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상기 BNE컨설팅 “협상은 바둑과 비슷… 상대 우선순위 알아야”
전략분석 플랫폼 개발… “기업 협상력 높일 것”
“국제 협상을 잘 하는 기업은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영업이익을 높일 수 있습니다. 국제협상전략자문으로 대기업의 협상 과정에 참여해보면 선진국 수준의 국제 협상력을 겸비한 국내 기업인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기술력은 선진국일지 몰라도, 협상능력은 세계 50~60위권 수준입니다.”
박상기 BNE컨설팅 대표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BNE컨설팅 본사에서 만난 박상기 대표는 한국의 국제협상 능력을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박 대표는 1990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해외사업부를 시작으로 현대·삼성그룹을 거치며 30여 년간 국제협상 분야에 몸담고 있다. 2002년 BNE컨설팅을 차린 후 기아, KT, 삼성, CJ 등 대기업에 협상자문을 해주고 있다.
박 대표는 “한국에서는 아직도 ‘윈윈(win-win·상호승리)’협상을 강조한다. 그런데 협상력이 현저히 밀리는 상황에서 상대를 배려하고 경청하는 순간 그 협상은 망한다. 협상은 단순한 설득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상대가 받아들이게 만드는 논리적이고 심리적인 싸움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이탈리아 지역의 매출 부진으로 고민하던 국내 주요 자동차기업 A사를 위해 협상 자문을 해줬던 일을 사례로 들었다. 당시 A사는 이탈리아 현지 총판이 재고 차량을 이유로 신규 구입 물량을 늘리지 않아 수출 실적이 부진했다. 박 대표는 “총판이 악성 재고에 초점을 맞추면 신규 주문축소라는 결론을 내리는 건 당연하다”면서 “재고가 있더라도 구매 물량을 늘릴 수 있도록 관심을 돌릴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했다.
그는 A사의 인기 차종이었던 미니밴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이탈리아 배정 물량을 늘려주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박 대표는 “당시 현지 총판에 새로 부임한 사장은 매출을 늘릴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인기 많고 수익성이 좋은 차종의 이탈리아 배정 물량을 늘리려면 총판에서 전체 구매 수량 자체를 늘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 전략은 적중해 2002년 1만3500대였던 A사의 이탈리아 수출량은 이듬해 2만1300대로 증가했고, 2005년에는 4만3600대로 늘었다. 박 대표는 “사람들은 누구나 손실이 크면 거절하고, 이익이 되면 승낙한다. 상대의 속내를 읽어야 최적화된 협상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법적으로 승산이 없던 협상에서 최상의 결과를 낸 사례도 있었다. 2009년 국내 유명 영화 제작·배급사인 B사는 미국 할리우드에 있는 유명 영화제작사 한 곳의 영화를 국내에 배급하는 과정에서 로열티(사용료)를 둘러싸고 법정 공방에 휘말릴 위기에 처하자 박 대표를 찾았다.
당시 B사는 할리우드 제작사가 만든 영화를 국내에 상영하고, 매달 영화 수익(원화)의 일정 부분을 달러로 환산해 로열티로 지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매달 정산하지 않고 1년 동안 발생한 수익에 연말 환율을 적용해 이듬해 초에 일괄 지급해왔다. 국내 상영관이 1000개가 넘고 로열티를 계산하는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었다.
영화 업계에서는 통상 1년 치 로열티를 지급하는 관행이 있어 B사의 로열티 계산법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 초 원·달러 환율이 급등(원화 가치 급락)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달러로 환산해 입금된 로열티 수익이 급감하자 제작사 측에서 계약서대로 로열티를 지급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를 들어주면 B사가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급증하는 상황이었다.
B사는 법적 다툼은 피하면서 추가 지급금액을 낮춰야 했다. 박 대표는 이 분쟁을 법정으로 끌고 갈 경우 생겨날 문제점을 강조하며 합의를 유도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는 두 회사 간 계약조건이 법정에서 노출되면 해당 영화사의 영화를 배급하는 전 세계 기업 중 B사보다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는 업체가 재계약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박 대표는 “B사에서 받을 추가 로열티 보상금보다 재계약으로 인해 줄어드는 로열티 수익이 더 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후 몇 번의 협상이 더 있었지만, 이 전략이 주효해 애초 내야 할 로열티보다 상당히 축소된 금액만 지불하는 선에서 합의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최고 수준의 협상 지식을 쌓아야 상황을 분석하고 시나리오를 짤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컨설팅 업무를 하면서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MBA) 및 비즈니스 협상 과정을 이수했고, 현재는 한국협상학회 부회장과 국제협상연구위원장을 겸임하면서 최신 협상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간 수집한 정보를 기반으로 고객의 상황과 상대방의 상황을 정리해서 입력하면 최적의 협상 전략을 찾아주는 SaaS(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 플랫폼 ‘SNSM(Strategic Negotiation Solution Manual·협상전략매뉴얼)’을 개발했다. 박 대표는 “협상 교육을 잘 받아 방법론을 알고 있더라도 실제 협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기업인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협상을 모르는 사람도 전략을 짤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한국 기업에 세계 최고의 협상 교육과 컨설팅을 제공하는 게 목표다. 그는 “협상은 바둑과 비슷하다. 상대방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어떤 협상 전략을 쓰는지 유추해야 그에 맞는 협상 전략을 세울 수 있다. SNSM을 고도화해 더 많은 한국 기업이 협상력을 올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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