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혁신위 “지도부·중진·尹측근 불출마나 수도권 출마” 권고···김기현·장제원·이철규 겨냥?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3일 “당 지도부 및 중진,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의원들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아니면 수도권 지역에 어려운 곳에 와서 출마하는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이 내용은 이날 공식 의결한 2차 혁신안에 포함되지 않고, 혁신위의 권고 형태로 발표됐다. 그러나 대상 의원들의 불출마·험지 출마 선언으로 현실화할 경우 대대적인 총선 공천 물갈이로 이어질 수 있다.2차 혁신안에는 현역 의원 하위 20% 공천 배제와 국회의원 정수 10% 감축, 불체포특권 포기, 세비 삭감이 담겼다.
인 위원장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혁신위 회의 후 브리핑을 통해 “혁신위원들이 굉장히 열띤 토론 끝에 (발표하기로 한) 제일 중요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당이 위기고 나라가 위기”라며 “정치인이 결단을 내려서 희생을 하는 새로운 길을 요구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인 위원장은 브리핑 후 MBC에 출연해 “정말 대통령을 사랑하면 험지에 나와라,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라며 “용기를 가져달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 지도부하고 대통령이 만나는데 아마 이게 핫이슈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윤 대통령과 ‘김기현 1기 지도부’의 비공개 만찬에서 불출마·험지 출마에 대한 대화를 나눌 것이란 얘기다. 인 위원장은 영남 중진이 빠진 자리를 친윤·검사 출신이 채운다는 우려에 대해선 “그건 스스로 죽는 거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경진 혁신위원은 “혁신위 공식 의결은 아니지만 지도부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위원장이 먼저 말한 것”이라며 “혁신위에서 심도 깊은 토론이 있었고, 위원장이 말한 선에서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도부에서 당의 회생을 바란다면 적절한 답변이 있을 것으로 기대와 예상을 한다”며 “얼마 전 김기현 대표도 적절한 시점에 답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한 부분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혁신위가 구체적인 대상을 거명하진 않았지만 지도부는 ‘투톱’인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등 주요 고위 당직자, 중진은 영남 지역 3선 이상 의원들, 대통령 측근은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는 장제원·권성동·이철규·윤한홍·박성민·박수영 의원 등이 거론된다.
대상으로 꼽히는 사람들은 몸을 낮추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김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혁신위의) 제안이 오면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이용 의원은 통화에서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선 뭐든지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큰일났네. 부산에 장제원과 아이들, 강원도에 이철규와 아이들, 경남에 친윤이라고 거들먹대던 아이들, 울산에 김기현과 아이들, 지도부의 ‘듣보잡’과 아이들, 용산 대통령실 출마 대기 아이들, 모두 모두 집에 가게 생겼네”라며 “혁신이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영남권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국정과 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윤핵관이 책임지라는 요구가 핵심”이라고 밝혔다.
혁신위의 권고가 윤 대통령의 이해에 부합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 비윤석열계 의원은 “혁신위가 (중진 지역구 등의) 자리를 비워주면 그 자리에 본인이 원하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들어오길 바라는 대통령의 뜻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날 불출마·험지 출마 권고는 혁신안으로 의결되지 않고 정치적인 권고로 발표됐다. 혁신위 관계자는 “위원들 사이 찬반 논란이 거세 의결을 못 했다”고 설명했다. 인 위원장이 전날 인터뷰에서 말한 ‘동일 지역구 3선 초과 금지’도 발표에서 빠졌다.
이를 두고 혁신위가 일부러 의결을 피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지도부 인사는 “혁신위가 의결을 하면 지도부 내 논란이 커지고 억지로 끌려가는 모양새가 되는데, 권고로 해서 당사자들이 스스로 결단하게 만든 것”이라며 “거부하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전환 요구가 나올 텐데, 당사자들이 받는 여론의 압박은 의결과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위 공식 의결이 아니라 힘이 빠졌다는 반론도 있다. 당 차원의 결정이 아니라 당사자가 거부하면 그만인 제안이 됐다는 것이다. 불출마·험지 출마를 요구하는 당 지도부와 중진, 대통령 측근이 어느 선까지인지 모호해 ‘그물이 성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혁신위는 이날 국회의원 숫자 10% 감축, 불체포특권 전면 포기 당헌·당규 명문화, 국회의원 세비 삭감 및 국회의원 구속 시 세비 전면 박탈과 본회의·상임위원회 불출석 시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른 세비 삭감, 현역의원 평가 후 하위 20% 공천 원천 배제 등 4개 안건을 2차 혁신안으로 의결하고 당에 수용을 촉구했다.
국회의원 숫자를 현행 300명에서 270명으로 10% 감축하는 안은 김 대표가 선거제 논의 때 당론으로 추진했던 안이다. 불체포특권 포기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국면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민주당을 압박하면서 대거 서약서를 작성한 바 있다. 당을 바꾸라는 혁신위가 현 지도부와 코드를 맞춘 안을 내놓은 것이다. 국회의원 감축이나 국회의원 세비 삭감은 혁신보다 포퓰리즘에 가깝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 3개의 혁신안 모두 야당과 합의해 법안을 통과시켜야 적용할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현역 의원 하위 20% 공천 배제의 경우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김상곤 혁신위’의 제안을 수용한 안이고, 천하람 국민의힘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당협위원장이 지난 전당대회에서 공약한 사항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존에도 영남권을 중심으로 현역 지역구 의원 중 20% 이상은 물갈이를 해 온 터여서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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