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하차감 떨어뜨릴 ‘연두색 번호판’

박은주 기자 2023. 11. 3.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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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1967년 미국에서 화장품 방문 판매 기업을 운영하던 메리 케이 애시가 링컨차 대리점을 찾았다. “회사 차를 눈에 띄는 색상으로 맞추고 싶어요.” 핑크색 자동차가 기업 매출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된 애시는 1970년 ‘메리 케이 핑크 캐딜락’ 제도를 발표했다. 우수 사원이 2년간 차를 몰도록 했다. 영업사원이 광고사원까지 겸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법인차는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나라 한 제약사 대표 법인차에는 “황금변 자부심 비오비타’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화장품 방문판매회사 창업주인 매리 케이 애시 여사와 핑크 캐딜락. /매리케이

▶대당 3억원이 넘는 스포츠카인 ‘포람페’(포르셰, 람보르기니, 페라리)는 색상이 주로 빨강, 노랑 같은 원색이다. 양복 입고 타는 차가 아니다. 회사 임원의 업무용이 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롤스로이스, 람보르기니 등 초고가 자동차의 약 80%가 법인 소유다. 세금 혜택 받은 회삿돈으로 사서 배우자나 자식에게 주는 것이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법인차 모터쇼가 열린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의원도 법인 돈으로 딸에게 포르셰를 리스해 줬다. 국민 원성이 자자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8000만원 이상 법인 소유 자동차는 ‘연두색 번호판’을 붙인다. 소급 적용은 안 한다. 양심 마비 법인들이 ‘수퍼카 사재기’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비싼 차에서 운전자가 내리면 남들이 쳐다본다. 그 느낌을 ‘하차감’이라고 한다. ‘외제차를 사는 이유는 승차감이 아니라 하차감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젊은이들이 몇 년 치 연봉을 털어 외제차를 사는 가장 큰 이유로 ‘하차감’이 꼽힌다. 연두색 번호판은 법인차에 ‘연두색 제복’을 입히는 전략이다. 목표는 비싼 법인차를 사적으로 쓰는 사람들의 ‘하차감’을 저하시키는 것이다.

내년 1월 이후 공공·민간법인이 신규·변경 등록하는 8천만원 이상의 업무용 승용차에 부착되는 '연두색 번호판' 샘플. /연합

▶자동차 보급이 늘면서 자동차로 뽐내려는 사람도 증가해 왔다. 1990년대 ‘야타족’들은 국산차에 외제차 엠블럼을 달거나, 요란한 소리가 나게 ‘튜닝’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차들이 도로 매너는 꽝이라 ‘양카족(양아치+자동차)’이라 불렸다. 수입차가 유행하면서 튜닝은 한물갔다. ‘하차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차감’의 핵심은 ‘내돈내산(내 돈으로 내가 샀다)’이다. 법인 업무와 무관한 사람들이 ‘연두색 번호판 수퍼카’를 타고 유흥가를 나다니면 ‘번호판 신상 털기’의 표적이 될 것이다. 국민들은 여기에 더해 매출액 대비 법인차량 등록 대수 제한 등 법인차 제도를 더 빡빡하게 운영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제가 벌지 않은 돈으로 잘난 척하는 꼴은 못 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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