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혁신위, ‘영남 중진’ 이어 ‘지도부·윤핵관’ 겨냥…“희생 요구”
김기현 “제안이 오면 검토하겠다”
전문가 “與가 김포 이어 총선 이슈 선점”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3일 당 지도부, 중진 의원, 친윤(親尹)계 의원들에게 내년 4월 총선에 불출마하거나 수도권에 출마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혁신위는 1호 안건의 키워드로 ‘통합’을 강조하며 ‘대사면’ 안건을 내놨었는데 이번에는 ‘국회의원 등 정치인의 희생’을 주제로 내세웠다. ‘영남 중진 험지 출마론’ 등을 연일 강조하며 압박에 나섰던 인 위원장은 이번에는 당 지도부와 친윤계 의원들까지 겨냥하고 나섰다.
인 위원장은 이날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혁신위 4차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통해 “당 지도부 및 중진 의원,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의원들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아니면 수도권 지역에 어려운 곳에 와서 출마하는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엔 국민이 희생하고 정치하는 분들은 많은 이득을 받았는데, 이제는 국민에게 모든 걸 돌려주고 정치인이 결단을 내려 희생하는 새로운 길을 요구한다”며 “우리 당은 위기다. 더 나아가 나라가 위기인데 그걸 바로잡기 위해서는 희생의 틀 아래에서 결단이 요구된다”고 했다. 다만 혁신위는 이는 의결된 혁신안이 아니라 인 위원장의 정치적인 권고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혁신위는 이날 ▲ 국회의원 숫자 10% 감축 ▲ 불체포특권 전면 포기 당헌·당규 명문화 ▲ 국회의원 세비 삭감 및 국회의원 구속 시 세비 전면 박탈 및 본회의·상임위원회 불출석 시 세비 삭감 ▲ 현역의원 평가 후 하위 20% 공천 원천 배제 등 4개 안건을 의결하고 당에 수용을 촉구했다.
인 위원장은 그동안 ‘기득권 포기’를 내세우며 ‘영남 중진 험지 출마론’ 등을 띄워왔는데 이번에는 당 지도부와 친윤계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결단 압박에 나선 것이다. 당초 인 위원장은 2호 안건으로 ‘동일 지역구 3선 초과 연임 금지’를 검토하겠다고 해왔는데 이날 혁신안에서는 빠졌다.
인 위원장은 당 지도부와 중진, 친윤계에 대해 구체적인 대상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혁신위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경진 혁신위원은 중진의 기준과 대통령과 가까운 의원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여부에 대해 “그런 건 없다”고 답했다. 또 기준은 당에서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다만 지도부는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자들, 중진 의원은 통상 3선 이상을 가리켜 영남권 중진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또 대통령과 가깝게 지내는 의원은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으로 꼽혀온 권성동·장제원·이철규 의원 등을 지목한 것으로 추측된다.
김 위원은 또 ‘대통령과 친분 있는 의원들이 기득권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거냐’는 질문에 “그건 그렇게 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친윤계 의원들의 기득권 여부에 대해서는 혁신위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우선 지도부는 혁신위의 요구에 “제안이 오면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후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언론에 보도된 것을 봤는데, 혁신위가 여러 가지 논의한 결과를 종합적으로 제안해 오면 정식 논의 기구와 절차를 통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또 이에 대해 “혁신위와 사전에 의논한 바는 없다”고 했다.
혁신위의 제안에 화답한 의원도 있었다. 지난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의 수행실장을 맡아 친윤으로 분류되는 이용 의원은 조선비즈에 2호 혁신안에 대해 “전략적으로 총선 승리나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불출마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이미 당의 험지인 경기도 하남에서 출마를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당 일각에서는 혁신위가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용태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혁신위가 희생이라는 단어를 포장해 반헌법적이고 비민주적인 월권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며 “영남이든 수도권이든 정치인의 출마와 당선은 정치인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고, 국민이 동의를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국민의힘이 이번 혁신안으로 총선용 이슈 선점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총선이 다가올수록 여당과 야당이 이슈 선점 경쟁이 벌어진다. 우선 김포 서울 편입 이슈로 민주당을 일단 눌렀는데 혁신안으로 이슈 선점을 이어갈 수 있다”며 “김 대표의 불출마나 험지 출마 선언, 윤핵관 중 2~3명의 불출마 선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권고를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다”며 “이런 혁신은 유권자들이 바라고 희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도부에서 뭉개게 되면 오히려 역풍이 불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혁신안을 받아들여 야당까지도 영향을 준다면 내년 선거에 변곡점을 형성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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