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전쟁 ‘드라마’를 보다가
요즘 즐겨 보는 드라마 <연인>은 ‘로맨스’ 사극이지만 전쟁 드라마이기도 하다. 1636년 조선, 능군리에 사는 길채는 “연모하는 이와 더불어 봄에는 꽃구경하고 여름엔 냇물에 발 담그고 가을에 담근 머루주를 겨울에 꺼내 마시면서 함께 늙어가”는 게 꿈이다. 길채뿐 아니라 많은 이의 바람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들이닥친 전쟁에 그 바람은 거침없이 짓밟힌다. 백성들은 삽시간에 삶의 터전을 잃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내일을 잃었다.
대부분의 전쟁이 그러하듯 <연인>에서도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무고한 백성들, 특히 노약자와 어린이, 여성이었다. 남성들이 ‘나라의 근본(왕)’을 구하기 위해 의병으로 자원한 사이 청나라 군대는 노약자와 어린이, 여성들이 남은 마을에 들이닥쳐 거침없이 죽이고, 약탈하고, 인질로 잡아갔다. 비록 드라마 속 상황이지만 청나라 군대에 의해 백성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눈을 질끈 감게 된다. 그만큼 전쟁은 아무리 드라마라도, 과거 일이라 할지라도 지켜보기 힘들다. 드라마도 이런데 ‘현실’ 전쟁에 관해서는 말해 뭐 하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이 전쟁으로 가자지구에서만 1만여명이 사망했다. 그중 어린이와 여성이 절반 이상이다. 이스라엘에서도 1500명에 가까운 시민이 사망했다. 지난달 31일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최대 난민촌인 자발리야 지역을 예고도 없이 기습 폭격해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상전 규모를 점점 확대하고 있다.
“대부분 학생들이 사망하여 올해 수업 기간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며칠 전 가자지구 교육부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올해 내가 본 글 중 가장 슬픈 문장이다. “세상의 종말이 온 것 같다.” 가자지구 난민촌 거주자가 대규모 공습이 벌어진 직후 한 말에 지금 그곳이 얼마나 참혹할지 감히 상상해본다. 그곳에도 조선의 길채와 능군리 마을 사람들처럼 소박한 바람을 가진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전쟁은 그 모든 것을 파괴한다. 전쟁을 일으킨 이들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세상 모든 전쟁은 인간이 인류에게 저지르는 가장 잔혹한 범죄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다. ‘대학살(Genocide)’이다. 세계는 이스라엘 편과 팔레스타인 편으로 갈라졌다고 하지만, 그들 모두 이 참혹한 대학살이 지속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전쟁을 끝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는데 전쟁을 일으킨 이들은 도무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말 세상의 종말이 와야 끝나는 것일까? 이 상황에서 전쟁을 ‘글’로 배우고, ‘드라마’로 익히고, ‘게임’ 속 장면과 비슷한 화면으로만 봐온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뭘 해야 전쟁이 멈출까?
무관심과 무력감에 빠지지 않고 뭐라도 해보려는 시민들이 무차별적 공격에 숨진 무고한 이들을 상징하는 1000켤레 신발을 모아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 설치하고 즉각 휴전에 응할 것을 촉구하는 긴급 행동에 나선다고 한다. 신지 않은 신발을 오는 8일까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서울 종로구 자하문로9길 16 참여연대 5층)로 보내면 이 일에 동참할 수 있다. 이렇게라도 전쟁을 나와 무관한 일에서 우리의 문제로 끌어당겨 보자.
오수경 자유기고가 <드라마의 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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