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KT 살려낸 '기적의 대호투', 3일 쉬고 6이닝 QS 투혼이라니... 2년 전 '쿠동원' 신화 재현했다! [창원 현장]

창원=양정웅 기자 2023. 11. 3.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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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 창원=양정웅 기자]
KT 쿠에바스가 3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23 KBO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투구를 준비하고 있다.
KT 쿠에바스가 3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23 KBO 플레이오프 4차전 종료 후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1차전 선발 등판 후 단 3일을 쉬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오히려 긴 휴식을 했을 때보다 훨씬 좋은 투구를 선보이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했다. KT 위즈의 에이스 윌리엄 쿠에바스(33) 얘기다.

쿠에바스는 3일 오후 6시 30분 시작한 NC 다이노스와 2023 신한은행 SOL KBO 플레이오프 4차전(5전3선승제)에서 KT의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이번 시리즈 2번째 선발 등판이었다. KT는 홈에서 열린 1, 2차전을 패배한 후, 3차전을 승리하며 기사회생한 상황이었다.

1회 말 첫 타자 손아섭을 상대한 쿠에바스는 체인지업으로 내야땅볼을 유도했지만, 3루수 황재균이 이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실책을 저질렀다. 흔들릴 수도 있었지만, 쿠에바스는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1차전에서 그에게 1회부터 2루타를 뽑아냈던 박민우를 4구 만에 3루수 뜬공으로 잡아낸 쿠에바스는 3번 박건우와도 풀카운트까지 가는 승부 끝에 유격수 플라이를 유도했다. 이어 제이슨 마틴마저 3구 삼진으로 처리하면서 쿠에바스는 1회를 실점 없이 넘겼다.

타선이 1회와 2회 4점을 내주며 득점 지원을 해준 후에도 쿠에바스의 투구는 변함이 없었다. 선두타자 권희동을 좌익수 플라이로 처리한 후 오영수에게도 2볼을 먼저 내줬지만 풀카운트까지 간 끝에 2루수 땅볼로 아웃을 잡아냈다. 1회와 마찬가지로 이닝 마지막 타자 서호철은 3구 삼진으로 물러났다.

KT 쿠에바스(오른쪽)가 3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23 KBO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3회 말 손아섭의 땅볼 타구 때 1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고 있다.
쿠에바스의 호투 행진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3회와 4회에는 경제적인 투구가 돋보였다. 3회 첫 타자 김형준을 2구 만에 아웃시킨 그는 김주원은 공 3개로 1루수 땅볼 처리했고, 손아섭마저 4구째 패스트볼로 내야 땅볼을 만들어냈다. 이어 4회에도 공 9개로 박민우(중견수 뜬공)-박건우(2루수 땅볼)-마틴(투수 땅볼)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을 모두 범타로 처리했다.

4회까지 KT 타선이 8점을 내주며 승기를 잡은 후에도 쿠에바스는 고삐를 풀 생각이 없었다. 5회 쿠에바스는 권희동을 3루 땅볼로 잡아낸 뒤 오영수와도 6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2루수 땅볼 아웃을 만들었다. 서호철은 초구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나면서 쿠에바스는 5이닝을 채우는 동시에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게 됐다.

KT 쿠에바스가 3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23 KBO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6회 말 손아섭에게 안타를 맞은 후 아쉬워하고 있다.
쿠에바스는 6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박세혁에게 시속 150km 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낸 쿠에바스는 김주원도 1루수 땅볼로 아웃시켰다. 타순이 2바퀴 도는 동안 안타를 하나도 맞지 않았던 그는, 경기 3번째 타석에 들어선 1번 손아섭에게 4구째 컷패스트볼을 던졌다가 중견수 앞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노히트가 깨진 쿠에바스는 격렬하게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이내 다시 냉정을 되찾은 쿠에바스는 플레이오프 1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 중이던 박민우를 유격수 땅볼로 잡아내면서 6회를 실점 없이 막아냈다.

6회까지 73구를 던진 쿠에바스였지만 KT는 7회 말 투수를 손동현으로 교체했다. 이날 쿠에바스는 6이닝 동안 20타자를 상대하면서 1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는 덤이었다.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150km로, 1차전(최고 154km)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등판 일정을 생각한다면 놀라운 호투가 아닐 수 없었다.

KT 쿠에바스가 3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23 KBO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데일리 MVP에 올랐다.
경기 후 이강철 KT 감독은 "쿠에바스가 좋은 볼을 던질 거라 생각했는데 에이스답게 잘 던졌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감독은 "1차전에는 너무 힘줘서 슬라이더 밀려들어갔다"면서 "(오늘은) 가볍게 던지면서 슬라이더 각이 훨씬 커지며 타자들을 스윙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쿠에바스는 경기 후 "야수들이 수비나 득점 지원도 좋았다. 1차전보다 훨씬 좋은 경기력 보여줘 너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투구 수가 다소 적었음에도 6회를 끝나고 내려간 것에 대해서는 "6회 끝나고 (이강철 감독이) '더 던질 수 있겠냐'고 의사 물어서 던지겠다고 했는데, 베테랑들이 '점수 차도 크고 무리할 필요 있겠냐'고 해서 이런 대화를 했다고 감독님께 전했다"고 밝혔다.
KT 쿠에바스(맨 왼쪽)가 지난달 30일 열린 2023 KBO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4회 초 마운드를 내려가고 있다.
사실 쿠에바스는 불과 3일 전 열린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선발투수로 나섰다. 당연한 선택이었다. 지난 6월 대체 외인으로 KT에 합류해 18경기에 선발 등판한 그는 12승 무패 평균자책점 2.60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총 114⅓이닝을 던지는 동안 95피안타(4피홈런) 24볼넷 100탈삼진 33실점(33자책)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 1.04, 피안타율 0.224를 기록했다. 퀄리티 스타트 투구는 14차례 성공. 쿠에바스는 1992년 오봉옥, 2002년 김현욱(이상 삼성)에 이어 KBO 역대 3번째로 승률 100%의 성적을 내며 KBO 승률상을 거머쥐었다. 패전 기록 없이 선발승으로만 KBO 승률상을 수상한 건 쿠에바스가 최초였다. 이 감독은 "쿠에바스는 우리 팀 에이스라 시즌 끝나고 난 뒤 1선발로 정해놓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쿠에바스는 실망스러운 투구를 선보였다. 선두타자 손아섭에게 우중간 안타를 맞은 후 다음 타자 박민우에게도 좌중간 2루타를 맞으며 순식간에 2, 3루 실점 위기에 놓였다. 이어 1사 후 제이슨 마틴의 희생플라이가 나오면서 쿠에버스는 선취점을 헌납했다. 이어 2회 초에는 이닝 선두타자 오영수에게 시속 149km 높은 패스트볼을 공략당하며 좌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비거리 120m의 솔로홈런을 허용했다.
3회에는 첫 타자 박민우의 뜬공을 황재균이 처리하지 못하고 실책을 저질렀고, 박건우의 2루타와 권희동의 우전 적시타로 스코어는 4-0이 됐다. 쿠에바스는 4회 김형준의 볼넷에 이어 김주원의 번트 때 2루로 송구 실책을 저질렀고, 폭투까지 나오며 2, 3루 위기를 맞이했다. 여기서 손아섭이 1타점 적시타를 때리면서 결국 쿠에바스는 마운드를 내려갔다. 뒤이어 올라온 투수들이 쿠에바스의 주자들을 모두 불러들이며 실점은 7점으로 늘어났다.

KT 쿠에바스가 지난달 30일 열린 2023 KBO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4회 김주원의 번트 타구에 송구 실책을 저지른 뒤 아쉬워하고 있다.
이날 쿠에바스는 3이닝 동안 75구를 던지면서 6피안타 2볼넷 2탈삼진 7실점(4자책)을 기록했다. 타순이 두 바퀴를 돈 뒤 빠르게 강판되고 말았다. 1차전 종료 후 이 감독은 "쿠에바스가 1회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 아쉽더라. 좀 잘 던지려다가 (그렇게 됐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렇다곤 해도 생각보다 빨리 마운드를 내려갔다. 하지만 이 감독은 이미 1차전 쿠에바스 강판 후 4차전에 투입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3차전 종료 후 이 감독은 "고민하지 않고 1차전이 끝난 뒤 당시 투구수가 적당해서 4차전을 준비하라고 이미 말을 해놨다. 당시 투구수를 봐서 빨리 교체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2차전에서 진다고 생각을 안 해서 쿠에바스를 그때부터 준비시켰다"는 말도 이어갔다. 1승 1패로 창원에 내려간다면 4차전이 열리기 때문에 쿠에바스가 나올 수 있지만, 2차전을 패배하면서 자칫 시리즈가 3차전에서 끝났다면 쿠에바스의 등판도 무산되기 때문이다. 결국 쿠에바스는 3일 휴식 후 마운드에 올랐고, 기대 이상의 투구를 선보이며 팀을 벼랑 끝에서 살려냈다.

쿠에바스는 2019년 KT에 처음 입단한 이후 통산 포스트시즌 3경기에서 2승 무패 평균자책점 2.20으로 펄펄 날았다. 2020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8회 구원 등판해 ⅔이닝 2실점으로 무너졌지만, 2일을 쉰 뒤 3차전에 선발 등판해서는 8이닝 1실점으로 쾌투를 펼쳤다. 이어 2021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7⅔이닝 7피안타 8탈삼진 1실점을 거두며 승리투수가 됐다. 큰 경기에서 엄청난 이닝 소화력을 보여준 것이다.

KT 쿠에바스가 지난 2021년 삼성과 1위 결정전에서 7회를 무실점으로 마친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며 포효하고 있다.
또한 쿠에바스는 2년 전 사상 초유의 1위 타이브레이커 당시에도 투혼을 발휘해 팀을 구해냈다. 당시 KT는 144경기에서 76승 59패 9무(승률 0.563)를 기록하며 삼성 라이온즈와 똑같은 성적을 기록했다. 결국 그해 10월 30일 KT는 삼성과 타이브레이커 게임을 치렀다. 이때 쿠에바스는 이틀 전 7이닝 108구를 던진 뒤 마운드에 오르는 철인과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당시 7이닝 99구 1피안타 3볼넷 8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친 그는 팀의 첫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마치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당시 롯데)의 4승 신화를 보는 듯하다고 하여 '쿠동원'(쿠에바스+최동원)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쿠에바스는 4차전 등판 후 '짧게 휴식한 후 긴박한 상황에 잘 던지는 것 같다'는 질문에 "그런 건 모르겠다"고 웃었다. "잠자기 전에 신에게 '경기 잘 도와줘서 고맙다'고 해야겠다"고 말한 그는 "다음에는 더 많은 휴식을 가지고 던졌으면 좋겠다"는 농담 섞인 바람을 드러냈다.

KT 쿠에바스가 3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23 KBO 플레이오프 4차전 승리 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창원=양정웅 기자 orionbear@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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