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 귀찮은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 (MD칼럼)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새로 배우기 시작한 곡 가사가 마음에 안 들어요.”
얼마 전 드럼을 배우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그 역시 북에디터로 나와 같은 텍스트형 인간이다. 통상 음악하는 사람을 멜로디형 인간과 리듬형 인간으로 나누지만 우리는 텍스트형 인간으로 가사가 중요하다. 그래서 그는 드럼이 리듬 악기이나 가사에 맞춰 리듬을 익힌다고 한다.
지인이 말한 곡을 나도 들어보곤, 우리는 가사가 취향에 맞지 않는다며 한참 불평을 했다.
“선생님께 얘기해서 곡을 바꿔요. 초보자에게 맞는 미디엄 템포의 다른 곡도 많을 텐데.”
“싫어요. 귀찮아요.”
그렇다. 귀찮다. 곡을 바꾸고 싶은 이유를, 굳이 자신과 성향이 다른 사람에게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아서다.
나이가 들수록 싫고 귀찮은 일이 많아진다. 어릴 때는 경험이 적은 만큼 싫고 귀찮은 일이 적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그와 똑같은 일을 이미 여러 차례 해 봤기 때문에, 해보기도 전에 지레짐작 싫고 귀찮다고 생각한다.
어디 그뿐이랴. 일하기도 싫고, 밥 해 먹기도 싫고, 아무튼 다 싫다. 내 한 몸 건사하기 위해 해야 하는 모든 것들이 귀찮고 싫지만, 해야 한다.
1인 출판사를 만들고 혼자 일하다 보니, 자잘한 일이 정말 많다. 책만 만들면 되는 게 아니다. 이것저것 하다 보면 정작 책 만들 시간이 없다. 하기 싫은 일은 될 수 있는 한 안 하고 살고 싶은데, 그런 삶은 저 멀리 아득하다.
세상에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이토록 많은데, 텍스트형 인간이 취미로 악기를 배우면서 가사가 마음에 안 드는 곡에 정을 붙이고 연습할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인은 나와 다른 사람이었다.
“큰일 났어요. 그 노래가 귀에 감기기 시작함….”
나태주 시인이 말한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가 바로 이런 것인가.
그러고 보면 나는 지인과 레슨 곡 선정 방법도 다르다. 그는 선생님이 정해준 곡을 배우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곡을 해왔다.
내가 좋아하는 곡 중 들었을 때 연주하기 쉬울 것 같은 노래를 직접 골랐다. 그러면 기타 선생님이 내가 칠 수 있게 코드와 주법을 알려주셨다.
사는 것도 피곤한데 취미에서까지 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곡만 연습했다.
문득 일이든 취미든 하고 싶은 것만 하려다 내가 놓쳐버린 게 꽤 많겠다 싶다. 일단 다음에 연주할 곡은 선생님께 골라달라고 해볼까.
|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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