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천장 까지는 질긴 빵? 진짜 바게트는 ‘겉바속쫀’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3. 11. 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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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한국 최고 바게트 명장 뽑는
‘르빵 챔피언십 대회’ 가보니

프랑스제과제빵협회장 도미니크 앙락(Anract·60)씨는 더 이상 심각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바게트 빵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중이었다. 지난 1월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프랑스 제빵 대회’에서 우승한 쿠엔틴 들라주(Delage)와 피에르 소세스(Sauces) 셰프, 서울 ‘르꼬르동블루’에서 제빵을 가르치는 시릴 고댕(Gaudin) 교수, 주한 프랑스 대사관 경제상무관실 마티유 르포르(LeFort) 대표 등 다른 프랑스인 심사위원들도 진지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프랑스제과제빵협회장 도미니크 앙락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석파랑에서 열린 ‘르빵 바게트 챔피언십’ 결선에 올라온 바게트를 심사하면서 냄새를 확인하고 있다./르빵

◇프랑스 문화·생활 방식의 상징

지난달 30일 서울 세검정 석파랑. 국내 최고 바게트 빵 장인을 뽑는 ‘르빵 바게트 챔피언십’이 열렸다. 프랑스 식재료와 음식 트렌드를 소개하는 ‘푸드 익스피리언스’ 행사의 일부로 진행된 대회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심사를 위해 프랑스 제과제빵업계 종사자 18만 명의 대표이자 최근 세계제과제빵협회장으로도 선출된 앙락 회장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하며 길쭉한 모양에 황갈색빛이 도는 바게트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단순히 빵이 아니다. 자국 문화의 상징이자 삶의 일부다. 프랑스 정부는 하루 1600만 개, 연간 60억 개가 생산된다는 이 빵의 규격과 재료, 가격까지 법으로 정해 놓았다. ‘법정 바게트’가 있는 셈이다. 바게트는 대체로 길이 약 65cm, 무게 250g 내외, 표준 가격은 0.95유로(약 1360원)이다. 프랑스 정부는 ‘전통 바게트(baguette traditionelle)’는 밀가루·소금·물·효모 단 4가지 재료만으로 영업장 내에서 제조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2018년에는 바게트 제조법과 문화를 국가 무형문화재로 등록했고, 지난해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성공했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 출신인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바게트는 프랑스인의 일상적 의식이자, 식사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며, 나눔과 즐거움의 동의어”라며 “프랑스인의 생활 방식을 세계인이 함께 지켜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제대로 구운 바게트는 짙은 황갈색이면서 폭이 일정하며 쿠프(칼집)가 잘 벌어져 있다./르빵

앙락 회장은 “식당에서는 빈부 격차가 있지만, 빵집에서 바게트를 살 때는 누구나 평등하다”며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랑스의 이상을 고스란히 품은 빵”이라 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레스토랑 가이드 ‘블루리본’ 김은조 편집장은 “프랑스인에게 바게트는 한국인에게 쌀밥과 동등한 의미”라고 했다.

한국인이 과거에 끼니마다 밥을 지어 먹었듯이, 프랑스 사람들은 식사 때마다 갓 구운 바게트를 동네 빵집에서 사다 먹었다. 르빵 백종현 부장은 “국내에서도 하루 2~3번 바게트를 굽는 빵집이 늘고 있다”며 “바로 먹을 바게트라면 상온에 보관해야 맛있다”고 했다. “통째로 뒀다가 손으로 뜯어 먹으세요. 4시간 이내가 가장 맛있습니다. 오래 두고 먹으려면 잘라서 냉동했다가 자연 해동하세요. 냉장실은 절대 안 됩니다. 상온에 두는 것보다 빵이 빨리 마르면서 껍질이 질기고 딱딱해져요.”

◇제대로 구운 바게트는 ‘겉바속쫀’

이번 대회에는 서울 소재 빵집 33팀이 예선, 본선을 거쳐 3팀이 결선에 진출했다. 대회를 주관한 ‘르빵’ 빵집 임태언 대표는 “내년부터는 출전 자격을 전국 빵집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재료는 전통 바게트 제조 방식에 따라 밀가루·물·효모·소금 단 4가지로 제한했다. 팀마다 현장에서 오전 10시 반죽부터 시작해 오후 4시 바게트 4개를 구워 심사용으로 제출했다.

바게트 심사·평가에는 시각·청각·촉각·후각·미각 등 오감(五感)이 총동원됐다. 심사위원들은 우선 바게트의 외관을 관찰했다. 소세스 셰프는 “표면이 짙은 황갈색이면서 폭이 일정해야 한다. 미국 야구방망이처럼 이쪽은 굵고 저쪽은 얇으면 안 된다”며 웃었다.

앙락 회장은 손가락 끝으로 바게트를 살짝 잡았다. “단단한 느낌이 나면서 힘을 주면 ‘바삭’ 부서져야 합니다.” 들라주 셰프는 “쿠프(coupe·바게트 표면에 그은 칼집)가 잘 벌어져 있어야 하고 간격이 균일해야 한다”고 했다. “쿠프는 반죽을 성형한 뒤 오븐에 굽기 전 그어요. 쿠프가 잘 벌어졌다는 건 바게트가 제대로 구워졌다는 증거입니다.” 쉽게 말해 최고의 바게트는 ‘겉바속쫀(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식감)’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르빵 바게트 챔피언십' 결선에 올라온 바게트의 모양, 색, 냄새 등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르빵

심사용 바게트 4개 중 하나는 속살(크럼)이 드러나도록 길게 반으로 잘려 있었다. 고댕 교수는 “속살이 종잇장처럼 하얗지 않고 크림빛이라야 한다”고 했다. 속살에는 가스가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기공이 많아야 식빵처럼 무겁지 않고 바게트 고유의 가볍고 쫄깃한 맛이 난다. 기공의 크기가 들쭉날쭉하지 않고 비슷해야 반죽과 숙성, 굽기가 잘됐다는 증거다. 자른 바게트를 코에 갖다 대자 효모로 발효시킨 빵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기분 좋게 올라왔다.

이번 대회 우승은 서울 가로수길 ‘플라워베이커리’ 조원준 셰프가 차지했다. 2등은 옥수동 ‘항구도시연구소’ 정채은 셰프, 3등은 용산 ‘우스블랑’ 황정연 셰프. 앙락 회장은 “한국 제빵업이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했다”며 “1~3위에 오른 바게트 모두 당장 파리에서 팔아도 손색이 없다”고 했다. 올해로 9년째 빵을 굽고 있다는 조 셰프는 “바게트라고 하면 딱딱하고 무미한 빵으로 잘못 아는 손님이 많다”며 “잼·치즈·햄 등 어떤 부재료와도 잘 어울리는 무던한 빵이지만, 굳이 곁들이지 않고 먹어도 맛있는 바게트 본연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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