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안녕’ 쟈니 리 “전쟁 고아였던 소년, 미군이 선뜻 거둬줘”
쟈니 리(85·본명 이영길)는 큼직한 선글라스를 쓰고 약속 장소인 서울 종로의 라이브 바에 나타났다. 이곳에서 요즘도 노래를 한다고 했다. 1966년 ‘뜨거운 안녕’, ‘내일은 해가 뜬다’ 같은 히트곡을 발표한 지 60년이 돼 가는 지금도 여전한 가수의 풍모였다.
전쟁 고아였던 쟈니 리가 가수가 된 것은 미군과의 만남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1950~1960년대 미8군 무대에 섰던 가수들과는 다른 경로로 미군과 인연을 맺었다. 북한서 혼자 피난 온 그가 양아버지를 만나 성장하고 음악을 배운 곳이 미군부대였다.
만주에서 태어난 쟈니 리는 “평남 진남포 외가에서 지내던 열세살 때 6·25 전쟁이 터져서 혼자 부산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너라도 남쪽으로 가라”는 외할머니 말에 따라 미군 수송선에 몸을 실었다. 만주에 있던 부모와 그대로 이별이었다. 부산에선 피난민 수용소에도 있었고, ‘해피 마운틴(Happy Mountain)’이란 영어 이름으로 기억하는 ‘행복산 육아원’에서도 지냈다. 전쟁 고아들을 위해 미군이 설립한 곳이다.
“겨울에 고아원을 뛰쳐나와 부산역에 가니 미군들이 있었어요. 도넛하고 커피를 주는데 그걸 먹으니 어찌나 훈훈하던지. 그중 제 손을 끌고 제3부두로 데려가서 창고에서 지내게 해준 분이 제 양아버지예요. 나중엔 그분을 따라 ‘하야리아 부대(부산의 캠프 하이얼리어)’에 들어가서 생활했지요.” 그는 양아버지에 대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군수물자를 총괄하는 항만 책임자였다”고 했다.
그는 “양아버지는 덴마크계였고 ‘라스무센’이라는 이름만 기억난다”면서 “당시엔 누가 물으면 아버지 이름은 라스무센이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정식 입양 관계는 아니었지만 우연히 만난 미군이 아버지 같은 은인이었던 셈이다. 쟈니 리는 “양아버지는 내가 열일곱 살쯤 됐을 때 한국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취미로 피아노를 쳤던 양아버지는 저녁이면 부대 장교 클럽에서 연주를 했다. “그때마다 ‘쟈니, 컴 히어(쟈니, 이리 와)’ 하고 저를 불러요. 그러면 장교들 앞에서 ‘러브 이즈 어 매니 스플렌도어드 씽’, ‘플라이 투 더 문’ 같은 노래를 불렀죠. 쟈니라는 이름도 양아버지가 지어주신 거예요.”
무대 경험을 쌓은 그는 스무살 무렵에 악단 ‘쇼보트’를 만나 서울로 올라왔다. 이때 미8군 무대에 잠깐 섰지만 “활동한 기간은 한 달 정도”였다. “만날 트럭 타고 (공연을) 다니는 생활이 막막하게 느껴졌어요. 그보다는 음반을 내는 쪽이 미래가 밝다고 생각했지요.” 방문하는 부대에선 공연자들을 위해 샌드위치나 치즈케이크, 커피 같은 음식을 차려줬다. 당시로선 구경조차 힘들었던 음식들이었지만 미군부대에서 자란 그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었다고 한다.
영화 ‘청춘대학’(1966) 출연을 계기로 신세기레코드 전속 가수로 발탁돼 음반을 낼 수 있었다. “사장님이 전속 작곡가들에게 노래 한 곡씩 (내게) 주라고 했어요. 길옥윤 선생님이 ‘내일은 해가 뜬다’, 서영은(코미디언 서영춘의 형) 선생님이 ‘뜨거운 안녕’을 주셨죠.”
‘쟈니리 가요앨범’(1966)에 수록된 이 노래들은 쟈니 리를 대표하는 히트곡이 됐다. “‘뜨거운 안녕’을 녹음할 땐 헤어진 부모님 생각이 나서 많이 울었어요. 원곡을 들어보면 우는 목소리가 그대로 섞여 있을 거예요.” ‘내일은 해가 뜬다’는 박정희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됐다가 훗날 ‘사노라면’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유명해졌다.
이후 클럽 무대에서 주로 활동했던 쟈니 리는 식도암으로 음식도 물도 넘기지 못하다가 겨우 회복하기도 했다. 항암 치료와 수술을 받은 지 20년쯤 지난 지금 그는 “건강관리 비법이랄 건 없지만 많이 먹던 습관을 버리고 소식을 하게 되면서 몸이 가벼워졌다”고 했다. 여든 넘은 나이에도 방송에 출연해 여전한 가창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예전보다 목소리가 더 잘 나온다”면서 “노래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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