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I am 변화해요, 민생 Ok`… 조삼모사·지록위마가 풍년

한기호 2023. 11. 4.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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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청조 사건 국민이 순식간에 파헤친 동력은
성별부터…지록위마에 '속일 걸 속여라' 분노
혈세 먹고 감시받을 정치권력, 차악경쟁 그대로
조삼모사같은 "고맙고 미안"과 신사협정 기만극
黨政 회전문 꼼수, 민생마저 탑다운…태도 불변
국민의힘 김기현(가운데) 대표가 지난 10월15일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후 노선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 유상범·강민국 전 수석대변인, 이철규 전 사무총장, 박성민 전 전략기획부총장 등을 대동한 채 참석하고 있다. 김기현 지도부는 비상의총 전날 보선 참패를 책임진다는 취지로 임명직 주요당직자 8명을 사퇴시켰다.<연합뉴스 사진>
지난달 10월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사진>
지난 10월31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마치고 퇴장하던 중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사진>

"I am 신뢰예요". 역설적으로 가장 신뢰해선 안 될 사람들을 상징하는 격언(?)이자 유행어로 자리잡은 말이다.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42)씨가 "15세 연하 재벌 3세"라는 전청조씨를 "예비신랑"으로 맞아들인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2주도 안 돼서다. 최초 인터뷰 기사가 나온 날부터 각종 커뮤니티에선 전청조씨의 '중학교 동창' 등을 자처한 네티즌들이 곳곳에서 성별·출신·전과 의혹을 폭로했다. 전씨의 '여고생 시절' 방송인터뷰 캡처가 돌고, 언론에 사기죄 판결 기록과 범상치 않은 행적이 파헤쳐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존재도 불분명한 재벌가의 3세, 해외파 출신 흉내를 내느라 설익은 국·영문 혼용체를 남발한 카톡 대화는 아예 밈(meme)으로 자리잡았다.

사기극이 이처럼 일찍 발각된 데엔 많은 요인이 있을 것이다. '펜싱 여제' 남씨를 아끼는 국민 정서가 작용했을 수 있다. 한 유명인의 '사기 결혼' 피해 사례로부터 '학습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크게 작용한 건 '속일 수도 없는 것을 속이려는' 모습을 목도한 데서 온 분노 감정으로 보인다. 남씨를 향한 여론조차 곱지 않기 때문. 첫 기사에 공개된 커플 사진부터 '전씨를 예비신랑으로 불러도 될지'를 비롯해 수많은 의문을 파생시켰다. 저널리즘의 껍질을 썼지만 지록위마(指鹿爲馬)로, 성별 구분에 있어 '동물적 직감'을 부정하는 위화감을 부른 탓이다. 자녀를 둔 남씨의 재혼 결정이 '상대 성별을 정말 모른 채' 가능한 것이었는지 의심하는 반응이 팽배했다.

사기극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디어를 통한 거짓의 수명은 곳곳에서 줄고 있다. 누구든 나를 속이려는 상대에겐 반감이 들고 응징하고 싶기 마련이다. 나는 이미 낌새나 눈치를 챘는데 기만 시도를 계속하는 자를 보면 더욱 그렇다. 특히 온라인, 정보의 홍수 시대엔 개인을 넘어 집단지성으로 발현된다. 더욱 자주, 신속하게, 기민하게. 독립적 개인의 선택이 모인 결과이므로 보편성까지 뒷받침된다. 특정집단 이기주의나 부족한 정보, 혐오감정을 동력 삼은 소위 '떼법', '여론재판'과는 구분돼야 하겠다. 세간의 눈길을 끄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두려워해야 할 현상이다. 책임질 수 있는 언행을 하지 않으면 심판받게 된다. 사법처리만을 논하는 건 아니다.

국민이 자리를 만들어준 자리에서 혈세로 녹을 먹는 선출직 공직자들, 정당의 경우 '표'로 심판받는다. 누구보다 '전청조·남현희 사건'을 남일처럼 여겨선 안될 이들이다. 지금 이들은 서로에게 대국민 속임수를 쓴다며 손가락질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일 당 회의에서 윤석열 정부가 병사 생일케이크·축구화 등 복지 예산을 1800억원대 삭감했다면서 "국민들을 원숭이로 여기는 건 아니냐"며 '조삼모사'(朝三暮四)라고 규정했다. 검증해볼 틈도 없이, 국민은 졸지에 원숭이란 비유부터 들었다. 실제 정부가 공약한 병 월급 인상분을 되돌린 건 아니다. '병사 입장에서도 불요불급한 예산은 어떻게 할지'를 고민한 메시지는 안 보여 아쉽다.

오히려 이재명 대표는 그 이튿날(2일)부터 '경제성장률 3% 달성'을 내걸고 "'돈을 풀면 물가가 오르니 돈을 풀 수 없다'는 생각으론 경제 운영을 할 수가 없다"며 정부에 '돈 풀기'를 요구했다. "(정부가) 호황이든 불황이든 재정건전성에만 매달린다"며 '긴축·건전재정을 포기해야 민생이 산다'는 듯한 인식도 보였는데, IMF(국제통화기금) 측 진단과는 상반된다. 이 대표가 두번의 대선 출마에서 기본소득의 근거라며 사실상 '호텔 노쇼로 마을경제 활성화' 모델을 들거나, "독일에 유명한 세계적 메이커는 없다…조그마한 중소기업들이 강하다"고 했거나, 이른바 경제 책사가 '한국은행이 돈을 마구 찍어도 돈 없는 사람은 피해가 없다'는 지론을 편 게 떠오른다.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민주당이 압승했으니 비판에 힘은 실리겠지만, 돈 풀기론이 그 표심을 대변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오히려 조삼모사는 다른 사건에서 떠올랐다. 지난달 29일 핼러윈 압사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서 이 대표는 추도사 말미에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팽목항 세월호 분향소 방명록에 "너희들(숨진 단원고 학생들)의 혼이 천만 촛불이 됐다"며 "미안하다. 고맙다"고 쓴 것에서 어순만 다르다. 추도(追悼)란 건 '망자를 향한' 것이고, 고맙다는 '수혜자'의 언어다. 민주당은 한 언론에 '참석 또는 경청해줘서 고맙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는데, 집단지성이 판단할 것이다.

지난달 31일 국회에선 예산안 시정연설차 본청에 입장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민주당이 "국민을 두려워하라"는 집단 피켓시위로 맞이한 일도 있었다. '회의장 내 피켓 지참, 고성·야유 자제' 여야 합의에 홍익표 원내대표가 "우리가 일종의 신사협정을 제안했다"고 과시한 게 불과 일주일 전으로 '회의장 밖이기만 하면 된다'는 건 꼼수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 후, 정부에 민생경제를 우선하라면서도 내각총사퇴를 요구한 야당 대표부터 시작해 의원들에게까지 다가가 악수를 건넸다. 그런데 손을 뻗은 대통령에게 좌석에 앉은 채 눈도 안 마주치는 의원, 악수 당시 면전에서 "그만 두시라"고 말했다고 무용담(?)을 늘어놓는 의원까지 나왔다.

총선 '수도권 위기'의 실체를 확인한 국민의힘과 용산이 받는 평가는 훨씬 박하다. 지록위마와 조삼모사를 동시에 하는 탓이다. '여당 불신'의 다른 말같은 당정일체, 수직적 의사결정에 집착하다 강서 참패를 겪었지만 호박에 줄만 긋고 있다. '보좌실패'로 보든 '구조실패'로 보든 여당 지지층에서 선출직 지도부 책임론이 팽배한데 귀를 닫았다. 일견 임명직 주요당직자를 교체하고, 외부 명망가와 여성을 영입한 혁신위를 띄웠다. 하지만 사퇴한 '윤핵관 사무총장'이 총선 인재영입위원장으로 곧장 돌아오니 '회전문, 조삼모사…' 할 말이 많아진다. 혁신위는 밀실토론 뿐이다. 1·2호 혁신안은 당내 분쟁 당사자 일부의 정치공학적 판단이 '창구'만 바꿔 나온 느낌을 준다.

'김포 서울편입' 의제도, 울산에서만 시장·국회의원 5선을 한 김기현 대표가 김포에서 갑자기 던졌다. 거대담론으로 국면을 전환한 데다, 시기상 친윤(親尹)계 내에서 영남권 다선수도권 출마 압박을 키우고, 혁신위가 뒤를 받치는 시기와 맞물렸다. 이슈 초기이지만 찬·반 여론조사에서 국민은 의심의 눈초리부터 보냈다. 수사·감사 이슈에 여당이 얹혀가기만 하던 패턴에서 일부 변화했지만, 주체성 있는 여당으로 보이려면 국민 눈높이에 턱도 없다. 어떤 용어에서 착안하자면, 독수(毒樹)가 그대로면 어떤 열매를 따와도 독과(毒果)로 보이지 않을까. 열매 상품성이 떨어진 게 '포장지 색깔'(이념) 때문이었는지 '포장 방법'이었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앞서 '강서 참패' 직후 대통령실은 정치권의 '의대생 증원' 구호에 편승해 '전문직 혐오 정서'에 발을 담갔다가 뺐다. 이는 현역 의사들의 "필수의료 아닌 낙수의료"란 자조와 낙담만 부추겼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했지만 참모회의 전언이었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실에서 직접 청취한 현장의 절규"를 전했고 1일 타운홀미팅 식 비상경제민생회의도 주재했다. 하지만 소상공인의 하소연을 빌려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는 자극적인 전언을 내세우고 "카카오의 택시에 대한 횡포는 매우 부도덕하다", "은행의 독과점 행태는 정부가 그냥 방치해선 절대 안 된다"고 꾸짖었다. 대통령이 민생을 챙기는 건 당연하지만 자칫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비쳐질 수 있다.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총선을 앞둔 여야의 조삼모사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여든 야든 '들킨 줄 모르는 전청조같은' 만용을 거뒀으면 한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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