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영화·관객·극장...LEAFF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SBS 연예뉴스 | 런던(영국)=김지혜 기자] 영화 '화란'의 런던 프리미어가 있던 지난달 28일, 휠체어를 탄 한 백인 남성이 오데온 럭스 극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극장에 있던 한 여성과 인사했다.
그의 이름은 캘럼 이안. 반갑게 인사를 건넨 이는 런던아시아영화제(London East Asia Film Festival, 이하 LEAFF) 전혜정 위원장이다. 이안은 매년 런던아시아영화제를 찾는 단골 관객이다.
전 위원장은 "오데온 럭스 극장에는 휠체어 이동에 불편한 턱이 있었는데 이안이 거동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고 최근 턱을 없앴어요"라고 전했다. 관객을 위해 문턱을 없앤 극장과 관객 한 명 한 명을 가족처럼 반기는 영화제, 런던아시아영화제 방문 첫날 받은 따뜻한 인상이었다.
미국 영화 매체 데드라인(Deadline)과 스크린데일리(Screendaily), 영국 잡지 타임 아웃(Time out)과 어나더(Another) 등은 올 겨을 런던에서 놓칠 수 없는 영화 행사로 런던아시아영화제를 소개했다.
LEAFF는 영국 내에서 열리는 아시아영화제 중 처음으로 영국 영화협회(British Film Institute·BFI) 지원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런던 시장 사디드 칸은 "LEAFF는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동아시아 영화제"라며 매년 애정 어린 축사를 보낸다. 프랑스 파리와는 또 다른 의미와 비중으로 유럽 문화의 중심을 자처하는 영국 런던에서 아시아 영화제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로 8회째. LEAFF는 런던에서 동아시아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영화제로 성장했다. 유럽에는 여러 개의 한국영화제가 있지만 한국 영화가 중심이 되고 아시아까지 저변을 넓혀 작품을 소개하는 영화제는 흔치 않다.
지난달 18일 개막해 29일 막을 내린 런던아시아영화제 기간 중 런던을 찾았다. 영화제가 열리는 레스터 스퀘어 주변과 트라팔가 광장 거리 곳곳에는 LEAFF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부산도, 전주도 아닌 런던에서 한국 영화가 중심이 된 아시아영화제의 존재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세계엔 수많은 영화제가 있고 저마다의 색깔이 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매년 전국에서 열리는 영화제 수가 100여 개에 육박한다. 영화를 보고, 영화인을 만나며, 작품에 대한 담론이 이뤄지는 영화제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다만 지자체의 예산만 믿고 비전도 없이 출범한 영화제들은 존재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명확한 색깔과 방향성의 정립이 존폐의 핵심이다.
코로나19는 영화계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극장과 영화의 위기는 영화제의 위기로도 이어졌다. 저마다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 영화제들의 위기 속에서 매년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런던아시아영화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LEAFF의 성장 동력은 영화, 관객, 극장이었다.
◆ 런던에서 '아시아 영화'를 본다는 것의 의미
영화, 관객, 극장. 영화제를 구성하는 3요소라 할 수 있다. 당연한 것이 왜 특별한 것일까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시대기 때문이다.
런던아시아영화제는 2015년부터 유럽 문화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한국 영화를 비롯한 아시아 영화를 소개해왔다. 영화제를 이끄는 전혜정 위원장은 주영한국문화원 재직 시절 런던한국영화제를 이끌며 한국 영화를 알리는 일을 시작했다. 문화원을 나온 전 위원장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아시아로 범위를 넓힌 지금의 LEAFF를 만들었다.
올해 LEAFF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홍콩, 대만, 싱가포르, 필리핀 등 아시아 8개국 영화 49편을 상영했다. 정지영 감독의 '소년들'로 영화제 문을 열었으며,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영국 런던은 전 세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멜팅팟(Melting pot)이다. 문화 다양성이 인정되는 도시지만 아시아 영화를 극장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극장 개봉작은 영미 영화가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며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권 영화들이 어느 정도 유통될 뿐이다.
LEAFF는 아시아의 가장 핫한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한다. 영화에 관심 있는 영국 내 아시아인을 영화제 기간 불러 모을 뿐만 아니라 K콘텐츠에 관심이 높은 외국인 관객도 흡수하고 있다.
좋은 영화를 엄선하고 의미 있는 기획을 하는 건 영화제의 핵심 역량이다. 올해 한국 영화계의 거장 정지영 감독의 40주년 회고전을 마련한 기획은 인상적이었다. 현지 매체 데드라인은 이 회고전을 소개하며 정지영 감독에게 '한국의 켄 로치'라는 닉네임을 부여했다.
켄 로치가 누구인가. '케스', '레이닝 스톤', '랜드 앤 프리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나, 다니엘 블레이크' 등을 통해 영국의 노동 계급, 빈민, 노숙자 등의 주제를 사실적으로 그린 사회적 사실주의 영화의 거장이다. 정지영 감독 역시 '남부군', '하얀 전쟁', '남영동 1984', '블랙 머니' 등의 영화로 한국 사회에 건강한 비판을 해온 사회파 거장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았다.
1999년 대한민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례나라슈퍼 사건을 소재로 한 신작 '소년들' 역시 개막작 상영 때부터 해외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GV에 참석한 관객들은 정지영 감독의 영화 세계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에 대한 본질적 호기심을 드러냈다. LEAFF는 올해 영국 평론가 등이 참여한 '정지영 평론집'도 영문으로 발간했다. 영국을 넘어 유럽에 한국의 대표 영화감독을 소개하는 귀중한 아카이브가 될 전망이다.
LEAFF의 프로그래밍 능력도 돋보였다. '그녀의 취미생활'(한국), '허 로켓'(필리핀), '리틀 블루'(대만), '론리 에잇틴'(홍콩, 중국), '언톨드 허스토리'(대만)는 여성 서사를 다룬 '스토리 오브 우먼' 섹션에서 소개됐고, 고전 영화 복원 섹션에서는 대만 영화 '아 페이'(1983), '더스트 오브 엔젤'(1992)을 깨끗한 화질로 만날 수 있었다.
또한 할로윈 시즌을 맞아 일본 공포 영화 감독 시미즈 타카시의 '이머션'과 사이토 타쿠미 감독의 '홈 스위트 홈'을 런던 프리미어로 공개했다. '체리쉬 오브 월드' 섹션에서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던 시절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영화 '오염은 어디로 갔는가'(1991)과 한국 감독 황윤이 연출한 '수라'을 상영해 환경 관련 이슈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LGBTQIA+ 섹션에서는 한국 배우 이주영과 중국 배우 판빙빙이 주연으로 활약한 '그린나이트', 다카야마 마코토의 자전 소설을 영화화한 일본 작품 '에고이스트'가 관객들과 만나 사랑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안겼다.
◆ 극장은 사라지지 않는다…영화인들이 LEAFF에 감탄한 이유
런던아시아영화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극장이었다. 49편의 초청작들은 영화산업 1번지 레스터 스퀘어의 오데온 럭스 극장과 웨스트엔드의 오데온 럭스, 쇼핑 중심지 옥스포드 서커스에 위치한 셀프리지 시네마(셀프리지 백화점 內)에서 상영됐다. 3개 극장 모두 돌비시스템에 리클라이너 좌석을 갖춰 런던 내 최고 시설을 자랑한다.
티켓 가격은 얼리 버드(프로그램 발표 전)로 패스를 끊을 경우 100파운드이며, 주말 패스는 75파운드다. 런던 극장(오데온 럭스 기준)의 티켓값이 편당 약 18파운드 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영화 마니아들에겐 최저 금액으로 동아시아의 화제작을 두루 섭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LEAFF는 매년 두 번의 주말을 포함한 10일간의 영화제 일정을 짠다. 전혜정 위원장은 "주요 관객이 20~50대인 만큼 평일 낮엔 학생들과 직장인이 영화를 관람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평일엔 저녁 6시 이후에 1~2회 정도 영화를 편성하고, 주말엔 오전부터 주요 영화를 편성합니다. 한국 영화와 아시아 영화를 영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에 주말에 관객이 집중되는 편이에요. 런던 시민뿐만 아니라 지역 곳곳에서 패스를 끊어 방문하시기 때문에 주말 좌석점유율은 90%에 육박합니다"라고 전했다.
봉준호 감독은 OTT 시대에도 여전한 극장의 위력에 대해 "웅장한 음향, 관객의 집단 경험도 극장의 장점이지만 가장 강력한 매력으로는 영화관에서는 영화를 중간에 멈추거나, 이탈할 수 없다는 점이에요. (영화를 극장 밖에서 보면)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잖아요. 보다 말고 다른 짓을 할 수도 있고. 하지만 극장이라는 곳에는 감독이 만든 2시간이라는 리듬이, 하나의 시간 덩어리가 존재해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영화를 틀겠다고 약속돼 있고 관객은 그걸 존중하죠"라고 말한 바 있다.
경험이자 체험으로서의 영화 감상이 가능하려면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극장은 그저 영사기(전통적 극장을 상징하는 기계로서의 의미)를 돌리는 공장이 아니다. 영화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다. 화장실을 가기 위한 자유로운 이탈은 가능하지만 영화라는 블랙홀에 빠진 관객이라면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이 공간을 쉬이 박차고 나가지 않는다. 스트리밍이 영화 관람의 보편적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극장의 존재 이유는 불변하다.
올해 '1947 보스톤'으로 LEAFF를 찾은 강제규 감독은 오데온 럭스의 돌비시스템에 감탄했다. "서윤복(임시완)의 운동화 끈 소리까지 들렸다"며 극장 사운드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영화제를 찾은 박보영 역시 오데온 극장의 음향 시스템에 대한 언급을 가장 먼저 했을 정도다.
이 영화제가 돌비시스템 극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피,땀,눈물을 쏟아 영화를 완성한 영화인들이 최고의 환경에서 해외 관객과 만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관객에게도 최고의 영화적 경험을 안겨주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런던에서 이 정도 규모의 영화 행사를 진행하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예산 마련은 영화제의 가장 큰 과제이기도 하다. 기업의 후원을 받기 위해 발로 뛰지만 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문화 행사를 만들기 위해 원칙을 세워 일을 진행하고 있다.
전혜정 위원장은 "영화제의 파트너는 지속 가능한 협력을 위해 상호 도움이 되는 마케팅에 기반합니다. 그래서 경험을 원하는 관객에게 기프팅이나 테이스팅 기회를 제공하는 후원 파트너쉽을 추구하고자 해요"라고 원칙을 밝혔다.
영화관 내에 한국의 식재료를 서양식으로 재해석해 메뉴화한 '테이스트 오브 아시아' 코너를 마련한 것도 그 일환이다. 수년간 K-푸드를 런던에 알려왔지만 내년부터는 뷰티와 패션 파트너사와 협력해 시너지를 내고 싶다는 의사도 전했다.
◆ "흥미로운 문화 차이, 이해하고 수용한다"…GV의 특별한 매력
런던아시아영화제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간은 영화 상영이 끝나고 시작된다. 영화를 만든 주역들과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 소통하는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 시간이 펼쳐진다.
LEAFF의 GV는 가디언의 평론가 가이 호지, 데드라인의 기자 데이먼 와이즈, 커존의 에디터 이안 헤이든 스미스 등이 진행한다. 영국 유력 언론의 영화 전문가들이 상영작을 관람한 후 자신만의 시각으로 영화를 분석하고 관객과 제작진이 소통할 수 있는 가교 역할까지 한다.
올해 초청된 한국 영화를 본 외국인, 해외 거주 아시아인들의 시선은 흥미로웠다. 문화 차이가 주는 영화 해석의 미묘한 온도차가 발생한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담론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화란' 상영 후 열린 GV에서는 외국 관객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이 쏟아졌다. 한 관객은 "연규(홍사빈)와 치건(송중기)의 관계의 모호성을 지적하며 치건이 연규를 보호하는 심리를 잘 모르겠다"고 반응했다. 김창훈 감독은 "둘은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을 본다. 서로에게 거울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치건의 마지막 선택은 비극이 맞는가?"라는 한 외국인의 질문에는 "치건이 만약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그의 삶은 행복했을까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렇진 않았을 것 같아요"라고 우회적으로 답했다. 이현정 통역가는 김창훈 감독의 말을 들은 후 "한국의 범죄조직에서 중간 보스가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을 관객들에게 설명해야 할 것 같다"라고 허락을 구했다.
이현정 통역가는 영화제 원년부터 현재까지 LEAFF의 한-영 통역을 담당하고 있다. 전혜정 위원장은 "극장과 통역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소신을 가지고 영화제를 꾸려나가고 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국경과 문화를 초월한 대화가 가능하려면 언어뿐만 아니라 양국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통역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현정 통역가는 단순히 언어를 해석하는 것을 넘어 감독과 배우가 답변시 놓칠 수 문화적 해석, 언어의 맥락까지 곁들여 현지 관객에게 전달했다.
폐막작으로 상영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올해 LEAFF에서 가장 먼저 매진을 기록했다. 국내에서 384만 명을 모은 흥행작인 데다 내년 3월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상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된 화제성이 크게 작용했다.
런던 프리미어였던 폐막작 상영회에는 현지 관객과 언론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투표권을 가진 12명의 해외 영화인이 참석해 영화를 미리 관람했다.
상영 후 진행된 GV에서 모더레이터를 맡은 이안 헤이든 스미스는 "이런 엄청한 재난과 비극적 상황에도 노래방 기계는 살아있네요"라고 운을 뗐다. 엄태화 감독은 "재난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어떻게 할까. 한국인들은 저런 상황에서도 노래하고 춤추는 걸 멈추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라고 위트 섞인 진행자의 반응에 화답했다.
한 외국인 관객은 "보통의 재난 영화와 달리 재난의 스펙터클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인물의 전사가 초반에 공개되는 게 아니라 극 중간중간 등장하는 것이 흥미로웠다"라고 반응했다.
엄태화 감독은 "이 영화는 재난영화라기보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묵시록)물에 가까워요. 재난 자체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무엇을 하는지에 더 집중하려고 했어요.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등장 인물과 그들의 배경을 점차적으로 제공하려고 했고요"라고 답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형 아포칼립스 영화다. 재난이라는 상황만큼이나 아파트라는 공간이 갈등의 도화선으로 크게 작용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파트'가 가진 상징성을 생각한다면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제목에 담긴 역설을 이해할 수 있다.
영국에도 '하이라이즈'라는 초호화 고층 아파트가 존재한다. 다만 한국처럼 전세라는 임대 시스템은 없다. 자가 역시 젊은 사람들의 보편적 소유 형태는 아니다. 한국에 전세라는 전세계 유일의 임대 시스템이 있다면 영국은 하우스 안에 룸을 개별로 임대하는 플랏이라는 월세 개념이 있다. 엄태화 감독과 이현정 번역가는 이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해외 관객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엄태화 감독은 "이 영화의 사회적 배경을 조금 더 말씀드리자면, 한국에서는 '내가 사는 집이 곧 나의 사회적 지위'가 됩니다. 이런 사회적 계급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한국에서는 훨씬 더 심하다고 생각해요"라고 강조했다.
영국 관객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라는 명화(박보영)의 대사에 의문 부호를 드러냈다. 살아남기 위해 집단 이기주의로 외부인에 맞선 황궁아파트 주민을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엄태화 감독은 해외 관객의 반문을 수용하면서도 "우리 영화에는 절대적인 선이나, 절재적인 악이 없다고 생각해요. 이들은 모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저 상황에서는 어떤 인물도 개개인에게 이입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극 중 인물이 극한 상황에 처하고 생존과 존엄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나와요. 그 내면의 갈등과 딜레마도 담고 싶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 LEAFF를 만드는 사람들…열정과 철학이 빚어낸 성장
런던아시아영화제는 지난해 영국 런던비평가협회와 협력해 '아시안 필름 어워드'를 신설했다. 런던비평가협회 소속 비평가들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해 유럽에서 아시아 영화에 대한 비평의 장을 넓히고자 도입한 시상식이다.
올해는 극영화 10편이 경쟁 부문에 초청됐으며 김성환 감독이 연출한 한국영화 '만분의 일초'가 작품상의 영예를 안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박보영은 '베스트 액터상'을 수상했으며, '화란'의 홍사빈은 '라이징 스타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상'은 모리 유스케 감독의 일본영화 '아미코'에게 돌아갔다.
전혜정 위원장은 올해 영화제를 마치며 보다 나은 내년을 기약했다. 폐막식에서는 도움을 준 런던시, BFI, 영화진흥위원회, 대만 ·홍콩 영화계를 비롯해 후원사 이름을 일일이 언급했다. 또한 영화제 어드바이저인 로저 가르시아와 이안 헤이든 스미스, 프로그램 어드바이저인 케이티 김, 자원봉사자 매니저 양주영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2023년은 한-영 수교 140년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다. '오징어 게임'의 스타 이정재가 영화제 내내 화제몰이를 했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화려함은 덜했을지 모르지만 내실과 실속이 두드러진 영화제였다.
전혜정 위원장은 스타 게스트에 의존하면 영화제의 방향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프로그래밍과 기획 그리고 영화제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담론에 집중했다.
영화제 기간 중 대담을 가진 홍콩배우 고천락과 한국 제작자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와의 만남이 대표적이다. 전 위원장이 기획하고 주선한 이 만남은 한-홍 합작 프로젝트 논의로까지 이어졌다.
전 위원장은 "앞으로도 아시아 영화를 런던에 소개하는 창구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아시아 영화인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는 플랫폼을 구축해 상호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영화에 대한 열정과 영화제에 대한 철학이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LEAFF의 성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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