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유어 에너미?…‘퀴어 마이 프렌즈’ 돌연 상영 취소

류석우 기자 2023. 11. 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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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큐레이터]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의 한 장면. 영화사 그램 제공

다큐멘터리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가 독립영화 공공상영회 ‘인디서울 2023’을 통해 서울 시내 곳곳에서 상영되는 와중에 돌연 도서관 세 곳에서 영화 상영을 취소하는 일이 일어났다.

서울영상위원회와 <퀴어 마이 프렌즈> 제작진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2023년 10월 영화 상영이 예정됐던 서초구립반포도서관과 서초구립양재도서관, 송파도서관은 돌연 상영을 취소하겠다는 결정을 서울영상위원회 쪽에 통보했다. 이들 도서관에선 각각 10월11일과 21일, 19일 상영이 예정됐지만 실제 상영하지 않았다.

독립영화 공공상영회는 시민들에게 다양한 영상문화를 소개하고 독립영화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사업이다. 독립영화 상영관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들의 접근성도 높이자는 취지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영상위원회에서 주관하는데, 서울 시내 자치구 공공문화 시설 중 영화관람 환경이 우수한 곳을 선정해 공공상영관으로 활용한다.

상영을 앞두고 이렇게 갑자기 취소 결정이 된 것은 이례적이다. 서울영상위원회 관계자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이를테면 특정 작품이 기관 성격과 맞지 않는다거나 부담스럽다고 해서 상영 스케줄을 확정하기 전에 변경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며 “다만 이렇게 모든 일정이 확정되고 홍보까지 된 상태에서 취소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퀴어 마이 프렌즈>가 돌연 상영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제작진은 상영 취소가 결정된 뒤 낸 성명문에서 “상영이 취소된 사유가 ‘특정 단체의 민원’이 상위 행정관청을 통해 도서관에 전달됐기 때문이었다는 사정을 사후에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도서관이 편향된 민원을 받아들여 일방적으로 취소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서울영상위원회 쪽은 10월 상영 일정을 정하고 진행하던 중 상영 직전 세 도서관에서 취소 의사를 밝혀왔다고 했다. 서울영상위원회 관계자는 “취소 사유에 관해 물었는데 도서관 자체 판단이라고만 들었다”며 “저희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도서관에서 취소하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 같이 협력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한쪽에서 부득이 취소해야겠다고 하면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세 도서관은 상영 취소 이유에 관해 각기 다른 이유를 댔다. 반포도서관 관계자는 “작년(2022년 11월23일)에 상영했기 때문에 서울영상위원회와 협의를 통해 취소했다”며 “사업 취지가 다양한 독립영화를 만날 수 있도록 상영 기회를 제공하는 것인데, 특별한 사유 없이 동일 작품의 재차 상영은 지양한다”고 밝혔다. 애초에 2023년 상영 일정을 안 잡았으면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기존 담당자가 퇴사해서 (2022년) 상영이 됐다는 것을 늦게 인지했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양재도서관 쪽은 “상영이 예정된 주에 다른 전시가 있었다”며 “그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송파도서관은 민원이 아닌 ‘건의’가 있었다고 했다. 송파도서관 관계자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 ‘이거 괜찮은 거냐’라고 말씀하신 분이 몇 있었다. 처음엔 그냥 들었는데 여러 사람이 말씀해서 내부에서 고민했다”며 “이 영화가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라고 보기는 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저희는 이용자들이 이야기하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영상문화를 소개하기 위한 취지의 독립영화 공공상영회의 상영작으로 선정된 영화가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취소된 셈이다. 제작진은 모든 결정이 이뤄진 뒤에야 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서아현 감독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상영이 어떻게 취소됐는지 정확히 전달받지 못했다”며 “심의 규정도 모두 준수했고 일반 극장 개봉까지 다 마친 상황에서 도대체 어떤 민원 때문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민원이 있다고 공공기관에서 취소하는 게 당연한 일은 아니잖아요. 영화 제목에 ‘퀴어'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다른 영화제에서도 민원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상영이 취소되진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유독 취소가 갑작스럽게 결정된 게 문제 있다고 느껴져요.”(서아현 감독)

이번 상영 취소 사태는 명백한 공공영역의 차별과 혐오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퀴어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이번 상영 취소 건은) 중대한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라며 “이와 같은 공공영역의 차별·혐오를 좌시한다면, 앞으로도 정부나 공공기관 등에서 ‘퀴어’의 자리는 점점 좁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 감독은 “민원을 통해 퀴어 콘텐츠를 검열하려는 시도가 저희 영화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번처럼 민원을 통해 취소되는 선례가 남게 되면 향후 다른 도서나 영화들도 같은 피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대하는 민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소리도 있다는 것을 공공기관에 전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작진은 10월29일까지 1281명과 60여 개 단체로부터 연대서명을 받았다. 이를 곧 서울상영위원회와 상영을 취소한 도서관에 전달하고 상영 재개를 요청할 계획이다. <퀴어 마이 프렌즈>는 주인공 ‘강원’의 커밍아웃 이후 삶을 그의 친구이자 기독교 여성인 ‘아현’의 시선에서 담아낸 영화다. 영화는 11월9일 에큐메니컬 영화제와 11월17일 인천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뉴스 큐레이터: <한겨레21> 기자들이 이주의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뉴스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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