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가 거머쥔 戰後 패권 열쇠는 바다를 지배하는 힘 ‘해군력’
2차대전 해전과 강대국 흥망 분석
대해전, 최강국의 탄생
폴 케네디 지음 | 강주헌 옮김 | 한경BP | 740쪽 | 4만원
세계사를 단순한 연대기(年代記)로 따라 읽다 보면 놓치기 쉬운 것이 ‘한 시대의 패권을 잡은 강대국은 왜 승리할 수 있었는가’라는 문제다. 탁월한 지도력으로 부국강병에 성공했고 시운이 잘 맞아서? 단지 그뿐이었을까. 1987년 출간돼 이제는 고전 반열에 오른 ‘강대국의 흥망’은 그 이면에 대단히 중요한 열쇠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 역사서였다.
‘강대국의 흥망’은 한 국가의 부(富)가 커질수록 그에 맞는 군사력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군사력이 지나치게 확대되면 재정의 불건전성이 커지기 때문에 오히려 나라의 몰락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 때문에 미국은 쇠퇴하리라고도 짚었다. 강대국의 조건에 민주주의는 별 상관이 없다는 분석 때문에, 미국식 민주주의가 강대국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이념이라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과 대척점을 찍었다.
21세기 들어 미국이 테러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으로 휘청거리면서 ‘강대국의 흥망’은 다시 주목받게 됐다. 미국의 패권이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책의 저자인 폴 케네디(77)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는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원제 ‘Victory at Sea’)에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 강대국의 패권을 가능케 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열쇠를 제시했다. 그것은 바다를 지배하는 힘, 해군력(海軍力)이다.
‘강력한 해군의 힘으로 세계의 바다를 지배한 나라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을 독점적으로 장악했다’는 것이다. 왜 바다를 지배해야 하는가? 전쟁에서 연합군이 승리한 것은 전투원과 군수품을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두 대양의 건너편으로 끊임없이 실어 나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바다를 점유하면 다 되는 것인가? 전쟁 당시 일본 역시 기를 쓰고 태평양을 수중에 넣으려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 않다. 그 배후에서 작동한 것은 바로 ‘생산력’이었다. 북미 대륙의 풍부한 자원들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전쟁 물자를 제작하는 거대한 공장으로 급속히 바뀔 수 있도록 했다. 그와 같은 바탕에서 과학기술에 의한 새로운 무기와 포대, 탐지 장치가 속속 출현했다. 전쟁이 후반으로 접어들던 1943년 중반에 이르면 유례 없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군비와 무기가 전쟁터로 보내졌다. 미국의 항공기 생산량은 1년 만에 2배가 됐고 매달 한 척씩 항공모함이 건조됐다. 그 결과 필리핀의 레이테만과 프랑스의 노르망디 양쪽 전선에서 미국은 모두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전 초기 독일 전함 그라프 슈페호의 침몰에서부터 종전 직전 오키나와 전투까지 세밀화를 그리듯 흥미롭게 서술한 이 책은, 해전의 승리가 오직 생산력이라는 하부구조에 의해서만 결정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승자의 군함과 항공기와 총포에는 그것들을 다루는 용감한 인력이 필요하다. 또 그것들을 조직화하는 통찰력을 지닌 사람, 그것들을 전쟁터에서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영리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중해의 전략 거점인 몰타를 연합군이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수송 선단과 호위함의 큰 피해를 기꺼이 감당했던 군인들 덕분이었다. 레이테만 전투의 승리에는 뛰어난 기량을 지닌 미국 잠수함 함장과 전문적인 미국 함재기 조종사, 훈련을 잘 받은 미국 포병들이 큰 역할을 했다. 최후의 승리를 쟁취한 요인은 바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 이탈리아, 일본, 프랑스의 해군이 궤멸됨으로써 과거 해상의 다국적 균형이 사라졌다.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미국이라는 한 나라가 바다를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 미래에 대한 예측을 아끼고 있지만 독자 입장에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향후 미국의 패권이 약화될 수는 있지만, 만약 그다음 패권을 잡으려는 나라가 있다면 반드시 탄탄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바다를 지배하는 일에 나서야 하리라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책은 미국 해양화가 이언 마셜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함을 그린 수채화 50여 점을 수록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전함과 수채화가 기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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