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삼킨 ‘비닐하우스 집’…이른 겨울 맞은 판자촌
서울 서초구 남태령 ‘전원마을’ 화재로 3가구 불타고 1명 사망
건조한 겨울 화재 위험 커져…주민들 “관리·사후대책 등 없어”
불길이 일대를 할퀸 지 사흘이 흘렀으나 탄내는 여전히 진동했다.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고개 일대에 자리한 전원마을 초입에서 샛길을 따라 들어가자 잿더미로 변해버린 비닐하우스촌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집에서는 지난달 31일 화재가 발생해 거주하던 80세 임모씨가 숨졌다.
“어휴, 여기 좀 봐, 여기도 탔네. 냄비도 아주 까맣게 타버렸네.” 공원 의자에 앉아 있던 마을 자치회장 이순자씨(78)가 마을 곳곳에 남은 화재 흔적을 가리키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전선도 이리저리 꼬여 있어서 합선돼 불이 날 위험이 크다”면서 “위험한 점이 많은데 구청에서는 관리를 잘 안 해준다”고 말했다. 불이 난 당일 페인트통에 물을 담아 달려갔다는 주민 A씨(61)는 “30년 넘게 여기 살았는데 큰불이 난 것만 6~7번 봤다”고 했다.
사망한 임씨가 살던 집은 타버린 비닐하우스 3가구 중 불길이 처음 시작된 곳이었다. 자치회장 이씨는 “(고인이) 원래 경기도 쪽에 살다가 나이가 들고 일거리도 없어지면서 여기로 오게 됐다”면서 “몸이 아파 하루에 두세 번씩 혈액 투석을 했다”고 말했다.
이 비닐하우스촌은 1980년대 조성됐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이 재개발되면서 갈 곳을 잃은 이들이 곳곳에 둥지를 틀었다. 현재 약 60가구가 이곳에 산다. 서울에는 전원마을뿐 아니라 강남구 구룡마을, 송파구 화훼마을, 노원구 백사마을, 성북구 북정마을 등 크고 작은 판자촌이 곳곳에 남아 있다.
건조한 계절이 되면 판자촌 주민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진다. 이날 ‘강남 한복판 판자촌’이라 불리는 구룡마을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전원마을 화재 소식을 알고 있었다. 구룡마을에서도 지난 1월 큰불이 났다. 전원마을처럼 이곳저곳 전선이 뭉쳐 있었고, 집과 집 사이 좁은 골목에 LPG 가스통도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화재로 집을 잃고 1년 가까이 천막에서 지낸다는 이모씨(67)는 “안 겪었을 때는 몰랐는데 내가 겪어보고 아니까 (다른 판자촌 화재 소식을 들으면) 더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판자촌 주민들은 다가오는 겨울이 더 걱정이라고 했다. 겨울철에는 불이 잘 붙고, 한번 집이 타버리면 추운 날 갈 곳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구룡마을 자치회장 유귀범씨(74)는 “홍수 나고 화재 나면 장관들 오고 국회의원 오고 총리가 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걸로 끝”이라고 말했다. 4지구 주민 B씨(65)는 “무허가촌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무서운 마음으로 산다”며 “그래도 사는 데까지는 안 죽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강은·배시은·김경민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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