕분이다.

사람 뿐만이 아니다. 동물도 떫은 느낌을 싫어한다. 생명공학자 라이얼 왓슨은 “포도 잎사귀와 줄기에서 쓴 맛이 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초식동물들에게 먹히지 않기 위한 생존 방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주 작은 마을 몬테팔코에서는 굳이 전 세계에서 가장 떫은 포도로 와인을 빚는다.

15세기경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도사들은 성지순례 차 중동에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품종을 가지고 왔다. 이후 600년 넘게 ‘사그란티노 디 몬테팔코’라는 이름으로 와인을 만들었다.

사그란티노는 포도알맹이 크기가 콩알처럼 조그맣다. 색깔도 블루베리처럼 아주 진해 보랏빛에 가깝다. 손톱보다 작은 알에 포도씨라고는 겨우 하나가 들어 있다. 과육 크기가 작다 보니 껍질 비중이 자연히 높다. 사그란티노가 뿜어내는 강한 떫은 느낌은 두터운 겨울코트 같은 이 껍질에서 온다.

지난 600년 동안 몬테팔코에서는 껍질 속 타닌을 다루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와인 생산자들은 포도 껍질이 서서히 두꺼워질 수 있도록 300~400미터 지대 고원에 묘목을 심었다. 구릉지대에서 천천히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자란 포도 알맹이는 다른 포도보다 훨씬 느지막이 땄다.

이렇게 딴 포도는 참나무통에서 최소 16개월을 묵혔다. 이 과정에서 참나무통 작은 구멍으로 공기 순환이 이뤄지자 타닌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코코넛과 바닐라, 카라멜 같은 다양한 풍미도 생겼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참나무통에서 묵힌 와인을 시멘트 용기로 옮겨 따로 안정기간을 거친다. 끊임없이 공기와 맞닿으며 제 모습을 바꾸던 와인이 조용히 자기 개성을 다듬을 시간을 주려는 의도다. 이후 병 속에서 최소 8개월을 추가로 숙성해야 시장에 나올 수 있다.

이렇게 포도 껍질 속 타닌을 능숙하게 다루면 와인은 남다른 생명력을 얻는다. 와인 전문가들은 병에 넣은 초기 사그란티노를 우락부락하고 건장한 근육질 남성에 비유한다. 하지만 병 속에서 시간을 보낸 사그란티노는 한층 부드러워진 중년 신사 같은 와인으로 변모한다. 처음에는 남의 옷처럼 어색하고 뻣뻣했던 와인이 내 몸에 스르륵 감기는 외투로 바뀌는 듯한 느낌이다.

테누타 알자투라는 몬테팔코 인근 유명 와인 산지 키안티와 마렘마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체키(Cecchi) 가문이 사그란티노가 가진 가능성에 주목해 만든 와이너리다.

테누타 알자투라 몬테팔코 사그란티노는 이 와이너리가 만드는 간판 와인이다. 오로지 사그란티노만 사용해 양조한다.

이 와인은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구대륙 구대륙 6만~10만원 미만 와인부문 대상을 받았다. 수입사는 비케이트레이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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