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위기에 강한 지도자” vs 트럼프 “내가 되면 전쟁 안 나” [글로벌 포커스]

윤다빈 기자 2023. 11. 4.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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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앞으로 다가온 美 대선… 주요 변수로 떠오른 중동전쟁
도널드 트럼프
“우리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고등교육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지만 우리 학생들을 공산주의자, 테러리스트로 만들고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1일(현지 시간)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77)은 최근 공개한 선거 정책 영상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전쟁을 계기로 대학 내 ‘PC(정치적 올바름)주의’와 반(反)유대주의 시위가 확산되는 것을 막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립대학 기부금에 과세를 해서 마련된 예산으로 ‘아메리칸 아카데미’라는 새로운 교육기관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이를 통해 누구든 무료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지만 사회정의 운동이나 이슬람 근본주의 관련 교육은 금지하겠다고 했다.

내년 11월 5일 치러지는 미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81)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상 첫 연속 맞대결을 펼칠 것이란 전망 속에 이번 중동전쟁을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려는 양측의 대결이 본격화되고 있다.

조 바이든
바이든 대통령은 ‘위기 대응에 노련하고, 책임감을 갖춘 준비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을 직접 방문한 것 외에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프란치스코 교황을 포함한 세계 각국 지도자와 각각 10차례 이상 통화하는 등 미국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있다. 행방불명된 미국인 가족들과도 원격 통화하는 등 최근 한 달간 중동전쟁 관련 행보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동전쟁 발발 직후 “약한 지도자 탓에 우리(미국)가 약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여겨지고 있다”며 바이든 전 대통령 탓을 했다.

● 중동전쟁 둘러싼 전략 대결 본격화

이번 중동전쟁은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양쪽 모두에게 위기이자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선 최대 걸림돌로 꼽히는 ‘고령 리스크’를 깨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통령 4년, 부통령 8년, 상원의원 36년 경력을 가진 유능한 대통령 이미지로 바꾸려는 것이다. 지난달 21일 여론조사기관 해리스폴이 발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8%가 이스라엘 전폭 지원을 약속한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했다. 민주당 전략가인 사이먼 로젠버그는 CNN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동전쟁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사람이 (백악관) 집무실에 들어가게 된 것은 국가에 축복이라는 주장을 강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의 친(親)이스라엘 행보는 민주당 전통 지지층이었던 아랍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달 31일 아랍아메리칸연구소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아랍계 지지율은 2020년 59%에서 17%로 급락했다. 아랍계 인구는 약 345만 명으로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남짓이지만 미시간, 조지아, 펜실베이니아 등 대선 경합주에서 아랍계 비중이 높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여기에 민주당 지지세가 높은 2030 청년층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반발이 이어지면서 전통적 지지층이 분열되는 양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동전쟁이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실책으로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달 25일 공화당 유대인 연합 행사에 참여해 “정말 약한 지도자 탓에 우리(미국)가 약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여겨지고 있다”면서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집권 시기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 있던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공식 이전하는 등 강력한 친이스라엘 정책을 폈던 그는 “아름다운 이스라엘에 해를 끼치려는 야만인들에게서 문명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동전쟁을 계기로 반(反)무슬림 정책을 노골화하고 있다. 그는 9일 뉴햄프셔주 유세에서 “나는 취임 첫날부터 이스라엘과 다시 굳건히 연대하고 테러리스트들 자금줄을 하루빨리 차단할 것”이라며 “테러위험 국가(국민)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를 다시 도입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발효됐다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철회된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 등 이슬람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부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불안한 언행은 위험 요인이다. 그는 중동전쟁 초기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무장단체인 헤즈볼라를 “매우 똑똑한 단체”라고 표현했다. 또 2020년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제거 작전에 초기 참여했다가 막판에 빠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향해 “공격 불참을 통보해놓고 나중에는 공을 챙기려 들었다”고 비판하는 발언으로 불안감을 사고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는 “나는 헤즈볼라를 칭찬하지 않을 것이다. 비극과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이스라엘 총리를 비판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 바이든 경제 성과 강조… 트럼프는 ‘문화전쟁’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경제정책인 ‘바이드노믹스(Bidenomics)’ 성과를 재선 캠페인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미국은 올 3분기(7∼9월)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4.9% 증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최대 입법 성과로 꼽고 있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법 시행에 따른 제조업 일자리 증가로 총 1200만 개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고 발표했다.

이는 차기 대선의 최대 승부처인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주 등 북동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를 적극 공략하겠다는 취지다. 이곳은 과거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했지만 최근 대선에서는 양당 모두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IRA와 반도체법으로 경제정책에 대해선 ‘트럼프보다 더 독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제조업 부활 공약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겠다면서 중국 등 외국산 제품에 고율의 수입 관세를 부과하는 등 철저한 보호주의 무역 정책을 강조한다. 국제 동맹과 해외 군사 개입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1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는 집권 2기를 준비하면서 공화당 주류 성향의 보수주의자들을 배제하고 보다 공격적인 성향의 우파 법률가를 중심으로 섀도캐비닛(예비 내각) 구성에 착수했다. NYT는 “이들은 더 급진적인 백악관 의제를 밀어붙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문화전쟁(culture war)’도 주도하고 있다. 집권 내내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편 그는 학교 교육과정에서도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강조하는 교사를 퇴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 고령·사법 리스크·제3지대 변수

재선에 도전하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모두 아직까지 뚜렷한 당내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경우 지난달 27일 딘 필립스 하원의원(54)이 출마 선언을 했지만 체급 차가 크다. 다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재출마에 반대하는 민주당 지지층이 꾸준히 50%를 넘는 점은 변수다. 바이든 대통령의 본선 승리 가능성이 낮아질수록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등 대안 후보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아들 헌터 바이든이 탈세 및 총기 불법소지 혐의로 재판 중인 점도 위험 요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가 지지한 마이크 존슨 의원이 지난달 25일 미 권력서열 3위인 하원의장에 선출되면서 당내 영향력을 재확인한 상태다. 한때 트럼프의 대항마로 꼽혔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고, 최근 세대교체론을 내세운 헤일리 전 유엔 대사가 당내 2위 주자로 떠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트럼프와 격차가 크다. 다만 성 추문 입막음, 2021년 1·6 의회 난입 사태 선동, 조지아주 대선 결과 뒤집기, 기밀문건 반출 의혹 등 4개 사건에서 91개 범죄 혐의로 기소된 만큼 ‘사법 리스크’가 변수로 꼽힌다.

제3지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6∼30일 퀴니피액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후보는 3자 가상 대결에서 22%의 지지를 받았다. 트럼프(39%), 바이든(33%)의 팽팽한 접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당한 수치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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