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연두색 번호판
자동차 번호판은 1893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됐다. 시속 30㎞ 이상 달릴 수 있는 차량에 차주 이름과 주소를 적은 철판을 달게 한 것이 시초다. 마차도 많이 섞여 다니던 당시 도로 상황에서 위협적인 속도를 내는 자동차를 ‘요주의 대상’으로 눈에 띄게 하는 역할이었다. 이후 전 세계로 퍼졌고, 한국에서도 1904년 오이리 자동차상회라는 회사가 번호판을 처음 선보였다. 검은 철판에 흰 글씨였다.
‘아빠사자.’ 번호판만 보고도 불법 택시를 가려내는 데 요긴한 단어로 통한다. 현행 번호판의 앞뒤 숫자 사이에 있는 한글 한 글자는 차량 용도를 구분하는데, 운송사업용 택시와 버스에는 ‘아·바·사·자’만 쓰이기 때문이다. 렌터카는 ‘허·하·호’, 택배차는 ‘배’가 붙는다. 번호판 색깔로도 차량 쓰임새와 종류를 구별할 수 있다. 일반 자가용 차량은 흰색, 사업용은 노란색, 건설기계는 주황색, 전기차·수소차 같은 친환경 차량은 하늘색이다.
여기에 연두색 번호판이 추가로 나온다. 정부가 내년 1월부터 민간 법인이나 공공기관이 구입하거나 리스·렌트한 차량가액 8000만원 이상의 업무용 차량에 대해 연두색 번호판을 달도록 한 것이다. 고가의 법인차나 관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하는 사례를 방지한다는 취지다. 세간의 눈에 확연히 띄는 번호판 색깔이 부담감과 경각심을 안겨 사적 운행을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법인차 전용 번호판 도입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하지만 실효성이 떨어져 보인다. 예외가 많아서다. 법인차 중 경차·소형차는 제외됐고, 똑같이 세금 감면을 받는 개인사업자 차량도 대상에서 빠졌다. 8000만원으로 정한 가격 기준도 자의적이다. 차라리 외국처럼 법인차 가격에 상한선을 두거나 업무용 운행을 증빙하도록 하는 게 ‘슈퍼카’ 남용 방지에 유효할 것 같다.
올 상반기 기준 3억원 이상 고가 승용차 6000여대 중 75%가 법인 명의다. 차값뿐 아니라 보험료·기름값까지 법인이 내는 슈퍼카를 개인이 멋대로 쓰는 일은 제한되는 게 옳다. 그러나 번호판 색깔 변경만으로는 단속이 어렵다. 연두색 번호판이 자칫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거나 괜한 위화감·적대감을 일으키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보완책이 필요하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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