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의 이 남자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엘리미네이션 경기에 등판하면 믿을 수 없는 괴력을 발휘하는 윌리엄 쿠에바스. 그의 이런 면을 믿고 KT 이강철 감독이 ‘승부수’를 던진 게 분명하다. 이제 분위기는 KT로 넘어왔다. 설령 5차전 NC 선발이 정규리그에서 다승(20승)과 평균자책점(2.00), 탈삼진(209개)를 모두 휩쓴 ‘트리플 크라운’의 에릭 페디라 하더라도.
KT는 3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23 KBO리그 플레이오프(5전3승제)에서 선발 쿠에바스의 완벽투와 타선의 폭발을 앞세워 11-2 완승을 거뒀다. 홈인 수원에서 열린 1,2차전에서 내리 패하며 벼랑 끝에 몰렸던 KT는 원정 창원에서 3,4차전을 모두 잡으며 기어코 승부를 수원에서 열리는 5차전으로 끌고 갔다. 5전3승제로 열린 32번의 플레이오프에서 2연패로 시작한 17개 팀 중 내리 3연승을 거두는 리버스 스윕을 달성한 팀은 1996년 현대와 2009년 SK까지 단 두팀에 불과하다. KT가 세 번째 역사에 도전한다.
이날 경기는 시리즈 전체를 넓게 본 KT 이강철 감독의 용병술이 지배한 경기였다. 쿠에바스는 지난달 30일 열린 1차전에서 3이닝 7실점(4자책)으로 부진했다. 당시 투구수가 75구밖에 되지 않았던 쿠에바스를 일찍 내린 이 감독은 1차전 패배 후 쿠에바스를 불러 4차전 선발 등판 준비를 지시했다. 75구에서 쿠에바스를 내린 것 자체가 쿠에바스의 사흘 휴식 등판을 준비하기 위한 포석이었던 셈이다.
75구를 던진 후 사흘 휴식 후의 선발 등판. 평범한 투수들에겐 다소 무리인 일정일 수 있지만, 쿠에바스는 짧은 휴식 후 등판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투수다. 오히려 강한 그의 승부욕을 더 자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쿠에바스는 2021년 KT와 삼성의 정규리그 승률이 같아 1위팀을 가리는 ‘타이 브레이크’에서도 투혼을 발휘한 바 있다. 이전 등판에서 108구를 던진 쿠에바스는 이틀만 쉬고 타이 브레이크 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동안 99구를 던지며 1피안타 8탈삼진 무실점 역투로 KT의 승리를 이끈 바 있다. 지면 모든 것을 잃는 ‘엘리미네이션 경기’만 되면 쿠에바스 특유의 괴력이 발휘된다.
이 감독이 쿠에바스에게 4차전 등판을 지시할 때만 해도 4차전이 엘리미네이션 경기가 될 것이라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2차전까지 내주면서 엘리미네이션 경기가 되어버렸다. 1차전에서 NC 타자들에게 난타당한 쿠에바스로선 4차전 선발 등판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킴과 동시에 플레이오프 승부를 5차전까지 끌고 갈 수 있는 기회였다.
쿠에바스는 1회 첫 타자인 손아섭을 3루 땅볼로 유도했으나 황재균의 포구 실책으로 출루를 허용하고 말았다. 자칫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쿠에바스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6회 2사 손아섭에게 중전안타를 맞기 전까지 17타자를 연속으로 범타 처리했다. 6회 2사에서 노히트 행진이 깨진 쿠에바스는 박민우를 유격수 땅볼로 잡고 6이닝 무실점 완벽투를 완성했다. 탈삼진은 단 3개에 불과했지만, NC 타자들이 제대로 맞힌 타구가 드물 정도로 그야말로 NC 타선을 꽁꽁 틀어막았다. 투구수는 단 73구에 불과했다. 이닝당 12개꼴로 투구수 배분도 완벽했다. 사흘 휴식 이후의 등판에도 불구하고 완벽투로 팀을 탈락 위기에서 건져낸 쿠에바스는 데일리 MVP에 선정됐다.
3차전까지 다소 잠잠했던 KT 타선도 1회부터 폭발하며 쿠에바스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1회 선두타자 김상수가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한 뒤 2루 도루, 포수 김형준의 송구 실책으로 무사 3루의 기회를 잡았다. 황재균이 투수 땅볼로 물러났지만, 알포드의 볼넷으로 만든 1사 1,3루에서 3차전까지 잠잠하던 4번 박병호가 적시타를 때려내며 선취점을 안겨줬다. 이어 장성우도 희생플라이를 때려내며 2-0으로 앞서나갔다.
1회 2득점으로 상대 선발 송명기를 흔든 KT는 2회 송명기를 더 공략하며 그를 마운드에서 내렸다. 박경수 대신 2루수로 선발 출전한 오윤석과 플레이오프에서 KT 타선의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는 배정대의 연속 안타, 조용호의 희생번트로 잡은 1사 2,3루 기회를 만들자 NC 강인권 감독은 송명기를 내리고 이재학을 투입했다. 그러나 이재학은 폭투로 3루 주자 오윤석에게 홈을 허용했고, 김상수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황재균에게 적시 2루타를 맞고 송명기의 책임 주자를 모두 홈을 밟게 했다.
KT는 3회와 4회에도 각각 2점을 올리며 8-0을 만들어 일찌감치 이날 승부를 결정지었다. 3회 1사 2,3루에선 배정대의 2타점 좌중간 적시타가 터져나왔고, 4회엔 황재균과 장성우가 솔로포를 터뜨리며 이재학을 마운드에서 끌어내렸다.
5회와 6회를 잠시 쉬어간 KT는 7회 1사 후 김민혁의 볼넷과 오윤석의 안타, 배정대의 볼넷으로 만든 만루 기회에서 조용호의 희생플라이와 김상수의 적시타로 2점을 더 내며 10-0을 만들어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8회엔 시리즈 내내 부진했던 알포드가 솔로포를 터뜨렸다. 3B-0S에서 나온 자신 있는 타격이었다. 알포드까지 살아난 것은 KT에겐 더할 나위없는 호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