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쇠를 막는 운동법 따로 있다?
인간은 첫걸음을 뗀 순간부터 ‘걷기’ 행동을 당연히 여기며 살아간다. 두 다리를 번갈아 활용해 목적지로 몸을 움직이는 동작인 ‘걷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렵지 않게 수행 가능한 동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힘들고 절실한 행위이기도 하다.
건강하던 사람도 외상이나 질환으로 걸음이 부자연스러워지면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지며 여러 합병증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환자를 문제없이 걸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정형외과 의사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최근 각종 수술 술기(術技)와 기구 발달로 망가진 뼈나 관절 치료 결과는 매우 좋은 성과를 보이며, 건강할 때와 거의 유사한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다. 하지만 건강했을 때처럼 완벽히 걸을 수 있도록 회복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고령층 환자는 수술과 치료가 아무리 잘되더라도 거동 능력과 기력을 예전만큼 회복하기 어려울 때가 흔하다. 이처럼 특정 스트레스 상황(외상, 수술 등) 이후 예전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을 ‘노쇠(frailty)’라고 한다.
나이를 먹으며 기력이 쇠해지는 노쇠 현상은 당연한 자연의 섭리다. 그러나 의학 발달로 기대 수명이 늘어나면서 고령 환자가 증가하다 보니 이러한 노쇠함은 환자 치료에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사람에 따라 기력이 쇠해지는 시기도 편차가 크므로 노쇠함은 의학적 치료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정형외과 영역에서 노쇠함은 환자의 보행 능력 저하와 직결되며 삶의 질을 크게 악화시키고 다른 내과 질환들을 유발해 사망률도 높이는 주범이 된다.
노쇠 원인은 다양하다. 고령·영양 불량·만성질환·약물 복용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이 중 근육량과 근력이 감소하고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 ‘근감소증’은 노쇠로 향하는 고속열차 같은 역할을 하기에 정형외과 영역에서 환자 치료를 큰 어려움을 준다.
근감소증은 노쇠함을 유발해 보행 능력을 떨어뜨리고 외상 후 컨디션 회복을 저해한다. 이뿐만 아니라 인공관절 치환술과 같은 수술 결과에도 악영향을 미치며 근감소증 자체에 의한 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근감소증의 부정적 영향은 정형외과를 넘어 다른 임상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대표적으로 근감소증은 암과 같은 만성질환 사망률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근감소증은 의학 전반에 걸쳐 임상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면 근감소증을 치료하는 방법이 있을까. 근감소증과 연관된 분자생물학적 기전은 실험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알려졌으며 이를 대상으로 하는 약제들도 많이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임상 시험을 통과해 직접 증상에 사용 가능한 약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적절한 영양 섭취와 운동만이 근감소증에 대항하는 치료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영양 섭취와 운동 시행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학자마다 세부적인 방법이 제각각이어서 어떤 운동을 얼마나 하고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가장 효과적인지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되는 연구들을 통해 중재 방법의 어렴풋한 방향성을 설정할 수는 있다. 2022년에 명망 있는 국제 학술지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 발표된 SPRINTT 연구가 우리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잘 설계된 연구의 하나다.
이 연구에서는 70세 이상 고령인을 대상으로 36개월간 철저히 운동 및 영양 섭취 중재를 한 결과,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이동 장애 발생률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는 것을 보고했다. 세부적인 프로토콜은 유산소 및 근력 운동, 적절한 칼로리 및 단백질 섭취일 뿐 아주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잘 따르도록 철저히 관찰하며 환자군을 꾸준히 관리했다는 것이 일종의 비법이었다.
이 밖에 다른 연구 결과까지 종합하면 결국 근력 운동을 포함한 운동, 단백질을 포함한 적절한 칼로리 섭취를 ‘꾸준히’ 시행하는 게 근감소증과 노쇠를 막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 대다수가 건강에 관심을 지녀 운동을 꾸준히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세히 물어보면 대부분 산책 같은 가벼운 유산소운동에 그치고 있고 아쉽게도 근력 운동의 필요성과 방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유산소운동도 필요하지만 같은 산책이어도 빨리 걷기, 같은 실내 자전거 운동이라도 무겁게 타기(다리가 저항을 느끼는 수준의 강도 부여하기)처럼 근력운동을 추가해야 한다.
또한 고령 환자의 경우 이미 관절염 등 다리에 질환이 있을 때가 많아 관절 부담이 줄어든 상태로 운동할 수 있는 아쿠아로빅 운동도 추천한다. 개인 선호도와 신체 상태에 따라서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원칙은 낙상에 유의하며 허벅지와 엉덩이 부위가 뻐근함을 느낄 정도로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당연한 것을 잃으면 불행해진다. 건강할 때 당연하게 하던 ‘걷기’가 어려워지면 노년기 삶의 질은 크게 저하된다. 나이 들면서 건강한 걷기를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은 계속 발생하기 마련이기에 평소 최선을 다해 예방에 힘써야 한다.
시간 흐름과 세포 노화는 막을 방법이 없지만, 노쇠함을 막고 건강하게 오래 걷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필요한 요소는 스스로 건강에 관심을 지니고 지켜가려는 꾸준하고 강력한 의지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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