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송은이 32년 우정의 결실…‘오픈 더 도어’라는 좋은 콘텐츠로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미스터리 심리 스릴러 영화 ‘오픈 더 도어’에 평단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자본력이 중요한 영화산업에서 저예산이지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독립영화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오픈 더 도어’가 또 다른 관심을 끄는 것은 장항준과 송은이가 만났다는 점이다. 장항준은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맡았고, 송은이는 제작을 책임졌다. 두 사람은 지금부터 32년전인 1991년 남산시절의 서울예술대에서 만났다. 장항준은 복학생으로, 송은이는 신입생으로 만나 지금까지 서로 좋은 영향을 주는 사이로 살아가고 있다.
장항준 감독은 방송, 영화계의 스토리텔러이자 멀티테이너로 성장했고, 방송인 송은이도 미디어랩시소, 컨텐츠랩 비보를 이끌며 팟캐스트에서 예능을 제작하고 유튜브 채널을 만드는 등 변화하는 콘텐츠 생태계에 대응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하지만 송은이의 영화 제작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마 두 사람간의 오랜 우정과 신뢰가 바탕이 돼 있기에 가능한 콜라보로 보인다.
“송은이를 학생으로 처음 만났다. 옛날 좋은 친구들이 오랜 기간 우정을 공유하는 건 쉽지 않다. 여전히 어질고 능력 있고 훌륭한 사람으로 남아있어 좋다.”(장항준)
“흑자를 못남길 수 있지만 ‘오픈 더 도어’ 같은 좋은 영화를 더 제작할 것이다. 돈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혹독하게 공부하며 배워가고 있다. 본질에 관심을 가져 달라.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나와야 하는데, 우리의 가벼움이 영화에 누가 되는 게 아니냐고 했더니, 홍보사에서 도움이 된다고 하기에 나왔다.”(송은이)
장항준 감독은 “상업영화를 찍다가 왜 이런 저예산 영화 감독을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딸과 함께 독립영화관을 자주 간다. 독립영화의 순수한 이야기의 본질, 상업적이고 자극적인 걸 묻히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본질에 집중하는 이야기로 접근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면서 “한국영화가 이렇게 힘든 적은 없다. 엄혹한 시기가 돌아왔는데, 이런 때일수록 다양성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활황이 되어도 남아있는 인력이 없을 것이다. 다양성 측면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오픈 더 도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스토리다. 미국 뉴저지 한인 세탁소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7년후 비밀의 문을 열어버린 한 가족의 숨겨진 진실을 그린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다. 낯선 땅으로 이민 와 끈끈할 수밖에 없는 가족이 점차 균열되는 과정 속에 인물의 내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았다.
장항준 감독은 “교민 사회라는 폐쇄성에 끌렸다. 한국 교민의 특수성이 있는데, 이민 온 시간에서 멈춰 있다. 교민 사회가 정착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낸 분들이다. 우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그런 가족들의 유대감에서의 갈등과 관계, 살아남기 위한 분투를 교민사회가 아니면 온전히 전달하기 어렵다. 욕망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소중한 걸 버리게 된다는 비극성이 있다. 그래서 송은이를 졸라 미국으로 갔다”고 전했다.
이어 장 감독은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단편으로 썼다. 쓰다 보니 재미가 있어 단편으로 하기에는 부족했다.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러면서 장편영화가 됐다”면서 “범인이 누군지를 떠나 왜와, 어떻게가 본질이다. 미국 교민사회에서 욕망이 충돌해 폭발한 사건인데, 선악이 기존의 것과 다른 게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면서 몇천개의 문을 들락거릴텐데, 살면서 중요한 문을 열 것인가 말 것인가? 파멸로 가는 문일 수도 있고 기회로 가는 문일 수도 있다. 이들은 어떤 문을 통해 이런 결정적인 순간으로 나아가는가를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송은이는 “좋은 영화도 스코어가 좋지 않다. 영화 시장이 진짜 안좋다. 우리 영화는 그런 게 오히려 학습이 되었다. 일반적인 홍보보다는 대중이 좋아할만한 홍보 전략, 예컨데 GV(관객과의 대화)도 많이 하고, 영화를 재밌게 본 사람을 대상으로, 장항준 감독과 회식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은이는 이어 “장 감독과, 공동제작으로 나선 장원석 대표라는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두 분이 있어 걱정은 안한다. 영화가 잘 나오기 위해 쓰는 돈은 괜찮다. 장 감독에게도 필요하면 세트 제작으로 퀄리티를 뽑아내라고 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친해도 서로 일로 엮이면 불편한 부분은 없을까? 이에 대해 두 사람은 오히려 편했다고 말했다. 장항준은 “수많은 제작자와 일해봤다. 송은이는 가장 격의 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다. 흔히 감독과 제작자의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그런 것 필요없다. 송은이는 다이렉트로 얘기할 수 있다. 소품, 세트에 대해 얘기하면, 송은이는 ‘그렇게까지 해야해’라고 한다. 둘 다 공격적이지 않아 편하게 대화할 수 있다. 우리는 32년동안 관계는 안변하고 직위만 변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성제작자보다 오히려 편하다. 비보는 직원들을 초식동물만 뽑아났다. 회사 분위기도 배려, 솔직함이 배어있다. 자존심, 서열 때문에 갈등할 수 있는데, 우리는 편하게 했다”고 털어놨다.
송은이도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있어 감독과의 작업이 유쾌하고,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홍보도 이렇게 까지 따라주는 감독이 흔치 않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의 영화 제작과 관련,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제가 가는 방향과 비슷하면 좋다. 아이템이 좋아야 한다. 메시지가 나랑 맞다면 안할 이유가 없다. 그게 신인이라도 상관없다”고 답했다.
송은이는 “비보가 활기차게 나가고 있다. 예능, 광고, 음반, 영화 제작이 같은 나무에서 나온다. 어떻게 키우냐에 따라 열매가 달라질 뿐이다. 이 안에서 탄탄하게 내실을 다져나갈 것이다. 좋은 이야기만 있다면 비보 타이틀안에서 영화도 계속 제작한다”고 밝혔다.
장항준은 “90년대부터 영화 일을 했다. 한국영화는 전세계가 부러워할만한 르네상스를 이뤄냈지만,코로나로 급위축됐다.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긴 한국영화가 5편밖에 안된다. 그럼에도 창작자들은 계속 만들어야 한다. 춘궁기는 항상 있었다. 배고픔이 대명사였다. 오로지 영화를 좋아한 사람들만 남아 이 일을 하더라.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항준은 “상업영화는 직관적이다. 우리는 반대의 길을 걸을 때도 있다. 이번 작품이 생각하고 해석의 여지가 있는 작품이다”고 설명했다.
송은이는 “영화 산업이 어렵다고들 한다. 이럴 때 웰메이드에 집중하면 좋은 영화가 나오는 타이밍이 될 수 있다. 영화가 상업적인 공식을 따라가는 것도 있지만 뚝심을 가지고 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나도 성공을 따라가다 좌절한 경험이 있다. 서로 꾸준히 걸어가고, 그걸 응원하는 회사가 되고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송은이는 “김숙과 팟캐스트를 오래 했지만 그거서 나는 '진지충'이고, 재미는 김숙이 담당한다. 좋은 영화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서 “우리가 사옥을 짓고 매니지먼트, 예능제작에 영화까지 제작하고 있지만 결국 재미 있는 것을 만드는 창작자이고 싶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많이 봐왔는데, 상업적인 것을 깨는 시나리오에 매력을 느낀다. 장항준 감독의 가벼움이 싫을 때도 있지만 유쾌하고 사람을 웃기려는 그런 정신은 존경할만하다. ‘오픈 더 오어’라는 작품에 매달리는 감독을 보는 것, 현장에서 배우들의 쫄깃한 연기를 보는 게 즐거웠다”고 전했다.
서병기 선임기자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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