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그런다고 세상이 변할까? [젠더살롱]
오랫동안 못 봤던 친구를 만나거나 낯선 사람들을 만나서 무슨 일을 하는지 이야기해야 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일단 ‘활동가’라는 명칭이 있지만 의사, 변호사, 교사처럼 이름만 들어도 대충 무슨 일을 하는구나 연상되는 인지도의 직업도 아니고 실제로 여타 직업처럼 명확히 무슨 일 하나를 하고 있지 않기도 하다. 그러니까 어디 소속되어서 정기적으로 출퇴근하거나 지시를 받고 일하지는 않으니까 일종의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데, 돈 받는 일만 하는 건 또 아니고… 성교육도 하고 성폭력예방교육도 하고… 글 쓰고 집회도 나가고 모임 운영도 하고… 설명이 길어질수록 상대의 동공이 흔들린다 싶으면 그냥 좋은 세상 만드는 힘든 일 한다고 이야기하고 얼른 다른 주제로 넘어가버린다.
단지 사람들이 낯설어해서만의 문제는 아니고 활동가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도 한몫한다. ‘프로불편러’라던가 ‘사회부적응자’, ‘시위꾼’ 등 어떻게 보면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피로한 낙인은 역사도 유구한 ‘빨갱이’라는 멸칭에서부터 조금씩 변주를 거쳐 와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게다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체명이라도 소개해야 할 때는 더 난처하다. 애당초 한 번에 이해되는 이름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는 상대와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기 일쑤고 나는 그 해명의 지난함이 고단하여 때로 그대로 둔다.
문제는 말하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페미니스트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순간이 당연 유쾌하지 않다. 가장 흔하게는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질문으로 둔갑한 저항의 순간이 있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요?”, “요즘은 성차별이 아니라 역차별이 문제 아닌가요?” 등 유사한 형태의 질문이 하도 반복적으로 나와서 이제는 자판기처럼 질문을 넣으면 자동으로 대답할 수 있게 됐다. 가끔은 조금만 찾아보면 알 수 있는 질문을 대체 언제까지 답해줘야 하나 싶은 답답한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또 한편으로 이러한 질문과 저항이 불가피하다고 느낀다. 애초 페미니즘이 단지 ‘1+1=2’ 정도의 지식을 더하거나 ‘착하게 살자’ 정도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이 당연하게 여기던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기존의 인식체계, 권력에 질문을 던지고 관성을 벗어나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이 저항 없이 단번에 이해되기를 바라는 게 욕심일지 모른다.
더 난처한 순간은 갈등, 저항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피하려 할 때 발생한다. 최근 학교에서 교직원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한 번은 강의가 끝나고 교육 담당자가 강의안에 있는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양성평등’으로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이 자신의 어떤 정치적 의견이나 종교적인 가치관 때문이 아니라 ‘민원’을 염려하는 마음임을 특별히 강조했다. 이외에도 사전에 학교와 교육 관련하여 소통할 때 ‘민감한 사안’은 되도록 다루지 말아달라는 부탁도 흔하게 받는다. 그때마다 복잡한 심경이다. ‘성평등’, ‘성인지감수성’ 같은 말만 써도 민원 폭탄을 제기하며 문제시하는 경우가 상당하기에 이런 염려가 이해되지만, 정말 민원 없는 교육만으로 괜찮은걸까? 교육 현장이 아니면 대체 어디에서 다른 시선과 의견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 특히 요즘처럼 정보, 의견도 알고리즘에 따라 유사한 사람들끼리만 모아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현실에서 교육이 그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갈등은 길 잃고 위태로이 더 극단적, 폭력적으로 분출될 지 모른다. 그래서 미움을 무릅쓰고 양성 범주에 포괄되지 않는 존재를 조명하고자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쓰고 민감한 퀴어 이슈도 민감한 만큼 중요하게 다룬다.
분위기를 깨는 페미니스트
이 과정은 아무리 해도 도통 쉬워지지 않는다. 교육은 강사의 생계와 연결되어 위태롭고 담당자나 연관기관에까지 불똥이 튀면 어쩌지 싶은 마음도 든다. 또 사람이라는 게 이상해서, 99명이 좋았다고 해도, 한 명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 그게 그렇게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매번, 나 하나만 참고 넘어가면, 이번 한 번만 외면하고 넘어가면 모두가 편하지 않을까 하는 유혹에 흔들린다. 그러나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사라 아메드는 자신의 책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을 분위기 깨는 페미니스트라 지칭하는 것은 그런 판단을 열망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지요.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지적하는 것이 불행을 야기하는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불행을 촉발하겠노라! 행복이 폭력을 모른 척 눈감는 것이라면 나는 그 행복을 거절하겠노라!”
사라 아메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中
페미니스트는 자주 분위기를 깬다. 남들이 웃을 때, 그저 웃어넘기지 못하고 단어 하나가 신경 쓰여서 주저하다가 또 미움받기를 무릅쓰고 이야기해 분위기를 깨버린다. 혹자는 말한다. 네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겠냐고. 나도 알고 있다. 목이 쉬어라 이야기한들 어떤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고 견고한 세상은 흠집 하나 나지 않을지 모른다. 게다가 내가 경험한 페미니즘 친화적인 운 좋은 시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한동안 곤궁하고 냉혹한 시기가 지속될지 모른다. 실로 함께 페미니즘을 접한 친구들 중 상당수는 페미니즘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 남함페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페미니즘 활동 단체들 중에서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곳이 많다. 한때는 정치인, 연예인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며 여성인권에 관심을 보였는데, 이제는 페미니즘이 무슨 금기라도 되는 듯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성차별의 순간마다, 문제를 맞닥뜨릴 때마다 분위기 깨는 한마디를 한다. 그게 세상까지 바꾸지는 못해도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되면 기어코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더라”
이 과정의 지난함을 아는 주변 지인들은 종종 안쓰러운 눈빛으로 요상한 말을 덕담처럼 남긴다. 그중 가장 마음이 어려운 건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더라” 같은 말이다. 활동을 하다가 지치고 소진된 이들을 자주 마주한 어른일수록 이런 말에 애정까지 담아서 하는 경우를 본다. 화가 나기보다는 씁쓸한 마음이 먼저 든다. 그동안 주변에 얼마나 많은 활동가가 소진되고 또 사라졌을까.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활동하다가 얼마나 많이 상처받았을까. 활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들 마음을 너무 잘 알겠어서 슬프다. 그래도 역시 이런 말이 달갑지는 않다. 운 좋게도 주변에 변하는 사람들을 꾸준히 보아왔다.
당장 나부터도 마찬가지다. 학창 시절 페미니즘이나 성평등에 관심 가져본 적 없다. 대학 때까지 성차별은 과거, 조선시대 때 이야기라 생각했고 여성가족부는 불필요하다고 믿었다. 군대에 가야 하는 현실이 눈물 나게 싫어서 미워할 대상을 찾기도 했다. 그러다 페미니즘을 접한 친구들을 만나서 여성이 처한 현실을 들을 수 있게 됐고, 내가 맞닥뜨린 어려움 역시 성차별이라는 문제의 연장선에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변한 사람들이 다 유별나게 똑똑하고 부지런한 것도 아니다. 어떤 이들은 그게 도움이 돼서, 또 어떤 이들은 애인 눈치가 보여서, 아니면 그냥 페미니즘 활동하는 친구의 모습이 신기해서 관심을 기울이다가 변화하게 됐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람은 변하고 세상 역시 마찬가지다. 주변에 이런 변화가 보이지 않아 막막해하는 친구가 있다면, 과거 TV 예능을 한 번 보라고 이야기한다. 불과 몇 년 전인데도 불구하고 지금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차별과 혐오가 만연하다. 그것이 저절로 사라졌을 리 없다.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분위기를 깨며 한마디를 남긴 어떤 페미니스트 덕분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오만한 개구리의 이야기인지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다 올챙이 때가 있었고, 누구도 페미니스트로 태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활동이 인정투쟁의 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기연민만 남은 비관에 잠식되지 않는 건 중요하다.
“올바른 일을 한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같은 책에 나온 사라 아메드의 이야기다. 그리고 동시에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불행이 뻔히 예상되는 길을 행복하게 가기, 결혼하지 않기, 자녀 없이 살기와 같이 행복할 일이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행복한 것 자체가 혁신일 수 있다. 그녀는 자녀가 없는 사람으로 불리지만 스스로를 자녀로부터 해방된 자라 부른다. 그녀는 애정을 부여하는 대상을 확장한다. 정동(情動) 소외자는 엉뚱한 것으로 행복해한다. 그녀의 행복은 이기적이고 어리석고 진실되지 않은 것으로 비쳐지고 진짜를 대체한 가짜로 보이며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삶을 지속한다.”
이 글에서 지독하게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낙관적인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본다. 그리고 험난한 시기를 살아가는 활동가들에게, 또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페미니스트에게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보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보다 지금 이런 말이 필요하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이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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