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없는 앉을 권리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
‘의자 제공’ 규정 있지만
이동 노동자엔 ‘그림의 떡’
휴식 공간·시간 제공
업종 따라 의무화 필요
“다리는 아픈데 앉을 곳이 없으니, 의자를 들고 다녀요.”
지난달 27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서 전동카트를 운전하던 70대 요구르트 배달원 임모씨는 한 상가 입구에서 익숙한 듯 낡은 의자를 꺼내와 카트에 실었다. 전동카트로 오르막길을 가던 임씨는 이내 길가에 카트를 세우고는 의자를 꺼내 앉았다. 임씨는 “인근 가게 사장이 양해해준 덕에 의자를 맡겨두고 출근할 때 꺼내온다”고 했다.
우리 곁에는 임씨처럼 종일 이동하거나 서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가 숱하게 많다. 이들은 임씨가 의자를 마련한 것처럼 나름의 자구책을 갖고 있었다.
서울 성동구의 5평 남짓한 카페에서 근무하는 20대 여성 A씨는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창고에서 접이식 의자를 잠깐 꺼냈다. A씨는 “하루 5시간을 서서 일한다”며 “앉을 시간도, 공간도 정해져 있지 않아 손님이 없을 때 이렇게 잠깐씩 앉는다”고 했다.
8년차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허보기씨(47)도 출근 후 6시간을 꼬박 서 있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며 걸어다녀야 한다. 허씨에게 허락된 10분 이상의 ‘앉을 권리’는 식사 시간 때 주어지는 게 거의 전부다.
허씨는 “점심시간에 잠깐 커피값이 저렴한 맥도날드에서 쉬고 휴대폰 충전도 하곤 한다”며 “아파트에선 옥상 계단에라도 잠시 앉을 수 있지만, 빌라가 많은 동네에선 앉을 공간이 전무하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쇼핑몰에서 만난 주차안내원 B씨(57)는 차가 드나들지 않는 틈에 무릎을 굽혔다 펴길 반복했다. 그는 “연속해서 1시간40분을 서 있어야 하다보니 신발은 항상 밑창이 두툼한 것으로 신는다”고 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족저근막염과 하지정맥류 등 고질병을 앓고 있었다.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김윤숙씨(56)는 “서서 일하는 데다 검지기와 고지서 등이 들어 있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녀야 하는 탓에 허리 디스크가 왔다”고 했다.
민주노총이 2019년 방문서비스 노동자 74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8.8%가 ‘작업 관련 근골격계질환의 통증 빈도가 한 달에 1회 이상 발생했거나 통증 기간이 1주일 이상 지속됐다’고 답했다. ‘앉을 권리’는 법적으로 보장돼야 하는 노동자의 권리다. 산업보건안전기준에 관한 규칙 제80조는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춰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지키지 않았을 때의 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업종에 맞는 적정 휴게 공간과 휴식 시간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면서 “장시간 집중을 필요로 하거나 장시간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최소 2시간에 10분 정도의 휴식 시간을 주거나 휴게 공간을 마련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예슬·김송이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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