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프리즘] 의사 증원 ‘동상이몽’ 될까 우려
그동안 전문가나 주로 비수도권 의료현장에서 심각하게 제기돼 오던 국민생명과 직결되는 소위 필수의료의 부족을,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진료실 오픈런, 산부인과 폐원 등의 현상으로 온 국민이 심각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사회적 이슈이자 국가 의제로 이제야 떠오르게 됐다. 이러한 의사인력 양성정책이나 배치의 심각한 문제들은 긴 시간 동안 예견돼 오던 것이다. 국민생명 보호에 우선순위를 두고 정부가 정책을 구사해 왔지만, 의사인력의 양성과 배치를 위한 제도와 체계에 대해 지난 30년간 제대로 된 대응이나 혁신을 하지 못했다. 상급종합병원이 한국의 의료생태계를 공격적으로 장악하는 중에도, 동네 의원을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도, 병상조정정책과 의료생태계의 복원을 위한 유효한 정부정책은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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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밀한 핀셋 전략으로 증원 늘려
의료서비스·건강 불평등 끊어야
」
2000대 초 도입된 실손보험으로 인해 환자의 비용부담이 줄어 의료서비스 규모가 급증하고, 급여 보장성을 강화할수록 문턱이 낮아져서 서울로 환자가 몰릴 것이 예견되고 실제 이를 목도하면서도 비효율적인 의료전달체계는 손을 대지 못했다. 국비 지원으로 비수도권에 각종 권역센터와 전문질환센터를 설치한 이후에도 일부 센터는 사업비나 운영비를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아 수천억을 지원한 권역과 지역센터가 제 기능을 하도록 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기간 국민의 생명을 구한 일등공신인 공공병원들이 의사수급과 회복재원 조달을 못 하고 있다고 아우성을 질러도 살펴보는 관료가 없는 세태이고, 의료소송이 급증하고 배상판결이 10배 상승해 소아청소년과나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경악해 진료실을 닫을 때도 정책은 대응하지 못했다.
주야장천 단기적으로 약발 잘 받는 보험수가 정책으로만 의료서비스를 조정하는 정책 구사에 골몰했다. 그 결과 필수의료나 지역의료나 진료비는 급격하게 상승했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60%대에 답보한 상태에서 실손보험의 도입으로 비급여 시장만 키워 의사들이 개원 시장을 비급여서비스가 많은, 생명과는 관계없는 분야로 연쇄적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을 자초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만성질환에 의해 보험재정이 소진되어 가는 중에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이나 정책을 하나도 정리하지 못하고 10여년째 질질 끌고 있는 형국을 보노라면 한국에 ‘제대로 된 보건의료정책이라는 소는 누가 키우나’ 싶다.
또한 의사들은 지난 20년 동안 의사증원에 반대하면서, 대학과 개원의 간 또는 전문과별 수입의 극심한 불균형과 지역편중은 정책실패의 탓으로 비판해 왔다. 이제는 국민의 인식을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다. 의사증원은 극심한 의료서비스 불평등과 건강 불평등 심화의 고리를 끊는 공정한 정책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극심한 격차를 보이는 진료과별 수가를 개편해 밤잠 설치며 수술하고 환자 곁을 지키는 의사와 의료진들의 자존을 지키는 정책을 만들어야 국민의 화를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다.
동상이몽의 의사증원 정책을 각자가 주장해 누더기 의사증원이 된다면, 이로 인한 진료비 상승의 부담은 다시 국민에게 오롯이 전가될 수 있다. 국민생명을 위한 의사증원인지, 의사가 넘쳐나는 일부 지역과 대형 의료기관을 위한 의사증원인지, 돈벌이에 몰입하는 의사양성을 위한 정책인지를 감별해야 하는 긴박한 시간이 지나고 있다. 정밀한 핀셋 전략 없는 의사증원이 된다면, 마치 홍수가 나서 물이 넘치는데 생명유지를 위한 마실 물조차 없는 최악의 상황을 면할 길이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경수 영남대 산학연구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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