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핵폭탄 개발에 진심이었나···‘죄수’냐 ‘치킨’이냐[일타쌍피 스토리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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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
핵폭탄은 인류가 만든 최악의 대량살상무기다.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다. 폭발때 발생하는 고열과 충격파, 방사능물질은 주변 수십킬로미터 초토화시킨다. 핵전쟁은 전쟁 당사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량의 핵폭발은 핵겨울을 불러와 인류를 공멸시킬 수 있다. 전세계에는 1만2000개의 핵무기가 있고 이중 3700여개가 실전에 배치돼 있다. 자칫 누구하나 실수로라도 핵버튼을 누른다면 그 결과는 가히 공포스러울 수 있다.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가 2021년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한국인의 71%는 자체적인 핵무기 개발을 찬성한다. 2006년 사회동향연구소 설문조사에서도 ‘남한도 자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가 67%에 달했다. 1980년대도, 90년대도 찬성여론은 60~70%대를 오갔다. 시대가 변하고 한반도 상황이 급변했어도, 이같은 찬성율은 변화가 없다. 전세계가 두려워하는 핵은,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정의고 힘이다. 한국은 핵의 수혜를 본 적이 많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두발의 원자폭탄은 일제 식민지배에서 해방을 앞당겼다. 원자력은 중공업 육성이 절실했던 자원빈국 한국에게는 생명의 빛이었다.
영화<오펜하이머> 일본 상영, “기약없다”
일본인의 핵정서는 한국과 다르다. 1945년 두발의 원자폭탄으로 패전국이 됐다.1954년 미국의 태평양 비키니섬 수소폭탄 실험 당시 23명의 참치어선 어민들이 피폭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2011 동일본 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다. 일본은 핵에 대한 공포와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핵폭탄의 아버지 J.로버트 오펜하이머에 대한 관심이 한일이 다른 이유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올해 한국 박스오피스 10위에 올라있는 흥행작이다. 많은 화제를 뿌리며 322만명의 관객이 봤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개봉하지 못하고 있다. 기약도 없다. 미국 헐리우드에서 제작한 영화가 일본에서 상영되는 못하는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인셉션> <인터스텔라>를 연출한 거장, 크리스토 놀란 감독의 작품이라는 데서 더 그렇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제2차세계대전 말미 뉴멕시코주의 로스알라모스 연구소. 미국은 이곳에서 비밀리에 원자폭탄을 만드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오펜하이머는 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원자폭탄을 만든 게임이론, ‘죄수의 딜레마’
미국은 왜 원자폭탄 개발에 진심이었을까. 독일 나치가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미국은 독일이 먼저 원자폭탄을 손에 쥐는게 두려웠다. 미국 정부는 나치를 피해 망명한 독일 과학자들까지 끌어들여 원자폭탄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게임이론으로 볼때 미국의 행위는 ‘죄수의 딜레마’로 설명된다. 죄수의 딜레마란 개인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손해가 되는 선택을 하는 것을 말한다.
경찰에게 붙잡힌 죄수 A와 B가 있다고 치자. 두사람이 서로 죄를 불지 않으면 1년 징역이다. 만약 A가 자백하고 B가 자백하지 않으면 A는 석방, B는 징역 10년을 받는다. 반대로 B가 자백하고 A가 자백하지 않으면 B가 석방, A가 10년을 받는다. 두사람이 모두 자백하면 각각 5년을 받는다.
①A 자백을 했다고 가정하자. B가 자백을 안하면 석방, B가 자백을 하면 5년이다.
②A가 자백을 하지 않았다고 가정하자. B가 자백을 한다면 10년, B가 자백을 안하면 1년이다.
③A로서는 어떤 경우든 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자백을 하면 길어야 5년이다. B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에따라 A와B가 동시에 자백을 하면 이들은 각각 5년을 받는다. 서로를 믿지 못했기에 둘 다 침묵했으면 받을 수 있었던 징역 1년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를 이용한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의 ‘리니언시제도(자진신고자 감면제도)’다. 리니언시 제도란 담합이나 카르텔 등에 참여한 기업이 그 사실을 자진 신고할 경우 과징금과 징역 등 제재를 감면해주는 제도다. 담합은 증거를 찾기 어려운 탓에 주요국의 경쟁당국은 리니언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는 상대와의 정보가 차단됐을 때 벌어진다. 미국과 독일 상황이 딱그랬다. 원자폭탄은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거대한 힘이었다. 미국도 독일도 상대의 손에 이 폭탄이 들어가는 것은 최악의 수였다. 이는 곧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 양국은 개발전쟁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원자폭탄을 개발하지 않는 최선의 선택을 놓치게 됐다.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했다는 영광도 잠시,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만든 폭탄의 위력에 절감하고는 극심한 두려움을 느낀다. 일본에 투하된 두방의 원자폭탄은 14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는 “손에 피가 묻은 것 같다”며 괴로워 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핵폭탄을 개발한 건 당신이지만 사용을 명령한 사람은 바로 나”라고 말하지만 오펜하이머의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우려했던 대로 또다른 핵개발 경쟁자였던 소련은 금새 미국을 따라왔다. 4년 뒤인 1949년 소련은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다. 미국은 더 센 폭탄이 필요했다. 수소폭탄 개발에 나서지만 오펜하이머가 이번에는 반대하고 나선다. 더 센 폭탄 만들기는 해답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수소폭탄 개발 반대는 그를 소련의 스파이로 생각하던 정적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됐다. 이들은 소련에 원자폭탄 기술을 넘긴 혐의로 그를 청문회에 세운다.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힌 그는 결국 비밀취급인가를 박탈당하고 정부 요직에서 쫓겨난다. 이때가 1954년이었다. 미국은 같은 해 태평양에 있는 비키니섬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
치킨게임, 승자는 없다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한 것은 핵 군비경쟁이 ‘치킨게임’에 빠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치킨게임이란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둘 다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이론을 말한다. 한쪽이 포기를 하면 둘 다 승자가 되지만, 포기하는 쪽은 겁쟁이(치킨)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기 힘들다.
A와 B가 자동차를 타고 서로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가정해보자. A,B가 그대로 돌진해 정면충돌한다면 최악수다. A입장에서는 핸들을 꺾는게 사는 길이다. 만약 B도 동시에 꺾으면 둘다 살고 체면도 유지된다. 그런데 자신은 꺾었는데 B가 계속 돌진했다면 겁쟁이라며 체면을 잃게 된다. 겁쟁이 소리를 듣기 싫어 그는 돌진을 택한다. 상대도 체면을 중시한다면 결국 두사람은 파국을 맞게 된다.
세계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자 냉전이 시작됐다. 자유진영을 대변한 미국과 공산진영을 대변하는 소련은 대결이 불가피했다. 미국이 수소폭탄을 만든다면 소련은 그보다 더 강한 폭탄을 만들어야했다. 핵무기 경쟁은 막대한 국가자원이 투입되는 대결이기도 했다. 한쪽에 수소폭탄 개발 포기를 선언한다면 다른쪽도 굳이 만들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먼저 개발포기를 선언하면 체면을 잃을 우려가 있었다. 오펜하이머의 우려는 적중했다.
미국은 1952년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듬해 1953년 소련도 만든다. 미국은 핵무기 보유를 늘려 대응한다. 소련도 계속 핵무기를 생산해 1978년에는 핵무기 보유량에서 미국을 추월한다. 그 사이 영국, 프랑스, 중국도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하면서 핵군비경쟁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 결과가 현재 전 세계에 존재한다는 1만2000개의 핵무기다. 미소의 치킨게임은 두 나라는 물론 지구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은 셈이다.
영화의 원작은 오펜하이머의 평전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다. 그리스신화에 따르면 불은 신들의 전유물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주지만, 제우스의 분노를 사 평생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고통을 당한다. 오펜하이머는 인류에게 제2의 불, 원자에너지를 가져다 줬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처럼 자신이 만든 원자폭탄이 대량살상무기가 되는 것을 보며 평생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오펜하이머가 힌두경전에서 인용했다는 이 한 구절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 지도 모르는 무기를 만들어야 했던 한 과학자의 고뇌를 잘 표현한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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