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 지금 안 가도 환전해둘까”…엔화값 바닥 또 뚫었다
원엔 환율 879원, 15년여만에 최저
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전날보다 20.5원 오른 1322.4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14.4원 급등한데 이어 이날까지 2거래일간 34.9원 뛰었다. 원화값이 1320원대를 밟은 것은 9월4일(1319.8원)이후 두 달만이다.
원화값은 미국 국채금리가 고공행진하면서 지난달에는 연중 최저치인 1363원까지 추락하는 등 약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지난 1일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를 두 차례 연속 동결하며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 기대감이 커지자 모처럼 방향을 틀어 연이틀 급등한 것이다.
달러 강세 압력을 가했던 미 국채금리가 하락세를 보이는 것도 원화값을 상승시킨 요인이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달 5% 턱밑까지 올랐지만 최근 미 재무부가 국채 발행 확대 계획을 조정하면서 이날 4.66%까지 급락했다.
반면 원화 강세에 영향을 받은 엔화가치는 15년 9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날 100엔당 엔화값은 전 거래일대비 12.9원 내린 879.93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원화가 뚜렷한 강세를 보인 반면 엔화가치는 일본은행이 통화 완화정책을 일부 수정했는데도 ‘정책 볂화가 크지 않았다’는 시장 평가로 달러당 150엔선에 머물며 약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어서다.
지난달 31일 일본 중앙은행은 수익률곡선 제어(YCC)을 일부 수정해 장기금리 지표인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가 1%를 초과해도 시장 상황에 따라 일정 부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을 ‘사소한 변화’로 평가하며 실망한 투자자들의 엔화 매도가 이어지고 있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위원은 “미국의 기준금리 동결 효과는 동시에 반영되는데, 엔화값은 일본이 완화적 통화기조에 벗어나지 못해 상승 제약이 강하게 걸린 상황”이라며 “원화값은 국내 수출이 회복되고, 무역수지가 흑자 기조로 돌아선데다 하반기 들어 달러 수급 측면에서도 턴어라운드를 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향후 원화값 전망은 엇갈린다. 미 연준이 다음달 FOMC에서 금리를 동결하고, 중동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전되는 등 돌발 악재가 없다면 원화값은 1300원~1310원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10월 비농업부문 고용지표가 시장 예상대로 둔화 흐름을 보이고 미 10년물 국채금리가 4.5%까지 떨어지면 원화값은 1200원대로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며 “국제유가가 내려가고 한국 수출 등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개선되면 1285원까지 열려 있다”고 내다봤다.
원화가 되돌림 현상을 보이며 약세가 지속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 연준이 금리 인상이 끝났다고 선언한 것도 아닌데 시장이 ‘설레발’을 치고 있다”며 “고금리 장기화 전망에 변화가 없고, 유럽과 중국 등 경기 둔화 등을 감안하면 원화값은 연내 1380원대까지 떨어지며 최저치를 경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엔화에 대해선 원화 강세의 정도에 따라 900원 안팎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내년 일본 통화 정책 기조에 따라 엔화가 강세로 돌아설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문 이코노미스트는 “내년은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하 사이클로 들어갈 가능성이 큰데, 일본은 그동안 금리를 올린 적이 없기 때문에 긴축으로 언제든지 돌아설 여지가 있다”며 “12월까지 원화 대비 엔화값이 뚜렷하게 강세를 보이기는 어렵지만 내년 일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변화에 따라 원엔 환율이 970원대까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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