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의 매일밤 12시]믿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첼시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유럽 축구에서 이적시장이 열릴 때마다, 항상 소환되는 이름이 있다.
이적시장 때마다 등장하는 역대 이적시장 '최악의 영입' 순위. 이 순위에서 항상 '최상위권'에 이름이 오르는 선수가 있다. 절대 뒤로 밀리지 않는다. '먹튀의 대명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안드리 세브첸코다.
그는 2000대를 풍미한 세계 최고의 공격수였다. 흠이 없는 '무결점 공격수'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탈리아 AC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리그 우승,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을 이끈 간판 공격수였다. 리그 득점왕, UCL 득점왕도 차지했다. 2004년 발롱도르의 주인공은 세브첸코였다.
이런 찬사와 환호도 AC밀란 유니폼을 입을 때까지였다. 2006년 첼시 유니폼으로 갈아입자, 거짓말처럼 추락했다. 역대 최악의 이적 상위권에 항상 드는 이적이 바로, 세브첸코의 2006년 첼시 이적이다.
세브첸코는 첼시의 절대 권력자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간절히 원했던 선수였다. 당시 첼시 역대 최고 이적료를 썼다. 이적료는 4400만 유로(619억원)였다.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첼시에 적응하지 못한 채 AC밀란으로 임대되는 굴욕도 맛봤다. 결국 2009년 방출됐다. 첼시에서 2시즌. 리그 48경기에 출전해 9골에 그쳤다. '무결점 스트라이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세브첸코는 첼시에서 왜 무너졌을까.
새로운 환경과 언어 등에 문제가 있었다. 잉글랜드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 나이는 29세. 30대를 앞둔 세브첸코의 몸은 예전같지 않았다. 세브첸코 추락의 결정적인 것은 부상이었다. 첼시 유니폼을 입고 있는 내내 부상에 시달렸다.
부상을 참고, 노력했지만, 많은 이들이 첼시에서 열심히 뛰지 않았다고 오해하고 있다. 세브첸코는 이를 바로 잡고 싶었다. 비록 좋은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첼시를 위해 최선을 뛰었다고 확신했다.
"첼시에서의 3년은 부상 문제로 지옥과 다름없었다. 첼시 이적 후 첫 프리시즌부터 무릎 부상에 시달렸다. 시즌 도중 스포츠 탈장도 있었다. 수술도 해야 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또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내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모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체력도 떨어졌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언론들이 나를 심하게 비난했지만, 나의 진짜 문제는 부상 여파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첼시에서 나는 과거 선수로서의 영광에 가려진 그림자일 뿐이었다."
[최용재의 매일밤 12시]는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축구 팬들을 위해 준비한 잔잔한 칼럼입니다. 머리 아프고, 복잡하고, 진지한 내용은 없습니다. 가볍거나, 웃기거나, 감동적이거나, 때로는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잡담까지, 자기 전 편안하게 시간 때울 수 있는 축구 이야기입니다. 매일밤 12시에 찾아갑니다.
[안드리 세브첸코.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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