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라면 사무관’ ‘빵 과장’ ‘배추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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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시되던 '공깃밥=1000원'의 법칙은 깨졌다.
만만하던 짜장면 한 그릇은 평균 7000원을 돌파했다.
삼겹살 1인분은 2만 원에 육박하고, 여기에 소주와 맥주를 섞어 한 잔 하면 3만 원이 넘어간다.
안 오른 게 없어 '○○인플레이션'에 어떤 품목을 넣어도 다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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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각 부처 차관이 소관 품목 물가 안정은 스스로 책임진다는 각오로 철저히 살피겠다고 밝혔다. 배추, 무 같은 신선식품부터 빵, 과자, 커피, 라면,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까지 서민 체감 물가와 직결되는 주요 품목에 대해선 담당자를 지정하기로 했다. 요즘 장차관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물가 현장으로 향한다. 2일에만 해도 해양수산부 차관과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마트로, 산업부 2차관은 주유소를 찾았다.
▷품목별 물가 담당 공무원은 2012년 1월 이명박 정부가 ‘물가관리 책임실명제’를 도입한 이후 11년 만에 부활하는 것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지구상에 20달러짜리 배추가 어디 있느냐”며 “물가가 올라가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을 못 봤다”고 질타했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52개 집중관리 생필품 리스트를 만들어 ‘MB물가’로 묶어 관리하기도 했다. 실명제 도입 이후 물가 상승이 주춤하긴 했는데, 전담 공무원 효과라기보단 실물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침체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물가안정은 역대 정부마다 최대 숙제였다. 1970∼1980년대에는 부처는 물론이고 관공서를 총동원해 단속반을 꾸려 물가 단속에 나섰다. 짜장면, 설렁탕부터 다방 커피 값, 이발비와 목욕비까지 타깃이 됐다. 1990년대 이후엔 직접적인 가격통제는 사라졌지만 물가인상으로 여론이 나빠지면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까지 동원한 정부의 으름장이 시작됐다. 현 정부 들어서도 부총리가 나서서 술값을 올리지 말라고, 라면 값은 왜 안 내리냐고 압박했다.
▷서민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코로나19 이후 좀처럼 잡히지 않는 물가에 세계 각국이 기업들을 압박해 가격 통제에 나서는 것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정부의 가격 통제가 단기적으론 통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억지로 누른 가격이 한꺼번에 튀어오를 수 있다. 가격이 오른 품목을 쫓아다니며 ‘두더지 잡기’ 식으로 단속하는 수준을 넘어 근본적인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라면 값이 잡히지 않는다고 ‘라면 사무관’만 닦달할 순 없지 않겠나.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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