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벽돌책] ‘자유’는 노예제 사회서 심도 있게 발전됐다
‘장강명의 벽돌책’ 연재 초반에 영국 역사학자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글항아리)를 다루며 고대 로마와 중국 한나라를 비교 설명하는 대목이 재미있다고 썼다. 오늘 소개하려는 어우양잉즈의 ‘용과 독수리의 제국’(살림)은 920페이지에 걸쳐 두 제국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더 깊고 자세하게 살피는 책이다. 어우양잉즈는 진시황이 세운 진(秦)나라를 한나라만큼이나 중요하게 보기에, 정확히 말하면 비교 대상은 고대 로마와 중국의 진·한 왕조다.
한 범주 안에 있는 두 대상을 세밀히 비교하면서 우리는 그들이 속한 카테고리 자체에 대해서도, 두 대상의 개성에 대해서도 새로운 각도에서 통찰을 얻는다. 먼저 로마와 진·한의 공통점을 읽을 때는 여기에 거대 제국의 흥망에 대한 일반 법칙이 숨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이웃을 무력으로 정벌하되 그 문화에 대해서는 열린 자세여야 한다든가, 확장 과정에서는 점령지에 주둔군을 두는 대신 패권을 쥐는 편이 낫다든가, 정치 엘리트 계층을 포섭해야 한다든가, 도로 건설이 중요하다든가.
그런데 이 책에서 진짜 흥미진진한 부분은 로마와 진·한의 차이점이다. 예를 들어 이런 분석은 어떤가. 고대 중국은 노예가 있는 사회였지만 노예에 기반을 둔 경제는 아니었다. 반면 로마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예제 사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노예제 사회에서 ‘자유’라는 개념과 자유민의 권리가 더 심도 있게 논의되고 발전한다. 고대 중국에는 자유민과 노예라는 대립항이 없었고, 대신 양민과 천민이라는 개념만 있었다. 이런 차이는 동서양의 문화와 전통적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책 내용만큼이나 저자의 이력도 흥미롭다. 어우양잉즈는 중국계 미국인 여성으로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물리학 교수로 일하다 퇴임한 뒤 역사 연구에 뛰어들었다. 과학자 출신답게 논증이 꼼꼼하며, 중국 역사와 문화에 해박하면서도 ‘중화’를 찬양하거나 거기에 자부심을 드러내는 기색은 전혀 없다. 시종일관 유가와 한나라를 비판하고 법가와 진나라를 높이 평가하는 관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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