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27] 말과 대화
램프 속 지니가 나타나 말하기와 글쓰기 중 한 가지 능력을 준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것을 고를까. 대부분 말하기를 선택할 것이다. 말을 설득력 있게 잘하는 사람은 생각이 깊고 창의적이다. 내가 만나본 말 잘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고 곰곰이 답해본 후, 오래 그것을 성찰해온 점이다. 자신과 진솔하게 대화해 본 사람이 타인과도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다.
짝짓기 예능을 종종 본다. 인간 사회의 압축판이라는 이런 프로그램에는 유독 ‘말’이 넘치는데, 남녀 간 대화 양상을 관찰하며 커플로 성사될 만한 남녀를 예측하는 게 꽤 흥미롭다. 이들의 대화는 대개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얘기로 가득 차 있는데, 경험상 과거가 아닌 미래를 많이 이야기할수록 연인이나 부부가 되는 비율이 높았다. 이혼이나 파경을 앞둔 커플이 더 이상 미래를 나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살다 보면 말을 잘하는 사람도, 못하는 사람도 만난다. 그들 중에는 말만 잘하는 사람도 있고, 말도 잘하는 사람이 있다. 몇 년 전, 매스컴에 자주 나오는 유명인을 만난 적이 있다. 1분에 한 번 웃음이 터질 정도로 달변가였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대화 끝에 오는 피곤함을 참기 힘들었다. 그는 누구보다 말을 잘했지만 대화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나’였는데 테이블에 오르는 모든 주제를 ‘나’로 전환하는 습관 때문인지, 상대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김하나의 ‘말하기를 말하기’에 “대화가 잘 통하는 사이는 참 소중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침묵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구절이 있다. 침묵은 신뢰할 수 있는 친밀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독특한 대화 형식이다. 이런 침묵에는 ‘어색한’이란 형용사가 침범할 틈이 없다. 이때의 침묵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끝나는 곳에서 서서히 시작된다. 서로가 던진 말을 배드민턴의 셔틀콕처럼 부드러운 포물선으로 정확히 주고받는 것, 나는 그것이 최고의 대화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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