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없이 먹고, 입고, 말하던 것을 ‘의심하기’…이것은 전복이 아니라 ‘복귀’다[김소연의 논픽션 권하기]
나는 동물
홍은전 지음
봄날의책 | 264쪽 | 1만3000원
어릴 적 작은 개 한 마리가 우연히 우리집 식구가 된 경험이 있다. 그는 현저히 작았고 현저히 명랑해서 온 식구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나는 그의 눈동자와 안면근육과 온몸의 미묘한 움직임을 통해 그의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그도 내 마음을 다 아는 것같이 내 곁에 있었다. 학교에서 속상한 일을 겪고 귀가했을 때에 나의 상처와 주눅을 가장 먼저 눈치채고 곁에 와준 식구는 작은 개였다. 그는 우리 식구 중 가장 탁월하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잘 알고 행동했다. 그는 우리 식구 중 가장 깨끗하고 빠르게 가족 구성원의 실수와 잘못을 용서할 줄 아는 아량이 있었다. 여러모로 나보다 나은 성품을 지녔다고 느꼈다. 장래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어른들로부터 받을 때마다 나는 “개가 되고 싶어요” 하고 말했다. 나의 진심은 잘 전달되지 않았다. 그저 엉뚱한 농담이나 지껄이는 아이 취급을 받았다. 까맣게 잊고 지내다 어느 매체에서 홍은전의 동물에 대한 짧은 글을 읽었고, 망각해온 소중한 경험을 온전히 되살려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글이 더 확장된 한 권 책이 되어 나에게 왔다.
한 권 책으로 인간이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있다고 기대하는 편이다. 세포 하나라도 다시 태어나게 하고 싶어서 끝도 없이 책을 읽고 책을 읽는다. 어떤 책은 나를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 어떤 책은 또 나를 어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 또 어떤 경우는 나를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홍은전의 <나는 동물>은 나를 동물로 다시 태어나고 싶게 한 책이다. 동물로 태어나고 싶어해왔던 나에게 스스로가 동물이라고 말할 수 있게끔 여러 방법과 시각들을 촘촘하게 알려준 책이었다.
다시 태어날 때마다 변태동물처럼 벗어버린 허물을 바라본다. 새 몸으로 이 세계에 발을 들인다. 느닷없이 한 권 책으로 그렇게 되었다기보다 오래 우물쭈물하고 차일피일하며 막연하게만 기다려온 세계 안쪽으로 한 발 한 발 발을 들이는 방식이다. 이 현상을 홍은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이라는 필터를 끼운 렌즈를 통해 보던 세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 다르게 보인다고. 햄버거 패티 한 장을 바라볼 때에도 “어떤 렌즈를 통해 보느냐에 따라 문제는 완전히 달라진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음식’이고 동물의 눈으로 보면 ‘폭력’이다”라고.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육식 생활에 대하여 “우리는 왜 한편에선 동물을 보호하고 한편에선 동물을 학살하는가.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입는가”.
홍은전은 이렇게 우리의 사고를 ‘원래대로’ 전복시켜 놓는다. 의심 없이 먹고, 입고, 말하고, 삶을 꾸려온 우리의 생각을 뒤집어놓는다. 그래서 한 번 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헤아려보게 된다. 전복이란 뒤집어놓는 것이 아니라 원래대로 되돌려놓으려는 것임을 알게 된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향기, 은영, 섬나리 지음·호밀밭)에 등장하는 은영의 일화를 인용해보자면 이러하다. 그는 도살장에 가서 충격을 받는다. 조만간 도축될 것임이 자명한 돼지들의 피부에 새겨진 낙인이나 상처 같은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이 참혹해서가 아니라, 일정 정도 그것에 대하여 무감각한 느낌을 받은 자기 자신에게 충격을 받는다. “나의 인간 중심성이 고발당하는 느낌이었다”고 언급한다. <동물 홀로코스트>(찰스 패터슨 지음·휴(休))를 인용하여 공장식 축산업이 어떻게 도입되고 발전되었는가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이러하다. “미국과 독일은 금세기 대학살에 독특한 기여를 했다. 미국은 도살장을, 나치 독일은 가스실을 제공한 것이다. 수많은 동물이 네 발로 끌려간 길로 두 발의 인간들도 끌려갔다. 아우슈비츠는 실로 거대한 도살장이었다. 다만 돼지를 죽이는 대신 돼지라고 규정된 사람들을 죽였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책을 읽으면서 사실 내가 정말로 궁금했던 건 도살장 내부가 아니라 40여년 동안 이 엄청난 학살을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내 머릿속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이렇게 덧붙인다.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었다. 그 역사에 동물이 포함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이미 인용을 너무 많이 했지만, 홍은전의 문장이 좋아서 한 번만 더 인용해본다. <짐을 끄는 짐승들>(수나우라 테일러 지음·오월의봄)의 저자를 언급하는 대목이다. “그는 나에게 언어를 주었다 빼앗길 반복하고 나는 언어를 쌓았다 무너뜨리길 반복했다.” 이 문장의 뒤를 이렇게도 이어갈 수 있다. 우리가 독서를 하면서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경험을 하는 순간에 대하여. 언어를 받았다가 빼앗기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라고. 쌓았다가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그 과정을 나는 변태동물의 허물벗기에 비유한다. 그리고 조금씩 부분적으로 새로 태어난다. 이미 새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마저도 새로 태어난 이후에야 알게 된다. 자신의 삶에 찾아온 각성의 순간들이 낱낱이 맥락화된 논픽션을 만났을 때에 유독 그러하다. 에세이는 유독 저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노출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이 누군가의 삶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을, 독서라는 방식으로 이렇게 쉽게 얻어가도 되나 싶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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