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법무부 대표단이 韓 리걸테크 기업을 방문한 이유

김동진 2023. 11. 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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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김동진 기자] 사우디아라비아 법무부 대표단이 최근 국내 리걸테크 기업들을 차례로 방문해 인공지능 기반 법률서비스를 살피고, 자국으로의 도입 가능성을 검토했다. 사우디 대표단이 기업 방문을 먼저 요청할 정도로 협업 가능성을 적극 모색했다는 후문이다. 사우디 정부가 이처럼 리걸테크 내재화에 매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처=엔바토엘리먼츠

사우디 내부에서 일렁이는 변화의 물결

신속한 입국 절차, 중동 최대 승차 공유 서비스 카림(Careem)을 이용한 차량 호출, 히잡(Hijab)을 쓰지 않고 국영방송에 출연하는 여성 등등. 최근 사우디에 나타나고 있는 변화상이다. 매달 사우디를 방문하는 한 중동 전문 변호사는 최근 2~3년 사이 사우디에 나타난 변화상이 과거 수십 년 동안의 변화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사우디의 급격한 변화상에는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Mohammed bin Salman bin Abdulaziz Al Saud, 이하 무함마드) 왕세자 겸 총리의 개혁과 개방 의지가 담겼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왕세자는 정권을 잡은 후 공기업 개혁과 법제 정비를 비롯해 막대한 인프라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기존 폐쇄적인 정책을 탈피하고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 국가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달성하려는 목적이다.

석유 의존도가 높은 사우디 경제 구조를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서울시 약 43배 크기에 달하는 신도시를 건설하는 네옴시티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다. 사우디 정부는 네옴 시티 프로젝트에만 5000억 달러(약 660조원)를 쏟아부을 예정이다. 엄청난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사우디는 산업별 글로벌 기업과 협력을 타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법 제도와 행정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사업 환경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주도하는 네옴시티의 ‘옥사곤’의 모습 / 출처=네옴시티

사우디 여성들의 활발한 경제활동 참가도 중요한 변화상이다. 최근 사우디 정부는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 고용을 확대해 국민 소득을 증대하겠다는 국정 목표를 세웠다. 과거 전무했던 사우디 여성들의 활동이 사회 곳곳에서 급증하는 배경이다.

이처럼 사우디 정부는 사업 환경 개선과 더불어 폐쇄적인 정책을 걷어내려는 시도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같은 시도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선 사우디 사법 시스템과 재판 시스템의 투명성이 전제돼야 한다.

사업 환경 개선 및 사회 변화상 반영할 법령 정비 필수…리걸테크 기술 도입 추진의 배경

사우디는 이슬람의 법체계인 샤리아(Shariah)를 기반으로 삼는다. 샤리아의 가장 우선적인 법원은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Koran)이며, 코란에 언급되지 않거나 모호한 사안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하디스(Hadith)를 법원으로 삼는다. 이같은 종교법은 사우디 자국민을 규율하는 가족법과 형법에 여전히 반영되고 있지만,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를 단행하는 과정에서 변수가 발생했다. 국제 규범 준수를 중요시 여기는 외국기업에 추상성이 강한 샤리아법의 원칙을 고수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국제 규범 준수를 위한 성문법 체제 구축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현종 법무법인 지음-MEA 변호사(중동 전문 변호사)는 “최근 사우디 법령과 사법 시스템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과거에는 대부분 법령이 아랍어로만 표기돼 객관적인 법령 정보를 찾기 매우 어려웠지만, 이제는 법원과 경제부, 투자개발부 등 정부 부처들이 각 홈페이지를 통해 기초적인 관련 법령을 영문으로 제공하고 있다”며 “기존에는 사우디에서 사업이나 행정 관련 정보를 얻으려면, 정부 기관의 개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하거나 소수 영미계 로펌 또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를 통해야 했지만, 최근에는 공개 정보의 양도 늘었고 대부분 영문으로 제공된다. 현재 무함마드 정부는 글로벌 컨설팅과 회계법인, 로펌을 비롯한 전 세계 서비스 공급자들에 대규모 프로젝트로 발생하는 수요를 제공하고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돌려받고 있다. 이같은 과정을 지속해서 추진하기 위해 사우디 정부는 투명한 사법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분쟁이 발생해도 합리적이고 적법한 절차에 의해 재판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데 기술을 활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사우디 법무부 대표단 국내 기업 방문…韓 리걸테크 수준 살피고 협업 가능성 검토

사우디 정부는 판결 정보의 신속한 공유를 바탕으로 각 법원 내 판례의 모순충돌 방지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법률판례 정보시스템 구축과 같은 기술 활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요국의 리걸테크 기업을 차례로 방문해 협업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리걸테크 기업을 찾은 것도 같은 이유다.

사우디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은 기득권의 반발로 국내에서 사업 영위에 어려움을 겪은 바 있는 리걸테크 기업에게 큰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사우디 법무부 대표단이 국내 리걸테크 기업 방문을 먼저 요청할 정도로 적극성을 보이자, 관련 기업들은 사업 확장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강남 로앤컴퍼니 사옥을 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 법무부 대표단의 야세르 알수다이스 법무부 기획개발 차관보 겸 비전 실현 총괄과 김본환 로앤컴퍼니 대표(왼쪽부터) / 출처=로앤컴퍼니

압둘 살람 알 감디 사우디 판사위원회 위원장(가정법원장)과 야세르 알수다이스 법무부 기획개발 차관보, 법무부 해외 협력 담당관 등 사우디 법무부 대표단은 지난 9월, 변호사 광고 플랫폼 로톡을 개발한 로앤컴퍼니 사무실을 방문했다. 김본환 로앤컴퍼니 대표는 변호사 광고 플랫폼 ‘로톡’을 비롯해 약 330만 건의 판례 데이터 및 AI 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정보 검색 서비스 ‘빅케이스’ 등의 기술을 선보였다.

로앤컴퍼니 법률 정보 검색 서비스 ‘빅케이스’ 중 변호사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빅케이스 그래프 / 출처=로앤컴퍼니

로앤컴퍼니 관계자는 “사우디 법무부 대표단은 로앤컴퍼니가 자체 구축한 판례 데이터 처리 및 분석 기술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며 “특히 84만 건 이상의 1심 형사 판결문 데이터를 바탕으로 통계 분석 결과를 시각화해 보여주는 변호사향 서비스와 해당 서비스에 적용된 AI 모델, 통계의 정확성, 사우디 현지에서의 서비스 활용 가능성 등을 자세하게 문의했다”고 말했다.

사우디 법무부 대표단은 리걸테크 전문 기업 ‘인텔리콘연구소’도 방문했다. 인텔리콘연구소는 ▲지능형 법률정보 시스템 '유렉스(U-LEX)' ▲비대면 법률자문 시스템 '법률메카(Law-Meca)' ▲AI 계약서 자동분석기 '알파로(Alpha-Law)' ▲생성형 AI 기반 문서분석 솔루션 '도큐브레인(Docu-Brain)' ▲아시아 최초 법률GPT(LawGPT) 등의 리걸테크 기술을 사우디 법무부 대표단에 선보였다.

인텔리콘연구소가 개발한 법률GPT 활용 예시 / 출처=인텔리콘연구소

인텔리콘연구소 관계자는 “자국민들이 법률과 판례 등의 정보를 쉽고 빠르게 찾아 활용하도록 법률 인공지능 개발 전략을 수립 중인 사우디 법무부 대표단은 인텔리콘연구소의 법률판례 동시성 검색엔진과 내비게이션 시각화 기술 및 법률GPT에 대한 구체적인 개발 방법론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던졌다”고 전했다.

사우디 법무부 대표단은 국내 리걸테크 기업들을 두루 살핀 후 협업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영익 인텔리콘연구소 대표는 “사우디 법무부 관계자들이 먼저 방문을 요청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는 점에서 사우디의 법률 분야 혁신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사우디의 변화 방향과 한국 리걸테크 산업의 발전이 상호 유익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이번 방문을 통해 확인했다. 협업이 가능하게 된다면, 사업 범위를 국내에서 해외로 확장하는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다. 그간 구축한 법률 생성 AI 기술을 바탕으로 사우디 법률 혁신을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글 / IT동아 김동진 (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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