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맞을 각오'가 낳은 사진
그는 2017년 일본 사진계에서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도몬켄상’을 외국인으로는 처음 수상했다. 동경공예대학교 사진과에 재학 중일 때는 학교에서 수여하는 ‘폭스 탈보트상’을 처음 수상한 1학년이었고, 졸업하기까지 세 차례나 전례 없는 수상을 한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이외에도 많은 수상 이력 속 ‘처음’들은 양승우가 사진가의 감각을 생래적으로 타고난 게 아닌가 짐작케 한다. 하지만 사진가로서 그의 오늘을 있게 한 진짜 ‘처음’은 이 한 장의 사진이다.
대학원 재학 시절, 신주쿠는 위험한 곳이니 가지 말라는 교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를 메고 자주 신주쿠에 나갔다. 네온이 켜지기 시작할 무렵 신주쿠에 도착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학교 수업이 끝나는 금요일 저녁에 가서 일요일 아침에 돌아오기까지 이틀 동안 홈리스들과 길바닥에 박스를 깔고 함께 자면서 사진을 찍었다.
배경은 신주쿠지만 우리 삶의 한 실질적 공간인 그곳에는 현대 사회라는 톱니바퀴에 적응치 못한 사람들, 자기 꿈을 찾고 성공하거나 꿈을 잃고 부서지고 망가지고 폐인이 된 사람들까지 숱한 인간 군상들이 미아처럼 모여 있었다.
그러한 신주쿠 거리의 일부로서 야쿠자들을 찍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다. 어느 날엔가는 길에서 만난 다섯 명의 야쿠자 무리에게 ‘맞을 각오를 하고’ 다가갔다. 사진공부 하는 학생인데 당신들을 찍고 싶다 말했다. 며칠 뒤 학교 암실에서 직접 인화한 흑백사진을 전해주자, 마음에 들었는지 “언제든 ‘양상’은 사무실에 와서 찍어도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하나의 문이 열렸다. 야쿠자가 양승우의 사진세계 속으로 들어왔고, 그의 초기작 ‘신주쿠 미아’ 시리즈의 일부가 되어 도몬켄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엄연히 존재하지만 누구도 감히 찍으려고 엄두 내지 못하는 현실의 내부로 오직 그만이 깊이 들어가, 인간군상의 내면을 편견 없이 담아내고 있다.’
사진 속 주인공들에게 말을 걸던 날로부터 어느덧 20여 년이 흘렀다. 오늘날 양승우는 이런 상찬을 듣는 사진가가 되어, 여전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다큐사진’으로 ‘분투’ 중이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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